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 건립중인 아시아문화전당이 2014년 준공을 목표로 공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 복합문화공간이 완성되면 해마다 약 300만 명이 광주를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가운데는 동남아 지역을 비롯한 외국인들도 상당수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화통앤아시아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광주에 사는 시민들을 위해 아시아 각국의 대표음식과 특징을 이성희씨(조선이공대 식품영양학과 겸임교수, STHE 요리학원 원장)를 통해 알아본다.

한 국 (Korea)

한국은 지리적으로 동, 서, 남 삼면이 바다다. 북쪽으로는 만주대륙 요하유역까지 연결되어 있어서 북방문화가 전래되었으며, 남쪽으로는 삼면이 모두 바다이기 때문에 해양문화도 일찍이 발달하였다. 이러한 지리적인 여건 때문에 13세기 이전까지는 북방음식의 유입이 주종을 이루었고 이후에는 남방계 식품과 조리법이 유입되었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서구의 음식문화가 도입되어 한국음식문화의 다양성이 생성되었다. 그렇지만 한국음식문화는 ‘밥’의 문화에서 출발하며, 이러한 ‘밥’ 문화는 지역적 날씨, 지형에 따라 다르게 발달해왔다. 즉, 한강 이북지역에서는 팥, 콩, 좁쌀 등을 쌀과 혼합해서 먹었고 한강이남 지역에서는 보리쌀을 혼합하여 먹어왔다.
주식인 밥 이외에도 죽, 면, 떡, 부침개, 약식, 만두, 묵 등이 있으며 ‘밥’문화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 ‘국’인 것이다. 이와 같이 농경사회에서 쌀을 주식으로 한국의 음식문화가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 떡갈비
비빔밥이 처음으로 언급되어진 문헌은 1800년대 말의 ‘시의전서’로서 이 문헌에는 비빔밥이 ‘부, 밥’‘골동(汨潼)반’으로 기록되어 있다. 골동반의 골은 ‘섞을 골’, 동은 ‘비빔밥 동’으로 여러가지를 한데 섞는 것을 의미한다. 즉, 골동반이란 ‘이미 지어 놓은 밥에다 여러가지 찬을 섞어서 한데 비빈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비빔밥이 생겨난 배경에 대해서는 많은 설이 있다.
조선시대 ‘임금의 점심 또는 종친이 입궐했을 때 먹는 식사’라는 설이라든지 여러 차례 음식을 먹는 농번기때 매끼마다 상차림을 준비하기 어려워 그릇 하나에 여러 음식을 섞어먹기 시작한 것이 비빔밥이라거나 또 다르게는 신인공식(神人共食)의 의미로 제사 음식을 그릇 하나에 이것저것 받아먹은 데서 시작되었다는 ‘음복설(飮福設)’도 있다. 동학 혁명군이 그릇이 충분치 않아 여러 음식을 한데 비벼 먹은 데서 시작되었다는 ‘동학혁명설’ 고려 몽고 침입으로 임금이 몽진했을 때 수라상에 올릴만한 음식이 없어 하는 수 없이 밥에 몇 가지 나물을 비벼 올렸다는 것에서 유래를 찾고 있는 ‘임금 몽진 음식설’ 그리고 ‘궁중 음식설’, ‘묵은음식 처리설’, ‘농번기 음식설’ 등이 제기되었으나 어느 것이 확실한가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우리나라 전라북도 전주시에 가면 비빔밥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궁중요리의 대명사 신선로는 열구자탕, 구자탕, 탕구자라고도 한다. 여러가지 어육과 채소를 아름답게 돌려 담고 장국을 부어 끓이면서 먹는 음식이다. 하지만 신선로는 궁중요리가 아니라 원래 조선 전기 문신 정희량의 청빈정신에서 유래되었다. 정희량은 무오사화를 겪은 다음 속세를 피해 산중에 은둔하여 살았는데 이때 대접모양의 그릇 가운데 숯불을 담고 주변에 채소를 담아 익혀 먹었다고 한다. 정희량이 죽은 뒤 이 화로가 세상에 알려졌는데 정희량의 신선의 기풍이 있다고 하여 그가 사용한 화로를 '신선로'라고 불렀고, 이것이 궁중에까지 전해졌다.

