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그늘 나비 애벌레가 댓잎만 먹고 자라
조릿대 군락지에서 대량으로 관찰

새 같은 천적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덤불 둘러싸인 지면 가까이 저공비행
수천만년 동안 생존과 자손 번식의 지혜

 

조릿대 잎을 먹고 있는 먹그늘나비 애벌레, 무등산.
조릿대 잎을 먹고 있는 먹그늘나비 애벌레, 무등산.
축축한 흙에서 물을 빨아먹고 있는 먹그늘나비, 가마골생태공원.
축축한 흙에서 물을 빨아먹고 있는 먹그늘나비, 가마골생태공원.

곤충박사와 함께 떠나는 곤충여행⑩ 대숲의 그림자, 먹그늘나비

담양은 어느 곳이나 대숲이 있는 곳이면 마을이 있다. 마을이 있기에 대가 있다. 대는 왜 마을을 이루고 사는 사람처럼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을까?

사람들은 조상이라는 뿌리가 있다. 그 공통의 뿌리, 유전자 얼개로 핏줄이라는 정(情)을 나누며 자자손손 일촌(一村)을 이루며 살아왔다. 대도 역시 대부분 땅속줄기(지하경, 地下莖)로 번식한다. 인간이 옮겨심지 않고 자생한 대숲은 최초의 한그루에서 땅속줄기를 따라 퍼져나가 번식했기 때문에 태생이 같은 한 몸뚱이다. 그러므로 대숲의 모든 대나무 그루 DNA는 똑같다. 담양에서 대는 땅속줄기와 뿌리로 동네 사람들과 끈끈한 정으로 연결고리를 형성하며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대숲 주변에 살면서 애벌레가 댓잎만을 먹고 자라는 나비가 있다. 이 나비는 지금으로부터 약 2천500만여년 전 신생대 제3기 팔레오기의 후기에 출현한 나비로 먹그늘나비(Lethe diana)다. 이후 신생대 제4기의 한랭한 빙하기와 온난한 간빙기를 여러 번 거치며 해수면의 상승과 하강, 기후대의 이동 등 극심한 기후환경 변화에 적응하며 오늘날까지 진화를 거듭해 온 나비다. 우리나라에서는 전국에 서식하며 국외에는 중국, 일본, 타이완, 만주, 사할린, 시베리아 등지에 분포한다.

나비학자 석주명 선생은 먹그늘나비에 대해 ‘조선 나비 이름의 유래기’에서 “먹그늘나비들 중에서 가장 검은 종류이니 적당한 이름이다. 학명의 Diana는 이태리의 여신을 의미하고 있으니 삼림 중에 많은 이 종류의 이름으로는 적당하다.”고 했다.

먹그림나비는 주로 조릿대가 많은 산지에서 관찰된다. 알은 볏과인 조릿대, 이대, 왕대, 솜대, 달뿌리풀, 억새 등의 아랫면에 한 개씩 낳고 애벌레는 이 식물들을 갉아 먹고 자라 번데기가 된 후 나비로 활동한다. 성충인 나비는 연 1~2회 발생하며, 주로 6월부터 8월 여름철에 나타난다. 또다시 나비가 낳은 2세대의 알은 부화해 애벌레로 혹독한 추위의 겨울을 지낸다.

조릿대가 군락을 이루는 곳에서는 대량으로 발생한다. 필자가 관찰한 바로는 6월 중순 비가 온 다음 날 아스콘을 걷어낸 가마골생태공원 산길 습기가 있는 땅바닥에서 수십 마리가 물을 빨아 먹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큰까치수영 등의 꽃에서 꿀을 빨기도 하지만 참나무 수액을 좋아한다. 가끔 동물의 배설물에 앉아있는 모습이 관찰된다.

나는 모습을 보면 호랑나비처럼 직선으로 날거나 높이 날아서 바람을 타고 글라이더가 활강하듯이 날지 않는다. 그렇다고 배추흰나비처럼 나풀거리며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지 않는다. 마치 지진이 났을 때 p파(종파)처럼 상하로 꺾은선 그래프를 그리며 그늘진 가시덤풀 사이로 다니기 때문에 날개가 많이 상할 것 같은데 우화한지 꽤 오래된 나비도 멀쩡하다. 단지 날개가 공기 마찰에 닳아지고 끝이 헤졌을망정 날개 일부가 찢어져 떨어져 나간 나비들이 드물다. 관목림의 가시덤불 사이를 낮게 날면서 곡예비행 하도록 최적화된 녀석이다.

지면 가까이 저공비행을 하면 새 같은 천적의 눈에 잘 띄지 않을뿐더러 비록 적의 눈에 포착됐다고 하더라도 적이 쉽게 내려오지 못한다. 공중에서 날아와 나비를 낚아채서 이륙하려면 확 트인 개활지가 있어야 하는데 사방이 덤불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활주로가 짧아 천적이 날기에 두려울 것이다.

먹그늘 나비는 네발나비과 뱀눈나비아과로 뱀눈 모양의 무늬가 앞날개에 3쌍, 뒷날개에 6쌍, 양쪽 날개 모두 합쳐 눈알무늬가 대칭으로 18개가 있다. 그중에 뒷날개의 첫 번째와 다섯 번째 눈알무늬가 크고 선명하게 보인다. 날개를 팔랑거리면 네 개의 눈알이 번뜩이고 있는 것처럼 보여 멀리서 천적이 보면 섬뜩할 것이다. 날개의 주된 색이 흑갈색으로 그림자처럼 어두운색으로 위장하고 조릿대가 있는 숲속의 나무 밑 그늘진 곳에서 은신하며 살고있는 그늘나비다.

일부 조사된 문헌에는 애벌레가 키가 작은 조릿대만 먹는 것이 아니라 키가 큰 왕대나 솜대 잎도 먹는 것으로 조사돼 있다. 먹그늘나비가 목숨을 무릅쓰고 높이 날아 키가 큰 왕대나 솜대 잎에 알을 낳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설령 알이 부화해 애벌레가 자라고 있다손 치더라도 공중에 있는 새들의 눈에 쉽게 발견돼 먹잇감으로 좋은 표적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먹그늘나비가 수천만년 동안 생존과 자손 번식을 위한 방향으로 진화해 왔을 것일진대 종이 멸종하는 방향으로 우매한 퇴행적 진화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담양자치신문

▶다음호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곤충칼럼니스트 송국(宋鞠)

담양 출신으로 건국대 생물학과 졸업, 곤충학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울진곤충여행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담양에코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환경부 자연환경해설사 교육 및 평가위원과 각종 생태분야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는 ‘검은물잠자리는 사랑을 그린다’, ‘자연환경해설사 양성교재’, ‘기후야 놀자’-Ⅰ·Ⅱ·Ⅲ권, ‘기후변화 나비여행’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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