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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만학도 이혜원
나는 만학도 이혜원
  • 소경희 기자
  • 승인 2022.07.26 06: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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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세 동아보건대학교 간호학과 4학년 재학 중인 학생을 만나보자

[뉴스포털1]= 소경희 59세 나이에 공부를 도전하여 지금은 간호학과 4학년인 현재 63세 만학도를 만나 보았다.

혹여 나이가 많아서 꿈을 포기하는 분이 있다면 이 분의 이야기를 들어 보고자 한다.

학교에서 산책중
학교에서 산책중

60년생으로 인천 주안에 살고 있다그러나 전남 영암이며 교수님 들 보다 더 나이가 많은 만학도이다

목포에 처음 발을 디디며 아! 조선 팔도 어디든 갈 수 있구나!   새삼

깨닫고 희열을 느꼈다..

물론 여행은 비행기도 타며 잘 다녔지만 4년을 심어야 한다는 생각에 투철한 각오와 함께 임하였다.

입학식때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온 신입생들을 보며 내가 좀 한심한 생각이 스쳤다.

거기다 박사 까운을 입은 교수진 들이 나보다 젊어 보여 내가 저 강단에 있어야지 왜 여기 앉아 있는가 라며 자존심이 상해 희비극이 엇갈리는 시간이었다.

어떤 교수님께서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고 궁금해 하셨다.

공부하는데 눈은 괜찮은 것이냐며 노학생을 염려 해 주신다.

어떤 이는 밥 먹고 살만하니 공부 하겠지 라고 일축하는 소리도 들었다.

과연 밥 먹고 산다고 공부하는 인생이 몇 명이나 될까?

나는 고정관념을 깨고 환경을 뛰어 넘기를 권면 하고 싶다.

4년이 다 가도록 공부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목적이 있는 삶이 매우 나를 튼튼하게 잡아 주었다고 생각한다.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달리기를 하였더니 이곳 저곳 병원에서 일하러 오라 한다. 오직 하나. 뒤쳐지지 않고 학생들과 함께 가야 하기에 늘 학우 들과 소통하며 노력하고 잠을 줄여가며 학업에 임하였다.

젊은 학우들의 머리를 따라 갈 수 없기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였다.

기숙사 생활을 하며, 그야말로 컴퓨터 동냥을 하고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수강신청과 국가장학금을 신청했다. 뿐 아니라 잡다한 일들이 너무나 많아 사무직원을 방불케 한다.

컴을 다루지 않으면 학우들과 함께 갈수 없는 디지털 시대이다.

지금은 페이퍼 시대가 아니여서 난 시대의 갭을 메꾸어 가느라 전전긍긍하였다.

4학년이 되니 후배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은 부럽습니다 .선배님! 그리고 한숨을 내쉰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나도 1학년때 옆방 선배를 하늘같이 여겼다. 어떻게 고생하는지 알기에 하는 말이다.

간호 학생들의 고충을 살짝 귀띔해 주었으나 그보다 더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은 누구든지 할 수 있다 라고 긍정의 힘을 실어 주고 싶다.

하여 목적을 위해 내가 죽겠노라 하는 의지만 있다면 된다고 본다환경을 바라보고 지레 겁먹지 말자

환경을 뛰어 넘는 초능력은 절박함 속에서 나오지 않는가

한걸음을 디디면 한걸음이 열리고 또 한걸음을 걸으면 한걸음이 열리는 것을 알기 바란다. 나는 그렇게 걸어 왔다.

더딘 것 같고 너무 지루한 것 같아도 어느새 다다라 있었다.

< 간호의 길 >

요양 보호사로 시작하여 간호 조무사로 병원서 근무하였다.

내가 나이 들어 일을 할 수 없으면 나를 필요로 하는 아프리카라도 가서 예방 주사를 놔주며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겠다 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간호사로 봉사하고자 하는 영감이 왔다.

그때 날자는 1811월 초였으며 막연한 생각과는 달랐다.

경기도권은 경쟁률이 너무 세서 엄두를 낼 수 없었고.

진학사를 통해 알게 된 시골 산꼭대기에 동아대 간판이 촌스러우면서도 정감이 있어 나를 받아 줄 것만 같았다.

다행이 연락이 오고 탁월한 선택을 하게 되었다.

정말 내가 3월 봄이 되면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것인가?

남편에게 무어라 말하고 전라도 까지 가서 공부한다 해야 하는 것인지.

12. 1.2월 날자는 자꾸 가는데 오늘 말해야 하나 ? 지금 말할까?

3개월 간 씨름을 하다 학교 가기 2주전 식탁에서 입을 벌리니 남편은 방으로

들어가 누워 버렸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죽어도 가야 한다며 나의 의지를 밝히고 대신 내가 벌어 학교에 다니겠다는 약속아래 허락을 받았다.

지난 1212. 3개월간 에 컴퓨터 학원을 다니고 장롱 면허를 찾아 연수를 3차례 받으며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학교를 다니다 돈이 부족하면 대출이라도 받아야 겠다는 각오와 함께 였다.

목적을 향해 가는 길은 해쳐나가야 하는 일들이 이렇게 많이 있었다.

계란 후라이도 못하고 안 하는 사람.

냄비 속에 찌개가 있어도 못 봤다는 사람에게 밥을 해 먹으라며 나는 보따리를 쌋다 .

우리 학교에서 제일 나이 먹은 만학도가 왔음에 학교는 뒤숭숭.  온 교수님 들의 눈과 귀가 나를 주시하는 것 같았다.

학교에 오니 창가나 뒷 부분에 앉아 있는 남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남학생들의 숫자가 근 3/1은 되었다.

분위기가 여학생만 있는 것 보다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이 내용을 쓰는 것은 아들이나 조카들에게 간호사의 길이 있음을 이끌어 주거나 밀어주기를 바램이다.

간호대를 나와 간호사가 되면 전문인으로 취직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아 남학생들도 선호하는 학과가 되었다.

과제와 시험에 밀려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코로나로 책상에 앉아 강의 듣고 과제 하며 시험 치는라 나의 허리는 근수가 더 많이 나가게 되었다.

1000 시간의 병원 실습으로 해남과 목포 병원 부근에 학우들과 방을 얻어 살며 실습 후에는 어김없이 테스트와 발표를 하였다. 시험은 정말로 부담이다.

그러나 지금보니 확실히 학우들과 나는 간호인으로 더욱 성숙해져 가고 있었다.

이제 그리웠던 학교에 다시오면서 하루종일 새소리를 듣고 자연을 누리며 옛 사람들을 만나 반가와 했다.

전문인이 갖추어야 할 지식과 태도 ,기술에서 어떤 환자라도 대응 할수 있는 간호사가 되기까지는 또 새로운 길목에 접어 들어야 한다.

생명살리는 일에 동참케 됨을 감사하며 간호인의 자부심을 가지고 나갈 것이다.

간호학과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
간호학과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