떡갈비는 본래 궁중에서 임금이 즐기던 고급요리다.
쇠고기를 다져 만든 모양이 떡을 닮아 떡갈비라 불린다. 임금이 체통없이 갈비를 손에 들고 뜯을 수 없다는 뜻도 숨어있다. 궁중에서 유래한 떡갈비는 전라도 담양, 화순과 경기도 광주, 양주 일원에 전해져 오고 있다. 하지만 향토색에 따라 그 요리법이 전혀 다르게 발전해왔다.
구한말 나인들에 의해 전해졌다는 경기도의 떡갈비는 우선 모양부터가 시루떡처럼 넓고 납작하다. 갈빗살을 커터나 믹서로 다져 양념을 버무린 가운데 갈비를 붙여 만든다. 그래서 약간 질기고 퍽퍽한 맛이 없지 않다. 귤이 강을 건너 강남으로 가면 탱자가 된다고 하지만 전라도로 내려간 떡갈비는 향토색과 어우러져 독특한 요리로 발전했다. 유배 내려온 양반들에 의해 전해진 남도 떡갈비 가운데 담양 떡갈비는 단연 백미다. 6백50년전 노송당 송희경 선생에 의해 전해졌다는 담양 떡갈비는 모양과 요리법 자체가 경기도의 떡갈비와 맥을 달리한다. 담양 떡갈비는 우선 다진 쇠고기 살을 쓰지 않는다. 처음부터 쇠고기 갈빗살을 골라 등심부위에 잔칼질을 한 후 3번에 걸쳐 양념을 고르게 바른다. 일반 떡갈비와 달리 잡고기가 전혀 섞이지 않는다. 양념한 갈빗살을 채치듯이 다지고 동그랗게 다듬어서 갈비뼈위에 올려놓고 굽는다. 귀찮을 정도로 손이 많이 가지만 대신 갈비는 뜯는 맛이라는 말처럼 부드러운 쇠고기맛과 갈비 뜯는 재미를 함께 즐길 수 있다. 크기도 아이들 손바닥만해서 먹기 편하며 때깔이 곱고 정갈하다.

일 본 (Japan)

한국이나 일본은 바다에 에워싸인 자연환경이 비슷해 해산물이 풍부하다.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농산물을 수확할 수가 있기 때문에 요리의 재료도 대부분 비슷하다. 하지만 요리의 방법이나, 식사법, 맛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일본 양국 모두 주식은 쌀이며 밥, 반찬, 국이 하나의 세트처럼 되어 있는 것도 비슷하다.

일본 라멘은 19세기 말 중국에서 전해져 왔다고 알려져 있다. 중국인들이 쓰던 ‘라이(來)’ 라는 말과 ‘미엔’ 이란 말의 합성어인 ‘라멘’은 중국의 볶음면 형태로 일본에 전해진 바 있다. 일본인들은 이런 볶음 라멘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끔 변경해왔는데, 일본 간장인 ‘쇼유’를 넣거나 고소한 ‘미소’를 풀어서 일본식 육수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 일본 샤브샤브
샤브샤브의 유래는 중국의 ‘슈안양로(양고기를 뜨거운 화로에 데쳐 먹는 요리로, 흔히들 훠궈라고 하는 요리)’가 기원이다. 교토의 한 가게 점주가 중국에서 생활한 사람으로부터 먹는 방법을 배워서 일본인의 취향에 맞춰 양고기를 대신하여 소고기를 넣어 먹은 것이 시작이다. 샤브샤브라는 이름은 1952년도에 오사카의 한 사람이 자신 가게의 메뉴로 만들면서, 이름을 지었고 1955년도에 상표등록도 하였으며, 이 때 지어진 이름이 정착한 것이고 샤브샤브라는 뜻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살짝살짝 데친다는 의태어에서 나왔다.
중국의 슈안양로와 일본의 샤브샤브의 가장 큰 차이점은, 우선 사용하는 고기가 다르다. 슈안양로는 양고기이고(‘슈안뉴로’는 소고기), 샤브샤브는 소고기나 돼지고기(특정지역에 따라 닭고기, 양고기도 있음)를 사용한다. 그리고 찍어먹는 양념장은 비슷하나, 슈안양로의 경우에는 양념장에 독특한 향이 나는 야채를 넣어 먹거나 마늘장아찌도 함께 곁들여 같이 먹지만 샤브샤브는 깨를 갈아 만든 양념장이나 간장을 넣어 만든 양념장에 그냥 찍어먹는다.

