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명리학과 체용, 역술인과 무속인

 체용(體用)이란 것은 이기(理氣)와 마찬가지로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로 볼 수 있다.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체와 용은 이기와 마찬가지로 불상잡(不相雜)이면서 하나인 것이다. 사주명리학에서의 체용에 대한 견해는 순수철학과 그 시각이 조금은 다르다. 순수철학 측면에서 보면 체용의 근원으로 도(道)가 존재한다. 즉 도 안에 체와 용이 있는 것이다.

 

 사주명리학에서 사용되고 있는 체와 용에 대하여 <적천수>의 논정신(論精神)에 보면 '인유정신(人有精神)'이라는 문구가 있다. 즉 사람에게는 정신이 있다는 말이며 사람은 정만 있어도 안 되고 신만 있어서도 안된다. 정신이 온전해야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으며 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체만 있어도 안되고 용만 있어도 안되는 것이며 체와 용이 함께 있어야 작용을 한다. 즉 체와 용은 상호 분리될 수 없으며 나누어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개념상 구분키 위하여 나눌 뿐이다. 사주의 팔자와 대운은 변하지 않는 명(命)이 있는가 하면, 시의 변화에 따라서 끊임없이 바뀌는 운(運)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사주팔자를 분석해 보면 가만히 있던 글자들이 운의 출입과 오르내림에 의하여 변하게 된다. 즉 10천간과 12지지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사주의 여덟 글자는 정(靜)하여 체의 상태지만 동(動)하면 같이 움직인다. 이는 마치 달의 운행주기에 따라 밀물과 썰물이 생겨나고 지구의 자전에 의해 밤과 낮의 변화에 따른 바람이 일어나고 파도가 치는 것과 같다.

 

 사주팔자는 체로서 불변이지만, 그것의 용에 따라서 발현되는 현상은 여러 갈래이며 그 현상은 시시각각 달라질 수 있다. 사주명리학에서 사주팔자와 운에 대하여 체용을 나눌 때, 일간(日干)을 체라고 한다면 월지(月地)는 용이 된다. 일간과 월지를 체로 본다면 팔자의 다른 여섯 글자는 용이 된다. 또한 사주팔자의 여덟 글자를 체로 보면 대운은 용이 되며 사주팔자와 대운을 체로 보면 세운은 용이 된다. 정해진 사주팔자를 체라고 볼 때 사주팔자가 동하여 현상으로 드러난 것은 용이라 할 수 있다. 사주명리학에서 체와 용은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와 어떻게 구분하느냐에 따라서 그 통변(풀이)에 분명한 차이가 날 수 있다.

 

 한편 일반인들의 경우 상당수가 역술인과 무속인(무당)의 구분을 제대로 못하는 실정이다. 상담자의 과거와 다가 올 미래를 예언해주고 조언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로 학문적인 연구를 기저로 하는 역술인과 신의 소리를 직접 듣고 전하는 무속인이 있다. 역술인은 사주명리학의 문리를 터득한 후에 00철학관이라는 상호로 상담인의 과거와 미래를 예측하는 분야인 반면, 무속인들은 소위 신내림을 받아 신빨로 점을 보는 것이다.

 

 무속인은 대체적으로 직계조상 중의 귀신이 접신되어 특별한 이론적인 수련과정 없이도 접신된 귀신의 능력으로 상담인의 과거를 알아 맞히는 것이다. 무속인의 접신은 일종의 유전병 중의 하나이며 매세대 혹은 한 두 세대 건너 뛰어 나타나는 질병으로 볼 수 있다. 접신된 능력은 평생동안 지속되는게 아니며 통상 몇년이 경과하면 그 능력이 떨어지거나 상실된다. 소위 신빨이 약해진 무속인들이 요즘은 사주명리도 같이 공부해서 봐주는 케이스도 있다. 역술인의 경우 이론공부가 성숙되지 않은 철학관에 가면 엉터리의 사주풀이가 되고, 신빨이 떨어진 무속인의 경우도 엉터리 점을 치게 된다. 무속인을 두 종류로 나뉜다면 강신무와 세습무가 있다. 강신무는 내림굿을 통해 신을 몸에 받아들인 경우이고, 세습무는 말 그대로 사제나 혈통에 따라 대대로 계승되는 무당이다. 요즘에는 무속의 일부가 전통문화로 편입되면서 굿을 별도로 전담하는 학습무가 새로이 생겨났다.

 

 역술은 학문을 바탕으로 하는 직업인 반면, 무속인은 귀신을 숭배하는 신앙인에 해당한다.

<활기 정신건강증진연구원장 철학박사 임주완>

<齊和 노장사상연구소장>

<活起 풍수원구원 대표>

<국제웰빙전문가협회 행복 코디네이터 책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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