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는 옹기 떡시루’ 각광


 미력옹기의 9대를 예맥을 이어가고 있는 이학수(李學洙) 대표는 떡시루만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모든 옹기를 만드는 장인이다. 사람의 키보다 훨씬 큰 항아리에서부터 조그만 종기까지 그의 손을 거치면 흙이 예술이 된다.
한 때 외국 케이크에 자리를 내주었던 생일떡이 다시 주목을 받으면서 떡시루를 찾는 어머니들이 늘고 있다. 지혜로운 어머니들이 작고 귀여운 시루에 떡을 안치고 그 위에 덕담까지 넣는다.
떡집에서 아예 이런 시루에다 떡을 만들어 주는 곳도 늘고 있어 미력옹기는 이래저래 바쁘다. 옛날 가정에서는 생일날 떡 잔치가 끝나고 나면 떡시루에 콩나물을 길러내기도 했다.
떡시루를 만드는 것도 다른 옹기와 똑같다. 다만 모양을 만든 뒤 크기와 비율에 따라 구멍을 내는 일인데 숙달된 장인의 손이 곧 잣대이다. 일정한 크기의 구멍이 깔끔하게 뚫어진다. 대한민국 전수공예미전 특별상 수상의 기능이 그대로 떡시루에서 꽃을 핀다.
떡시루는 지역에 따라 큰 차이가 없지만 항아리는 확연히 구분된다. 전라도 항아리는 어깨선이 넓고 배부르다. 이는 전라도가 곡창이라 여유가 있고 풍요롭기 때문이란다. 경상도는 가운데가 배부르고 경기도로 올라가면 원통형에 가깝다.
옹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미력옹기는 이제 직원이 10여명이나 되는 작은 중소기업이다. 연매출도 5억여원에 이른다. 아직은 영세한 수준이지만 이씨에게는 걱정이 없다. 2남 1녀 가운데 막내가 대를 이를 요량이어서 자신이 하다가 못하면 자식이 이어가면 된다는 느긋함이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요즘 상당히 고무돼 있다. 90년대 초에 이씨가 개발한 냉장고용 김치단지가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이씨는 아파트에서도 어떻게 전통옹기를 사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냉장고용 김치단지를 만들었는데 ‘통기성’ 이 증명되면서 주문이 끊이지 않는다. 외국에서 관광을 나온 사람들도 한국옹기의 통기성을 주목하고 있다. 이씨가 개발한 김치단지는 냉장고 속에서도 바람이 통하고 썩지 않으면서 정화력을 지니고 있다. 300년 역사의 미력옹기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을 날도 멀지 않다.

미력옹기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이씨의 8대조가 강진에서 이곳 보성군 미력으로 이거해 옹기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9대가 흘렀다. 특히 할아버지(이상조)의 네 아들 가운데 장남 옥동과 3남 래원의 기예가 뛰어나 중요무형문화재가 되었다. 옥동이 이씨의 선친이다.
이씨는 어려서부터 흙 만지는 것을 보고 자랐지만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대학에 다닐 때 고향에 내려왔다가 학업을 중단하고 옹기 일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부친의 반대가 심했다. 옹기는 일제때의 번쩍거리는 광명단 옹기 때문에 뒷전으로 밀려 났었고, 이후 플라스틱 용기, 아파트, 냉장고의 출현으로 완전히 퇴물이 되다시피 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는 누군가는 이 일을 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옹기 일을 시작했다.
90년대 중반까지도 옹기를 거들떠보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읍내에 안경점을 연 적도 있다. 당시만 해도 학원에서 조금만 공부하면 안경사 자격을 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안경점을 열어 밥먹고 아이들 공부는 가르칠 수는 있었지만 ‘흙’에 미련을 떨칠 수 없었다.

그는 다시 미력으로 들어와 처음부터 다시 공부했다. 대학원에 진학해 이론부터 익히고 옛문헌을 뒤져 전통옹기 방식을 고집했다.
옹기의 생명은 흙과 천연유약이다. 흙은 찰기가 있는 미력 흙이 좋고 여기에 철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는 약토와 소나무를 태워 내린 잿물을 섞어 만든다.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법이다. 이 천연유약이 옹기가 숨을 쉬도록 하는 것이다. 마치 사람의 피부에서 땀이 밖으로 배출되지만 물기가 피부 안으로 스미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숨쉬는 옹기, 이는 과학문명으로도 잡을 수 없는 선조의 슬기가 담겨 있다.
90년대 이후 우리사회에 ‘웰빙’ 바람이 불면서 전통옹기가 각광을 받기에 이른다. 서울 경복궁 공예관과 인사동 통인가게 등에서 붐이 시작되면서 전국 곳곳에서 찾기 시작했다.
옹기에 관심이 집중 된 것은 조리방법 중 가장 탁월하고 과학적인 ‘발효’가 옹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옹기는 미세한 구멍이 있어 식품을 썩히지 않고 숙성시키는 힘을 가진 살아 숨쉬는 그릇이다.
미력옹기는 전통옹기의 제조법을 고집스레 지켜 일일이 손으로 직접 만들고 천연유약을 입혀 터널식 가마에서 굽는다. 섭씨 120도를 유지하기 위해 소나무 장작을 때는 등 정성과 시간을 많이 들인다.
천연유약은 옹기 표면에 공기가 통할 수 있는 미세한 구멍을 만들어 줘 음식물이 변질되거나 썩지 않으며 맛과 신선도를 오래 유지시켜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채바퀴 타래기법을 사용해 때려서 만들고 잿물에 담가 구워내기 때문에 살아 숨쉬는 바이오효과를 낸다. 진흙에 물을 줘가며 수차례 메로 두드리고, 께끼로 얇게 썰면서 불순물을 제거한다. 정제된 흙을 판장질로 넓적하게 펴서 물레에 올려 밑판과 그릇 벽에 붙여 기본형을 만든다. 그런 다음에 물레를 회전시키면서 옹기의 모양을 잡아간다. 주걱을 길게 늘인 듯한 모양의 수레와 한편에 빗살무늬를 넣은 주먹같이 생긴 조막으로 때려가면서 옹기를 만들어간다. 그런 다음 물레질을 해가며 면을 매끈하게 고르고 물가죽으로 주둥이부분의 모양을 잡는 ‘전잡기’가 끝나면 약간의 무늬를 넣는다.
나무를 넓적하고 얇게 깎아 만든 초승달 모양의 ‘뒷태’로 밑부분을 잡아 그릇을 물레칸 밖으로 들어낸다. 그늘지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서 사흘쯤 말리고 소나무 태운 재와 약토를 넣은 잿물탕에서 한 바퀴 정도 굴려 잿물을 고루 입힌다. 사나흘 뒤 물기가 다 마른 옹기가 한가마분(5백~1천개)이 되면 가마에 불을 지핀다.
낮은 온도의 피움불을 사흘간 피워서 수분을 완전히 제거하고, 그다음 본격적인 돋김불을 지핀다. 이때부터 가마속 온도가 섭씨 1,200도 정도가 될 때까지 일주일간 밤낮으로 불을 때야 한다.
한편, 이씨의 아내 이화영씨도 조소를 전공한 옹기제작 기능전수자다. 부부 장인인 셈이다. 이씨는 무형문화재 지정을 위한 모든 과정을 마쳤다. 2남 1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막내 이레군이 옹기제작에 관심을 갖고 있어 10대의 맥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박원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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