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편 #6, 우주와 인간의 관계(왕필통행본 제 7장)

天長地久. 天地所以能長且久者, 以其不自生, 故能長生.

是以聖人, 後其身而身先, 外其身而身存.

非以其無私邪, 故能成其私.

直譯)

天長地久(천장지구)

하늘은 크고 땅은 한정되어 있다.

天地所以能長且久者(천지소이능장차구자)

하늘과 땅이 능히 크고 한정되었다는 것은

以其不自生(이기불자생)

스스로 생겨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故能長生(고능장생)

그래서 능히 무궁한 것이다.

是以聖人(시이성인)

이러한 것을 알기 때문에 깨달은 사람은

後其身而身先(후기신이신선)

자신의 몸을 뒤로 빼는 것으로 하여 앞에 나서고

外其身而身存(외기신이신존)

자신의 몸을 버림으로써 그 몸을 보존하는 것이다.

非以其無私邪(비이기무사사)

이것이 나를 주장하지 않음이 아니겠는가?

故能成其私(고능성기사)

그 때문에 능히 나를 마치게 되는 것이다.

解說)

이 7장 역시 난해하기는 무척 난해하고 이론의 생략이 많아 얼핏 이해되지 않는 우주론과 그런 우주를 대하는 인생론이 복합된 노자의 머릿속을 엿 볼 수 있는 글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문장에 나오는 장(長)은 길다는 뜻이 아니고 크다는 뜻이며 구(久)는 오래간다는 뜻도 아니며 막혔다, 한정되다는 뜻이다.

하늘이라는 공간은 무한이지만, 땅은 둥근 구체(球體)로 한정된 크기의 별이다.

하늘과 땅이란 우주를 말함이고 이 우주는 스스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은 빅뱅(Big-Bang)에 의해 1초라는 시간 단위의 몇 만분의 1이라는 짧은 순간에 있어지게 된 존재이기에, 주어진 대로 무궁한 시공간을 누리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터득한 깨달은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태도는 무슨 일에도 앞에 나서지 않고 자신을 뒤지도록 하지만, 그것이 도리어 앞서게 되는 것이고(기독교 성경에서도 앞서는 자가 나중이 되고 뒤서는 자가 앞서게 된다는 교훈과 같은 의미), 자신을 버릴 용기가 있어야만 자신을 보전한다(즉 死卽生의 논리)는 것을 우주의 원리와 같다고 본 것이다.

잘난 척 앞서지 않으면서도 스스로를 버릴 줄 안다는 것은 나를 주장하지 않아야만 가능한 일이며, 그러므로써 도리어 그러는 나를 바르게 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성(成)이라는 글자를 ‘이룬다’가 아니라 ‘마친다’로 보아야 바른 해석이 된다.

노자를 읽을 때는, 잘 안다고 생각하는 글자도 그 글자의 뜻이 진정 무엇인지를 반드시 한한대자전(漢韓大字典)에서 다시 찾아보아야 한다.

餘說)

우주공간(Space)은 길이가 150억 광년일 만큼 그 어느 방향으로도 길다. 그리고 별들은 우주가 생긴 때로 거슬러 갈만큼 오래 됐다.

이들이 왜 이리도 크고 오래 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이들이 스스로 생겨나고 싶어서 생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시공간(Space-Time)은 빅뱅(Big Bang)으로 인해 자의와는 상관없이 생겨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단 한마디도 덧붙일 말이 없다.

우주가 이러하다는 것을 깨친 인간이라는 존재는 우주와 마찬가지로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기에, 앞서서 무엇을 할 수 있는 존재로 태어난 것이 아니기에, 자연을 뒤따라야만 그것이 나를 앞세우는 존재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내 몸이 그 자체로 자연이기에 나라는 의식을 버려야만 내 몸이 존재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발양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나라는 개인(私)이 없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 생각을 가져야만 진정한 나라는 존재를 이룰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이 이 우주에서의 우리 인간의 위치이다.

여기서 우리는 힌두의 공(空, Sunyata, The aesthetic ultimate undifferentiated continuum) 사상과 노자의 무아(無我, 無爲)가 그 의미에서는 같은 것임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인간은 우주의 일부이지 독자적인 존재가 아니기에 삶과 죽음도 오직 순환 내지 변화일 뿐이다.

* 『有物來來不盡來(유물래래부진래)

이 세상 모든 것 생기고 생겨 생김에 끝이 없으니

來纔盡處又從來(래재진처우종래)

오는 것이 겨우 다 되었다 싶으면 또 생겨나

來來本自來無始(래래본자래무시)

생겨나고 생겨남이 본래 시작 없음에서 생겨 나는데

爲問君初何所來(위문군초하소래)

그대에게 묻노니 애당초 어디에서 오게 되었는가』

이 시(詩)는 조선조 성종부터 명종 때 활동한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이 지은 <유물(有物, 만물)>이라는 제목의 시다.

화담은 어릴 적 대학(大學)을 공부 할 때 치지재격물(致知在格物)이 나오자

"학문을 하면서 먼저 격물을 하지 않으면 어디에 쓰겠느냐"며 탄식했다고 한다.

격물(格物)과 치지(致知)는 大學의 8조목(條目) 중의 하나인데 格物은 物에 이른다는 것으로 하나하나의 物에 대한 리(理)가 지(知)에 의하여 구극점(究極点)까지 도달한다는 뜻이다.

이 시(詩)는 아마도 格物에 관한 철리(哲理)를 읊은 것으로 생각된다.

<활기 정신건강증진연구원장 철학박사 임주완>

<齊和 노장사상연구소장>

<活起 풍수원구원 대표>

<국제웰빙전문가협회 행복 코디네이터 책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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