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편 #1, 최고의 선은 물처럼 이다(왕필통행본 제 8장)

1. 최고의 선은 물처럼 이다 - 왕필통행본 제 8장

原文)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政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

 

直譯)

上善若水(상선약수)

최고로 잘한다는 것은 물처럼 하는 것이다.

水善利萬物而不爭(수선리만물이부쟁)

물이란 우주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면서 하지 않고

處衆人之所惡(처중인지소오)

물은 거기에 있기를 싫어하는 데가 없기에

故幾於道(고기어도)

그래서 물은 도에 가까운 것이다.

居善地 心善淵(거선지 심선연)

물은 세상 어디에나 잘 있으며, 물의 마음은 깊으며,

與善仁(여선인)

물은 어질음을 잘 나눠주고,

言善信(언선연)

물이 전하는 말은 잘 믿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正善治(정선치)

또한 물은 스스로 다스리기를 편안함으로써 잘하고,

事善能(사선능)

물은 능력으로써 사물을 잘 섬기며,

動善時(동선시)

물은 때를 맞추어 움직이기를 잘한다.

夫唯不爭(부유부쟁)

무릇 물은 스스로나 다른 것들과 다투지 않음으로써,

故無尤(고무우)

이를 앞설 것이 없는 것이다.

 

解說)

이 8장에서는 도(道)를 물에 비유하고 바람직한 삶의 자세에 대해 언급하면서 현상적 주변과의 다툼 없이 인의적인 마음을 쓰지 말고 자연스러움을 잃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다. 기존 저자들의 해설서도 그 뜻에서는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고 본다. 다만 “居善地”부터 “動善時”까지의 번역은 다소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노자는 낮은 곳으로 쉼 없이 흐르고, 더러운 곳도 마다하지 않고, 다른 사물과 다투지 않는 물의 속성을 닮아 겸손하고 착하고 평화롭게 살라고 가르친다. 물의 가장 큰 속성은 낮은 곳으로 언제나 밑으로 흐른다는 점이다. 또 물은 남들이 싫어하는 곳도 마다하지 않기에 겸손하기까지 하다. 흐르는 상태이거나 고여 있는지를 따지지 않고 더럽거나 진흙탕이라고 가리거나 꺼리지도 않는다. 흘러가다가 바위를 만나면 멈추기도 하고 시비를 걸지도 않고 옆으로 돌아간다. 이 같은 물처럼 사람은 몸가짐이 고요하면서도 자기를 낮출 줄 알아야만 한다. 외물과 마찰이 없을 것을 주장하는 사상을 물에 비유하여 물은 도에 가깝다고 말한 것이다.

기어도(幾於道, 도에 가깝다)라는 말은 도와 물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표현한 말이다. 왕필은 이에 대해 도(道)는 무(無이)고 물(水)은 유(有)라고 설명했다. 물은 어디까지나 도를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적 사물에 불과하다. 즉 물이 도의 특성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물로 도 자체를 설명할 수는 없다. 물은 근본적으로 유한한 사물의 속성을 지녔지만, 도는 그 한계를 지을 수 없는 무엇인가의 형이상학적 대상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상선약수(上善若水)는 노자의 저서(著書)에 나오는 문장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구 중 하나일 것이다. 노자는 물에 비유해서 정말 좋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가장 좋고 가치 있는 것은 물처럼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은 다투지 않으면서도 만물을 이롭게 하며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도 머문다는 것이다.

특히 여기서는 물이 투쟁심을 줄여서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다른 좋은 것과 대비시키고 있다. 세상 어디에나 잘 있고, 마음은 깊으며, 어질음을 나눠주고, 말을 믿도록 해주고, 편안한 다스림을 주고, 사물을 잘 섬기며, 때를 잘 맞추어 움직이듯이 다투지 않는 평화에는 물을 본받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물이나 시간과 같이 한 방향으로만 가는 것들이 있다. 시간은 앞으로만 진행하지 거꾸로 가는 법이 없으며 물 또한 아래로만 향한다. 하지만 자연의 이치는 참으로 오묘해서 한쪽 방향으로 가는 것들을 다시 그것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되돌리는 순환작용도 존재한다.

가령 비록 세월은 미래로만 흘러가지만 작년에 지나갔던 봄이 다시 돌아와 만물에 활기를 준다. 물은 밑으로 아래로만 흘러서 계곡과 하천을 지나서 바다에 이르지만, 증발되어 구름이 되었다가 비나 눈으로 다시 돌아온다. 물은 그뿐만이 아니라 땅 속으로 스며들어 지하수로 흐르다가 산기슭의 옹달샘이나 동네어귀의 우물로 그 모습을 다시 드러낸다. 만일 이처럼 물이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면 자연의 만물이 정상적으로 그 기능을 다할 수 있겠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물은 도에 가깝다고 했을 것이다. 깨달은 사람이 도를 본받고 물처럼 무위하다는 것은 스스로 물이 되어 몸을 낮추지만 그 작용은 물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과 같다.

 

餘說)

노자의 저서(著書) 중에서 ‘동(動)’은 거의 적용되지 않는 글자에 속한다. ‘동선시(動善時)’라는 문구의 해석에 저자(著者)마다의 차이가 보인다. 노자의 춘추전국 시대는 지금처럼 한자에 문법체계가 없었던 시기다. 문맥의 흐름과 시대 상황과 노자의 직관적인 사고를 아울러 고려하여 해석해야 한다. 따라서 의미의 왜곡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써 앞의 문구인 “事善能”과 뒷문구인 “夫唯不爭”을 살펴야 한다.

“일을 할 때는 당연히 최선을 다하고”와 “무릇 다투는 일이 없으면” 사이에서의 “動善時”에서 키포인트가 되는 글자는 ‘시(時)’, 즉 타이밍이라고 본다. 이 문장의 주제인 “上善若水”의 결어(結語)가 바로 “夫唯不爭 故無尤”이다. 상선(上善)은 도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이 문장의 전체적인 대구의 구조로 보면 그 뜻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최선(最善)은 글자 그대로 가장 나은 방법인데 시간이 지나 더 나은 방법이 나온다면 그 순간 그 방법은 더 이상 최선이 아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가지고 있는 선택지 중 더 나은 방법이라는 의미에서 상선이라는 문자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즉 ‘Most’가 아닌 ‘More’, ‘Best’가 아닌 ‘Better’로서의 上善과 물을 짝지었을 것으로 설명된다.

<활기 정신건강증진연구원장 철학박사 임주완>

<齊和 노장사상연구소장>

<活起 풍수원구원 대표>

<국제웰빙전문가협회 행복 코디네이터 책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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