니기리즈시(생선초밥)·마끼즈시(김초밥)·이나리즈시(유부초밥)·지라시즈시(비빔초밥)·하꼬즈시(상자초밥) 등 스시의 종류는 다양하다. 니기리즈시(생선초밥)-생선 초밥은 밥이 적고 위에 얹힌 생선이 클수록 맛이 있다. 일본 사람들은 생선 초밥 중에서도 붉은색의 참치(다랑어)로 만든 마구로 스시를 즐겨먹는 편이다. 일본 사람들이 참치를 먹기 시작한 약 100년 전에는 냉장고가 없었기 때문에 참치를 간장에 절여서 손수레에 싣고 다니면서 팔았고, 그때 참치가 간장 빛깔로 물들어 마구로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다.

중 국 (China)

■ 북경요리
북경 지방은 겨울이 추우므로 자연히 높은 칼로리가 요구되는 음식들이 많다. 북쪽에 있는 만큼 화력이 강한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튀김요리와 볶음요리 등 맛이 진하고 기름진 요리가 특히 발달하였다. 청나라 초기부터 많은 왕들이 궁정요리사로 산둥성 요리사를 고용했고, 이때부터 일반적인 음식점도 대부분 산동사람들이 주도했기 때문에 북경요리는 궁중요리와 소수민족, 산동요리의 색채를 골고루 지니고 있다.
대표요리 : 튀김, 볶음, 만두류, 북경통오리구이, 해삼조림,상어지느러미, 곰발바닥, 제비집, 오리물갈퀴

■ 광둥요리
광둥요리는 “먹는 것은 광동에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광동지역은 옛날부터 요리가 발달한 곳이다. 특히 외국과의 교류가 빈번함에 따라 전통요리의 특성과 국제적인 요리의 특성이 조화를 이뤄 독특하게 발달했다. 자연의 맛을 살리는 담백함이 특징인데, 서유럽 요리의 영향을 받아 쇠고기, 서양채소, 토마토케찹 등 서양 요리재료와 조미료를 받아들인 요리들이 있다. 간을 싱겁게 하고 기름도 적게 써 가장 대중적인 요리로 꼽힌다. 크게 광저우 요리와 차오저우요리, 푸저우요리로 나뉘는데 기본은 차오저루 요리이다.
대표요리 : 탕수육, 어린통돼지구이, 딤섬, 팔보채

■ 사천요리
사천요리는 중국의 서부인 운남, 쓰촨 등 산지 방면의 요리로서 기름지지 않고 매운 것이 특징이다. 이 지역은 바다가 멀고 더위와 추위가 심한 곳으로 예로부터 이러한 악천후를 이겨내기 위하여 마늘, 파, 고추 등 향신료를 많이 쓴 매운 요리가 발달하였다. 또한 내륙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식품의 저장법이 잘 연구되어 소금 절임, 건어물 등의 보존식품이 발달하였고, 특히 채소요리가 뛰어나다.
대표요리 : 마파두부, 깐쇼새우, 새우칠리소스

■ 상해요리
상해요리는 양쯔강의 하류에 위치한 평원으로서 풍부한 미곡과 해산물을 이용한 난징요리가 발달한 곳이었으나, 19세기 이래 유럽의 대륙잠식정책의 희생으로 상해가 조계지가 되면서부터 농산물과 해산물의 집산지가 되었다. 이로 인해 요리도 자동적으로 다양하고 독특한 것이 만들어져 중부 중국의 요리를 대표하게 되었다. 상해는 비교적 바다와 가깝기 때문에 해산물을 많이 이용하고 조미료로 간장과 설탕을 많이 쓰기 때문에 달고 진한 맛이 난다. 색이 화려하고 선명하도록 음식을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쌀을 재료로 한 요리와 게, 새우, 물새 등의 요리로 정평이 나 있다.
대표요리 : 털게요리, 생선, 새우, 바닷가재, 꽃빵, 두부요리

