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녹원에서 간벌한 대 파쇄 더미에서
숙성된 대톱밥 두엄 속에서
장수풍뎅이 애벌레 수십 마리 발견하다니…

장수풍뎅이에게 좋은 영양식품인 대숲
장수풍뎅이 애벌레의 서식 터전이 되고 있다

애완곤충 장수풍뎅이, 울진곤충여행관
애완곤충 장수풍뎅이, 울진곤충여행관

곤충박사와 함께 떠나는 대숲속 곤충여행⑪ 대톱밥 두엄 속에서, 장수풍뎅이

6월 10일자 본지 칼럼 「댓가지 마술사, 대벌레」에서 필자는 ‘대는 모든 부분이 하나도 버릴 것 없이 우리 인간에게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는 식물이다.’라고 기고한 적이 있다. 대는 생활 용기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한의학에서는 의·약용식물로서 오랜 세월 동안 인간에게 치료와 치유의 미덕을 보여주며 한약재로 사랑을 받아왔다.

대표적인 한약재는 죽여(竹茹)와 죽엽(竹葉), 죽력(竹瀝), 죽근(竹根) 등이 있다.

죽여는 대의 얇은 속껍질로 가래를 삭이며 가슴이 답답한 사람의 열을 내려 불면증에 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

죽엽은 댓잎을 달여 마시는데 열이 나거나 목마름, 풍열이 쌓여 독이 된 종기를 치료하는데 자주 이용했다.

죽력은 대의 줄기를 불에 쬐여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액을 모은 것으로 거담 효과가 있고 중풍으로 정신이 맑지 않은 사람에게 좋다고 전해진다.

죽근은 대의 뿌리로 달여서 따뜻하게 먹으면 갈증 해소에 도움을 준다고 전해진다.

대나무 줄기 안쪽의 텅 비어있는 공간을 두르고 있는 얇은 반투명 막을 담양에서는 흔히 대창이라고 부른다. 대바구니를 하다가 상처가 날 때 이 대창을 붙이면 지혈이 빠르고 상처가 빨리 낫는 효과가 있어 어릴 적에 자주 사용한 기억이 있다.

몇 년 전 담양 ‘ㅅ대자리’회사 ‘ㄱ사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자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대를 썰면 톱밥이 나오는데 이 톱밥을 공장 앞 작은 대숲 한 켠에 모아놓았던 곳에 웬 커다란 굼벵이가 구물구물하다’고 해서 찾아가 봤더니 정말 장수풍뎅이(Allomyrina dichotoma) 애벌레 수십 마리가 숙성된 대톱밥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최근에도 죽녹원에서 간벌한 대를 파쇄해 쌓아놓은 두엄 속에서 애벌레가 서식하고 있는 것을 관찰했다.

장수풍뎅이는 먹이식물(기주식물)이 상수리나 굴참, 갈참, 졸참, 신갈, 떡갈나무 등 참나무과이기 때문에 성충은 주로 상처가 난 참나무에서 흘러나오는 수액을 즐겨 먹는다. 애벌레 또한 참나무 고사목이나 버섯 재배용 종균목 등에서 주로 발견된다. 하지만 참나무를 먹어야할 장수풍뎅이 애벌레가 왠걸! 대의 섬유질을 먹으며 살고 있다니 참으로 깜짝 놀랄 수밖에.

보통 곤충들은 아무 식물이나 먹지 않는다. 먹는 식물만 먹는 기주특이성이 강하다. 한마디로 편식쟁이들이다. 설령 여러 종의 식물을 먹는 다식성(多食性)일지라도 먹이식물이 유전적으로 유연관계가 깊은 같은 과(科)의 식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계-문-강-목-과-속-종의 학문적 분류체계에서 참나무과(너도밤나무과)는 쌍떡잎식물강이요, 볏과(화본과)는 외떡잎식물강으로 강(綱)에서부터 갈라지는 유전적으로 아주 먼 족속이다.

그런데 필자는 담양의 대숲에서 그것도 전혀 상상하지 못한, 어느 문헌에서도 보지 못했던 대톱밥 두엄 속에서 대를 먹고 자라는 장수풍뎅이 애벌레를 발견하다니 참으로 기쁨을 감출 수가 없다.

아하! 그러고 보니 궁금증이 실타래 풀리듯이 조금씩 풀린다. 옛날 어릴 적 늦가을에 초가지붕을 새로 덧붙여 잇기 위해 오래된 볏집을 걷어내면 하얗고 노란 굼벵이가 많이 살고 있는 것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 굼벵이는 매미 유충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제와 보니 새끼손가락처럼 작은 것은 풍이나 점박이꽃무지가 대부분이고 엄지손가락보다 큰 것은 장수풍뎅이 애벌레다. ‘초가집에서 숙성된 볏집을 먹고 자랐다면 분명 벼와 같이 볏과인 대나무도 유전적으로 벼와 유연관계가 깊기 때문에 충분히 대를 먹고 자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궁금증의 실마리가 풀려 이 칼럼에서 최초로 글을 올린다.

국외에서는 태국 치앙마이에 집단으로 서식하는 오각뿔장수풍뎅이(Eupatorus gracilicornis)의 성충이 9월경에 죽순의 즙을 빨아 먹기 위해 대숲에 모여들어 짝짓기를 한다. 특이한 것은 대나무에 매달리기 위해 다리가 한국의 장수풍뎅이보다 길게 진화했다. 애벌레 역시 우리나라 장수풍뎅이 애벌레처럼 대나무 부엽토를 먹고 자라는 특이한 생태를 보여준다.

본초학(本草學)에서 대는 차가운 기운에 단맛을 내는 식물이라고 했다. 대나무자원연구소에 의뢰해 대(죽순)의 성분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수분과 지방, 단백질, 회분, 탄수화물, 식이섬유, 베타카로틴, 무기질(칼슘, 철, 칼륨, 마그네슘, 나트륨, 인, 아연 등), 각종 아미노산과 지방산 등이 풍부하게 함유돼 있다. 사람뿐만 아니라 장수풍뎅이에게도 좋은 영양식품이기에 대숲이 장수풍뎅이 애벌레가 건강하게 자라는 터전이 되고 있다.

▶다음호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곤충칼럼니스트 송국(宋鞠)

담양 출신으로 건국대 생물학과 졸업, 곤충학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울진곤충여행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담양에코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환경부 자연환경해설사 교육 및 평가위원과 각종 생태분야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는 ‘검은물잠자리는 사랑을 그린다’, ‘자연환경해설사 양성교재’, ‘기후야 놀자’-Ⅰ·Ⅱ·Ⅲ권, ‘기후변화 나비여행’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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