여름이니까 덥지

맑은 계곡이 눈에 삼삼했다
맑은 계곡이 눈에 삼삼했다

오늘은 중복(中伏)이다. 초복(初伏)과 말복(末伏)의 중간이다. 그래서 삼복더위 중 가장 더운 날이다. 그 이름값을 하려는지 정말 더웠다! 더군다나 일하는 장소가 비닐하우스이다 보니 체감온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 모두 기진맥진했다. 연신 물을 마시고 세수까지 했으나 샘물처럼 펑펑 솟는 땀을 도무지 제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새삼 삼복더위에 관한 속담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먼저, ‘삼복더위에 고깃국 먹은 사람 같다’는 몹시 무더운 삼복에 더운 고깃국을 먹고 땀을 뻘뻘 흘리는 사람 같다는 뜻이다. 땀을 몹시 흘리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다.

다음으로 ‘삼복더위에 소뿔도 꼬부라든다’는 삼복더위에는 굳은 소뿔조차도 녹아서 꼬부라진다는 뜻으로, 삼복 날씨가 몹시 더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너무 더워서 점심시간에는 근무지 인근의 도랑(매우 좁고 작은 개울)을 찾았다.

양말을 벗고 발을 담그니 비로소 사는 듯했다. 오늘처럼 더워서 미칠 지경일 때는 가벼운 잠시의 탁족(濯足)조차 피서의 일환이 된다. ‘삼복더위’에서 눈여겨 살펴볼 글자의 대목은 바로 ‘엎드릴 복’(伏)이다.

이 한자는 사람(人)이 개(犬)처럼 엎드려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날씨가 얼마나 더웠으면 한자마저 이를 형상화했을까. 과거엔 삼복더위가 닥치면 개고기를 먹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반려견 인구가 1천만 명을 넘어서면서 개(강아지)는 이제 단순한 애완동물이 아닌 한 가족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았다. 당연히 개고기 식용문화 역시 급속도로 사라졌다.

대신 전통적 보양식인 삼계탕의 수효는 특히 오늘 같은 중복엔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아무튼 오후에 접어들자 기온은 더욱 상승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김매기(밭의 잡초를 뽑는 일)를 하다 일어서면 현기증이 나면서 하늘과 땅까지 뱅뱅 돌았다.

이러다 온열질환에 걸리는 건 아닐까 싶어 냉큼 뛰쳐나와 세수를 하고 머리까지 감았다. 그리곤 선풍기를 ‘강’으로 튼 뒤 잠시나마 소스피란도(sospirando) 마인드의 차가운 감성을 지니자고 다짐했다.

그러자 비로소 더위가 한결 물러나는 느낌이었다. ‘소스피란도’는 음악의 악보에서, ‘아주 슬프게 연주하라’는 뜻이다. 날씨가 너무도 고약하게 덥다 보니 슬프기는커녕 버럭 부아까지 치미는 날이었다.

그렇지만 ‘여름이니까 덥지, 겨울이면 왜 더울까?’ 라는 어떤 역지사지(易地思之) 마음가짐으로 치환하는 자세도 때론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달력을 보니 8월 15일이 말복이다.

광복절과 맞물린 걸로 보아 그날부터는 비로소 폭염으로부터 우리도 해방이 되지 않을까 싶다. 선선한 가을이 벌써 오매불망(寤寐不忘) 기다려지는 중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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