▲ 중국 마파두부
예전에 도시에 사는 어느 귀부인이 길을 가다가 잘못 들어서서 해가 저물었다. 어둠속에서 간신히 외딴 집을 찾아내고 주인을 찾으니 머리가 하얀 노파가 나왔다. 부인이 하룻밤의 숙식을 청하니 할머니는 머리를 저으면서 우리 집에는 두부 1모와 고추1개밖에 없으니 다른 곳을 찾아가라고 하였다.
부인은 그래도 좋으니 요기를 하자고 하자, 노파는 손님을 방에 모시고 부엌에 들어갔다. 한참 후에 노파는 상에 불그스레한 매운 맛의 두부 요리를 얹어 가지고 와서 어서 들라고 했다. 몹시 시장하던 부인은 자기도 모르게 시장이 반찬이라고 정신없이 맛있게 먹고 다음날 집에 돌아와서 생각하니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두부 요리가 제일이구나’하는 생각에 ‘마파두부’ 라고 이름 지었다 한다.

중국말로 탕(糖)은 ‘엿’, 수(醋 :추)는 ‘식초’인데, 합쳐서 탕수라고 하면 ‘튀긴 생선이나 고기를 양념하고 끓인 녹말즙을 붓다’라는 뜻이고, 육(肉)은 ‘돼지고기’를 가리킨다. 탕수육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첫째는 사천 탕수육으로 탕수육 자체에 매콤한 맛이 나는 탕수육이고, 둘째는 광동 탕수육으로 우리가 보통 먹는 탕수육이다. 그리고 탕수육은 중국 사천지방의 요리인데 사천(川菜)요리의 특성은 내륙요리의 진수로서 중국 서부지역의 요리를 대표하며 양자강 상류의 산악지대인 사천, 운남, 귀주 지방의 요리를 말하며 산악지대이기 때문에 향신료, 소금절이, 건조시킨 저장식품 발달하였다.

한 입 크기로 만든 중국 만두로 3,000년 전부터 중국 남부의 광둥[点東]지방에서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한문으로 점심(点心)으로 원래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뜻이지만 간단한 음식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말로는 동진[東晋]때 한 대장군이 자기의 군사들이 밤낮없이 영용하게 싸우는 것에 감동되어 “자그마한 뜻” [点点心意]이라는 것을 표달하기 위해 “딤섬”[点心]을 만들어 군사들에게 접대하여 지금까지 전해졌다고 한다.

베 트 남 (Vietnam)

베트남 요리는 중국의 지배로 인해 중국 요리와 비슷한 점이 많지만, 중국 요리처럼 기름기가 많거나 맵지 않다. 베트남 요리는 담백한 맛이 나는 요리가 많다. 지방에 따라 맛이 다른데, 북부는 짜면서 맵고, 남부는 약간 달며, 중부는 매운 편이다. 요리의 맛을 내는 기본은 늑암이라는 생선으로 만든 소스로, 강렬한 냄새가 있지만 익숙해지면 베트남 요리의 독특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물에 식초를 타고 설탕과 고춧가루를 넣어 만든 양념소스도 요리에 잘 어울리며, 라이스 페이퍼(바인차이)는 쌀가루 녹인 것을 얇게 펴서 찐 다음, 햇빛에 말린 것이다. 주식은 안남미(쌀의 한 종류)로 지은 밥으로 끈기가 적고 푸석푸석하며, 바다와 근접하여 풍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데, 게를 통째로 튀긴 쿠어장무오리 등을 맛 볼 수 있다.
베트남 요리는 생선 소스, 간장, 해선장 등을 사용한다. 베트남식 요리법은 많은 야채, 허브, 레몬그라스, 라임, 카피르 라임 등의 향신료들을 쓴다. 베트남 전 지역에서 가장 강조되는 점은 신선한 야채와 허브를 깊은 맛을 내는 향신료와 함께 내오는 것이다. 또한 베트남인들은 불교식 채식을 먹기도 한다. 베트남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고기는 돼지고기, 쇠고기, 참새우, 다양한 물고기, 닭고기 등이다. 오리고기는 많이 먹지 않는다.

