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열린 올해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통일부는 대통령에게 북한 비핵화를 위해 제시할 '담대한 계획'에 북한이 더는 핵 개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수준의 경제협력 및 안전보장안을 담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권영세 통일부장관은 업무보고 후 브리핑에서 '담대한 계획'은 '선 비핵화' 또는 빅딜식 해결이 아니라면서 어느 정도 비핵화 조치가 이뤄지면 우리의 상응조치와 북한의 추가조치가 상호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설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안보우려 해소, 경제난 극복 방안 등을 함께 제시해 북한이 핵을 더 이상 개발할 필요를 못 느끼게 할 정도의 안을 준비 중이라는 것이다.

권 통일부 장관은 그에 앞서 지난 13일 통일연구원 주최로 열린 한 학술대회에서 새 정부가 북핵문제 해법 등 대북정책을 담을 '담대한 계획'을 구상하고 있으며 꼭 선(先) 비핵화를 고집하지는 않겠다고 밝힌 바도 있었다.

한국과 미국의 북핵수석대표인 김건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성 김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도 22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만나 대북정책 로드맵에 대한 구체적이고 심도 있는 협의를 했다. 성 김 대표는 주인도네시아 대사를 겸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는 우리 측의 ‘담대한 계획’도 논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북한을 도울 ‘담대한 계획’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북한의 선 비핵화가 전제되고 있었다. 이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하면 1인당 주민 소득을 3천 달러까지 올려주겠다는 이명박(MB) 정부의 '비핵·개방 3000'과 비슷한 기조였다.

권영세 장관은 통일부가 준비하고 있는 ‘담대한 구상’이 '선 비핵화' 또는 빅딜식 해결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이날 업무보고를 받은 윤 대통령은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를 수용할 경우 제시할 담대한 제안에 대해 현실성 있는 방안을 촘촘히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를 수용할 경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만약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를 수용할 경우’가 북한의 선 비핵화를 의미한다면 ‘담대한 계획’은 공허한 구상이다.

북한은 그동안 비핵화 의지를 밝혀왔다. 그리고 조건과 절차를 분명히 해왔다.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안전 보장이 이루어져야 하며 비핵화는 이러한 안전조치와 단계적・동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4.27판문점선언, 6.12싱가포르합의 등에서 남한도 미국도 이에 동의했었다. 남과 북이, 그리고 북한과 미국이 관계개선을 이루며,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완전한 비핵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 세 약속의 동시진행이, 또 단계적 진행이 전제되고 있었다.

더 이상 진전이 되지 않은 것은 싱가포르선언 이후 미국이 존 볼턴 등 네오콘들의 반대로 선 비핵화 입장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도 싱가포르합의 계승을 언명하고 있으나 대화의 문은 열려있다고만 할 뿐 정의용 전 외교부장관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증언하는 것처럼 어떠한 실질적 제안도 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윤석열 정부 들어선 이후에는 미국은, 새 정부의 미국 편향정책에 힘입어, 한반도의 비핵화 보다는 북한의 핵무장에 대응하여 한반도 주변 핵무력 강화, 일본의 재무장,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 등을 모색하며 이를 기반으로 대(對) 중국 포위망을 구축하는데 힘을 쏟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한반도가 미중 갈등의 대리전장이 되어선 안 된다. 물론 남북 간에 무력충돌이 있어서도 안 된다.

한반도의 평화적 비핵화를 위한 노력은 남북 간에, 또 북미 간에 이미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에 합의한 4.27판문점선언과 6.12싱가포르합의에서 출발해야 한다. 새 정부의 ‘담대한 계획’도 이들의 계승 위에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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