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와 ‘웬수’의 차이

인생은 생각과 달리 꽃길만 걸을 수 없다
인생은 생각과 달리 꽃길만 걸을 수 없다

근무 중 동료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어제 지인과 통화를 하는데 ‘너는 네 남편의 이름을 휴대폰에 뭐라고 저장했니?’라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웬수’라고 했더니 깔깔 웃었습니다. 그러면서 빨리 ‘원수’로 바꾸라고 하더군요.”

 

원수와 웬수의 차이는 극단적이다. 원수(元帥)는 군인 장성 계급의 하나로 대장의 위로 가장 높은 계급이다. 별이 자그마치 다섯 개나 된다. 이 부분에서 모 침대 회사 광고가 생각난다.

 

또 다른 원수(元首)는 한 나라에서 으뜸가는 권력을 지니면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다. 공화국에서는 주로 대통령을 이른다. 원수(遠水)는 먼 곳에 있는 물을 뜻한다. 천수답(天水畓)의 경우, 농사를 잘 지으려면 원수를 근수(近水)로 바꿔야 한다.

 

반면 ‘웬수’는 원수(怨讐)의 방언이다. ‘원수’는 원한이 맺힐 정도로 자기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나 집단을 의미한다. 자신과 살고 있는 남편(아내)을 그렇게 비하하는 것은 인륜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물론 웃자고 하는 행위이긴 하겠지만 말이 씨 되는 법이다. ‘말이 씨가 되는’ 이유는 대개 실제 일어날 확률을 말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영원히 죽지 않고 늙지도 않을 것”이라는 덕담의 말은 씨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넌 큰 사고를 당할 것”이라는 말, 즉 악담(惡談)이 씨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에 상응한 사고의 확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삼사일언(三思一言)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하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 또한 이런 주장에서 결코 자연스럽지는 않다. 평소 술을 좋아하는 민족이다 보니 한 달에 열흘 이상은 만취하여 귀가한다. 과거엔 얼추 만날 인사불성으로 돌아왔다. 그러니 마누라가 좋아할 리 만무였다.

 

이튿날 일어나면 “이 웬수, 어제는 또 누구랑 마셨길래 코가 삐뚤어진 겨?” 틀린 말은 아니지 싶어 함구하기 일쑤였다. 아내와 결혼할 당시, 꽃길만 걷게 해주겠다고 허풍을 쳤다.

부부간에도 관용이 필요하다
부부간에도 관용이 필요하다

하지만 살아보니 인생살이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꽃길은커녕 험산 준령의 고생길만 점철했다. 이 못난 서방을 만난 죄로 아내는 고생을 참 많이 했다.

 

그럼에도 고무신 거꾸로 신지 않고 41년째 곁을 지켜주고 있으니 천사도 이런 천사가 또 없다. 두 아이도 동량으로 잘 길러 주변의 칭찬이 무성하다.

 

나와 같은 베이비 붐 세대는 이미 직장에서 은퇴했거나 지금 한창 은퇴 열차에 오르고 있다. 가장이 직장을 나와 본의 아니게 두문불출(杜門不出)할 때 가장 고민스러운 부분은 배우자의 따가운 눈총이다.

 

“저 웬수는 오늘도 삼식이’(집에서 삼시세끼를 꼬박 얻어먹는 남편을 이르는 말)네?” 말끝에 화살이 달리면 가정불화로 이어진다.

 

이제부터라도 휴대전화에 자신의 남편과 아내를 ‘웬수’로 저장했다면 지금 당장 ‘원수’로 바꿔라. 왜? 그는 나와 내 가족을 먹여 살린 위대한 ‘우리 집의 대통령’이니까.

 

저작권자 © 한국시민기자협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