▲ 태국 쌀국수
베트남 쌀국수의 본거지는 원래 베트남 북부지역인 하노이로 알려져 있다. PHO가 베트남 토속음식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50년대 이후로 보고 있다.
본거지가 하노이라는 유래를 뒷받침 해주고 있는 근거는 1880년중반 하노이를 점령한 프랑스군은 당시 베트남에서는 색이 붉은 쇠고기를 금기시하고 소 자체를 신성한 동물로 취급하며 식용으로 소자체를 기피해왔으며 돼지와 닭으로 식단을 꾸미는 것을 알았다. 그 후 프랑스인으로 하여금 소고기가 식단에 올려 지기 시작한 것이다. 퍼(PHO)의 어원을 불어인 퓨(FEU)로 해석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베트남 사람들이 프랑스군의 식사를 “포 토 퓨(pot aufeu 불처럼 뜨거운 그릇 )”라고 불렀던 데서 기인한다.
PHO의 기원을 연구하는 일부 베트남 학자들은 이들이 “포 토 퓨”라 부른 것은 일종의 뜨거운 국물로 프랑스인들이 즐겨먹던 “스프(Soup)”일것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프랑스군이 베트남 주민들에게 처음으로 소의 살코기와 뼈를 어떻게 요리할 수 있는가를 보급 해줬다는 이론이다. PHO에서 뼈와 고기를 삶아 얇게 저며 함께 먹는 것도 여기에 근거한다는 이야기다. 프랑스군이 물러간 후 그들이 남겨놓은 소고기 요리법에 자신들의 고유한 민속음식 쌀국수를 같이하며 하노이를 중심으로 PHO라는 고유의 음식이 창조 된 것이다.

베트남 음식으로 잘 알려진 ‘월남쌈'은 사실 베트남이 아닌 호주에서 더 대중화된 음식이다. 베트남 전쟁 직후 많은 베트남인들은 전 세계로 망명을 신청하였고 그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이민자들이 건너간 곳은 호주였다. 정착 당시 많은 베트남인들이 음식점들을 차렸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던 음식이 바로 ‘월남쌈’과 ‘쌀국수’였다. 다문화 국가인 호주에서 쉽고 풍성하게 즐길 수 있는 월남쌈은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특정한 재료에 구애받지 않는 조리방법과, 월남쌈을 만들어 먹는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부분에 많은 사람들이 호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후 호주 현지인들의 식성에 맞게끔 아보카도나 망고 등 다양한 과일과 신선한 야채들을 싸먹기 시작하였고 라이스페이퍼에 야채 등을 넣고 튀겨낸 ‘스프링롤(짜조)’ 처럼 튀겨서 먹기도 하였다. 월남쌈은 호주사람들뿐만 아니라 한국 유학생들과 이민자들의 입맛에도 잘 맞아 90년대 후반부터 한국에서도 쉽게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춘권(春卷)은 밀가루빵(춘권피)에 각종 야채와 고기를 넣은 것이다. 스프링 롤(spring roll)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음식은 굽거나 튀기기도 한다. 이의 이름은 주로 중국에서 봄에 열리는 신년 행사에서 먹었던 것으로부터 유래하였다.

필 리 핀 (Philippines)

필리핀의 음식은 한국과 같이 쌀이 주식을 이루고 있으며, “가타”라 불리는 코코넛 우유를 음식의 주 재료로 사용한다. 의외로 필리핀에도 중국에서 건너 온 음식이나 문화들이 많이 있는데 필리핀에서 인기 있는 레천(Lechon 돼지구이), 룸삐아(Lumpia 롤빵), 빤싯(Pansit 우동) 등의 대중적인 음식은 중국에서 유래된 것이다. 또한 오랜 시간에 걸쳐 스페인의 식민지로 지배를 받은 까닭에 메차도 (Michado), 메뉴도 (Menudo), 칼로스 (Callos) 같은 스페인 식의 음식들도 이제는 대중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필리핀의 일반 가정에서 주식인 밥과 함께 제일 많이 먹는 것은 닭고기로 필리핀 사람들 누구나가 닭고기를 즐긴다. 또한 일반적인 요리방법들이 대부분 단조로우며 튀겨서 먹는 음식이 많다. 한국 사람들이 즐기는 족발도 필리핀에서는 튀겨 먹는다. 필리핀 사람들은 우리나라와 달리 찰기가 없는 흰 쌀밥을 접시에 수북이 담고 생선 또는 닭고기 작은 한 조각 정도 그리고 반찬 한가지 정도로 소박한 식사를 한다. 아직도 필리핀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일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미개한 나라로 치부하며 음식도 손으로 먹는 걸로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 빈민가 등을 제외하고는 손으로 밥을 먹는 사람들을 찾아 보기가 어렵다.

▲ 필리핀 아도보
‘아도보(Adobo)’란 스페인어로 ‘양념에 재다’라는 뜻. 박테리아 성장을 억제하는 식초를 넣기 때문에 장시간 보관이 가능해 산행을 하거나 여행을 할 때 등 야외로 놀러 갈 때 도시락으로 싸 가져가는 대표적인 요리다. 한식의 장조림, 닭볶음탕, 갈비찜과 흡사한 스튜 요리로 조리 방법은 간단하지만 맛은 초간단 요리라 할 수 없을만큼 깊고 맛있다. 외국인들이 뽑은 베스트 필리핀 요리로 매년 선정될 만큼 소문난 맛을 자랑한다.

우리나라의 찌개에는 생선이든 돼지고기, 닭고기, 심지어 김치, 야채등 먹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찌개 거리가 되듯이 필리핀의 시니강도 돼지고기나 닭고기, 생선이나 조개종류 등 거의 모든 재료를 다 사용한다.단, 우리나라 찌개는 소금, 간장, 마늘등으로 맛을 내지만 시니강은 열대과일인 따마린, 레몬, 깔라만시의 즙을 내어 맛을 내기 때문에 신맛이 난다는 것이 특징이다. 시니강은 일반 가정집에서 주로 국 요리로 먹기도 하고, 집에 손님을 초대할 때 식사로 대접하기도 한다.

레촌은 스페인어로 ‘어린 돼지’를 뜻한다. 필리핀의 대표적인 요리로 돼지를 통째로 구은 것이다. 물론 지역이나 식당에 따라 돼지 이외에 닭이나 소고기를 꽂아 굽기도 한다. 필리핀 사람들은 축제, 명절, 결혼식, 졸업식, 생일, 세례식과 같이 가족과 지인들이 모이는 특별한 날에 레촌을 먹는다. 대표적인 잔치 음식인 레촌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행사의 하이라이트다. 요리 방식은 돼지를 잡아 내장을 제거한 후 입부터 항문까지 쇠꼬챙이나 대나무를 관통시켜 숯불 위에 올려놓고 빙글빙글 돌린다. 이때 젖은 나뭇잎을 묶은 붓으로 돼지 위에 기름을 바르며 서서히 익히는데 기름을 바르면 돼지 껍질이 더 바삭바삭해진다. 그리고 다 익어 야들야들해진 육질의 돼지를 껍질과 함께 잘라 다양한 소스를 곁들여 먹는다.

태 국 (Thailand)

쌀을 주식으로 하며, 음식을 상에 한꺼번에 차리는 것이 우리나라와 유사하다. 양념이나 소스가 아주 맵거나 짠맛이 강하다. 음식에 독특한 향신료의 향이 있으며, 단맛, 신맛, 톡 쏘는 맛의 복합적인 조화를 이룬다.

■지역별 음식의 특징
1. 북부지역 음식-치앙마이가 중심이 되며 태국의 전통적인 맛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다. 찹쌀이 주식이고, 소금을 많이 사용하고, 대부분의 음식이 습식이다.
2. 북동부 음식-찹쌀이 주식이고 코코넛밀크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민물고기로 담근 젓갈을 조미료로 사용한다.
3. 중부지역 음식-방콕이 중심이 되고 멥쌀을 주식으로 하며, 코코넛밀크, 박하, 고추를 사용한 걸쭉한 음식이 많다.
4. 남부지역 음식-코코넛이 사용되는 음식이 많고, 향신료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인도음식과 비슷하다.

▲ 태국 팟타이
태국 음식에 ‘톰(Tom)’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끓이는 찌개 종류를 뜻하는 것이며, ‘쿵(Kung)’은 새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신선로를 연상시키는 도기나 냄비에 담아 끓이는데 새우를 비롯해 버섯, 향기로운 레몬그라스, 생강처럼 독특한 매운맛이 나는 갈랑갈, 태국 음식의 독특한 음식향을 만들어내는 코리앤더, 라임 잎, 고추 등의 재료로 맛을 낸다.

종일 육체노동을 하고 있는 이산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 체력을 받쳐줄 수 있는 것이 필요했다. 태국지역에서 개는 먹지 않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산지역에서 개고기도 요리를 해먹었다. 그렇게 이산지역인들은 계속적으로 고기만을 먹다보니 고기의 느끼한 맛을 없앨 수 있는 야채 음식을 개발하는 가운데 개발된 것이 바로 솜땀이다. 솜땀은 파파야를 넣은 타이식 샐러드로 타이동북부 지역의 전통음식이지만 지금은 타이 전역에서 먹는 대중적인 음식이다. 솜땀은 육류 음식의 기름진 맛을 없애고 상큼한 맛을 주는 음식이다.

팟타이는 쌀국수에 숙주나물을 넣고 볶은 국수로 원조는 베트남의 볶음 국수 Banh Pho Xao Sate이다. 고대 타이의 아유타야 시대에 베트남 상인에 의해 들여져 왔고 태국인들의 입맛에 맞춰 약간의 변화를 주면서 타이 이름으로 팟타이라 붙여진 음식이다. 민족 음식으로 발전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이다.
전쟁이 일어나 쌀 수출량이 급격히 줄자 쌀을 소비시키기 위해 그리고 전쟁으로 직업을 잃은 국민들을 위해 Phibunsong khram 이라는 그 당시 총리가 빡빡한 예산 안에 1932년 대규모 운동을 벌이는데 가난한 서민에게 쌀국수를 만드는 법과 쌀국수 식당 오픈하는 법이나 길거리 수레 장사를 하는 법을 가르쳤다. 지금은 관광 국가로 자리잡으면서 이 민족 음식 마저 세계인들의 구미를 당기는 간단 요리로 자리 잡고 있다.

인 도 (India)

인도는 다인종의 나라일 뿐만 아니라 중동 및 서양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음식도 지역과 종교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인도는 주식에서 간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음식에는 향신료가 사용된다. 장시간 은근하게 찜을 하여 향신료가 잘 스며들어 깊은 맛이 있다.
■ 지역의 음식문화 특징
북부 인도
빵이 주식이고, 채식주의자가 많다. 이슬람교도들이 많아 돼지고기를 이용하지 않고, 약하게 조미한 음식이 많다. 요구르트와 기이(ghee, 맑게 녹인 버터)를 많이 사용한다.
남부 인도
튀긴 음식이 많으며 바나나 잎을 식기로 사용하고 일반적으로 방바닥에 앉아 먹는다. 힌두교도들이 많기 때문에 쇠고기를 잘 이용하지 않고 음식이 맵다. 코코넛 밀크와 크림을 많이 사용한다.

▲ 인도 탄두리 치킨
북부 인도에서는 큰항아리처럼 생긴 탄두르(tandoor)라는 진흙화덕을 이용하여 요리를 한다. 탄두르는 인도의 전통 화덕으로, 흙으로 만들었으며 하루 종일 계속 불에 달구어져 있다. 탄두르의 깊은 바닥에 장작불을 피워 충분히 달군 다음 그 안에 식품을 넣어 굽는다. 탄두리 치킨은 닭을 요구르트와 여러 가지 향신료에 재웠다가 쇠꼬챙이에 꿰어서 탄두르에 넣어 구운 요리로, 향신료가 속까지 잘 배어서 맛이 아주 향기롭다.
밀가루로 만든 둥글고 평평하게 생긴 빵으로, 중앙아시아에서 유래되었다. 씹는 맛이 쫄깃하면서 담백하다. 인도식 수프인 달이나 커리 등에 찍어 먹거나, 난 위에 다른 요리를 올려 싸서 먹는다.
원래는 인도의 전통 화덕인 탄두르에서 굽지만, 오븐을 이용하기도 한다. 난과 비슷한 빵으로 차파티가 있다. 밀가루를 반죽하여 화덕에 굽는 것은 같지만, 난은 이스트를 넣어 반죽을 발효시키는 데 반하여 차파티는 이스트를 넣지 않는다. 또 밀가루도 난은 정제된 마이다를 사용하기 때문에 정제하지 않은 아타를 사용하는 차파티보다 고급이다.

“향기롭고 맛있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던 힌두어 Turarri가 나중에 영국명인 Curry로 바뀌었다는 설과 남인도 타밀어로 소스라는 뜻의 Kari가 어원이라는 설, 석가가 깨달음을 얻은 후 카레라는 지역으로 내려와 민중들에게 설법을 전하면서 머리에 두른 터어번 속에서 나무열매, 풀뿌리, 잎사귀 등을 꺼내어 나눠 주었는데, 민중이 이를 향이 좋고 원기를 돋우는 불로장수의 명약으로 생각하여 그 지역 명을 따서 Curry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 설이 있다.
또는 그 당시 민중이 외친 ‘큐리 큐리(맛있다)’라는 힌두어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카레(정식 명칭은 ‘커리’Curry)의 또 다른 유래로 알려진 이야기로는 옛날 인도를 온 포르투갈인이 스프를 얹은 밥을 보고 뭐냐고 질문하자 인도 사람들은 수프의 건더기인 ‘내용물’을 묻는다고 생각하고는 카레(타미르 어로 ‘야채와 고기’)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에 포르투갈인들은 카레가 요리 그 자체라고 믿고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카레라는 말로 전해져오고 있다고 한다.

몽 골 (Mongolia)

■ 하얀음식 & 빨간음식
몽골 초원민의 식탁은 <하얀 음식>과 <빨간 음식>으로 채워진다. <하얀 음식>은 가축의 젖으로 만든 각종 유제품을 총칭하는 말이다. 여름에서 가을까지 충분히 짜낸 우유로 여러 가지 유제품을 만든다. 유제품은 보존식품으로서 1년 내내 먹는 음식이다. 한편<빨간 음식>은 가축을 도살하여 얻는 육류를 총칭하는 말이다. 가을에 통통하게 살찐 가축을 도살해 혹한기에 대비한다.
몽골 초원민의 식탁은 이와 같이 여름을 정점으로 하는
<하얀 음식>과 겨울을 정점으로 하는 <빨간 음식>이라는 명료한 계절성을 갖는 두 가지 주식에 의하여 유지되고 있다.
여름날 몽골 초원에서는 많은 유목민들이 유제품을 널빤지에 펴거나 가죽부대에 넣어 천막 위에서 햇볕에 말린다. 유제품을 말리기 위한 받침대를 마련하기도 하고,새의 피해를 막기 위해 죽은 까치를 매단 경우도 여름철 몽골 초원에서는 좋은 구경거리가 된다.

▲ 몽골 호쇼르
자주 옮겨 다니는 몽골 유목민들에게는 큰 솥이나 오븐(oven)을 쉽게 나를 수가 없었으니 과정이 다소 긴 술 넣어 부푼 빵을 굽는다든지 부엌에서 시간 걸려 복잡하게 조리하는 음식 습속은 어려워 몽골의 음식문화는 비교적 단순한 모양이다. 만두와 같은 보츠(buuz) 다음으로 몽골의 대중음식이 호쇼르인데 속에다 고기를 넣고 싸는 것은 보츠와 같은 방법이지만 그것을 찌는 대신 기름에 튀긴 것이 다르다.

허르헉은 말고기·양고기·염소고기 등에 야채를 넣고 달구어진 돌을 넣어 익히는 음식인데 옛날 냄비를 가지고 다니기 힘든 유목민 시절, 가죽부대에 고리를 넣고 끊이는 방식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몽골인들이 전통적으로 야외에서 즐기는 음식이다. 허르헉 요리의 특징은 음식 안에 장작불에 달구어진 뜨거운 돌을 함께 넣어 익히는 것이다. 양이나 염소를 잡아서 작은 토막으로 손질한 후 목장에서 우유통으로 쓰는 큰 알루미늄 통에 돌, 고기, 야채, 양념을 넣고 뚜껑을 밀봉해서 장작불로 익힌다. 몇 시간쯤 충분히 익히면 허르헉이 완성된다. 달구어진 돌을 용기에 함께 넣기 때문에 고기가 구워지면서도 수분이 날아가지 않고 용기 안에서 찜을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조리가 된다. 단체로 온 한국 관광객들이 몽골 초원에서 꼭 맛보는 요리이기도 하다.

몽골의 차문화는 보통 12세기 이후에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때에도 지금과 같이 수테차를 마셨는지에 대해서는 연구된바가 없기 때문에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9세기에 이미 요나라와 금나라 그리고 몽골에 의해 중국 북부지방이 지배권역에 들어 있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중국의 차를 마시는 문화가 전해졌으리라고 본다. 고려에 주둔했던 몽골의 병사들은 주로 중국 북부지역을 통해 들어온 병사들이었기에 차를 마시는 문화에 익숙했던 것이다.

글쓴이 이성희(조선대 이공대학 식품영양학과 겸임교수)

저작권자 © 한국시민기자협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