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세종충남 여성벤처협회 명예회장 김영휴, 6살짜리 딸을 모델로 시작한 ‘씨크릿우먼’ 창립 20주년

씨크릿우먼 김영휴 대표
씨크릿우먼 김영휴 대표

 

“나는 전설이 되고 싶다.”

2017년 3월10일, 속보라는 타이틀로 TV화면을 가득 채운 여성의 뒷모습 사진 한 장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엄중한 역사적인 현장이었다. 대법관 이정미 판사의 출근길, 이정미 판사의 뒷머리에 동그랗게 매달린 일명 ‘구리뽀’.

해프닝이라고 하기엔 그녀의 위치는 너무나 특별했고 결국 사회적인 매너의 시작을 알리는 사진 한 장이었다. 대법관인 그녀도 역시 여자였다.

여자들에게 헤어스타일은 바로 자신이다.

씨크릿우먼이 바로 여성의 비밀스런 욕망과 영혼을 터치하고 있었다.

가발이라는 평면패턴으로는 그 비밀의 문을 열 수 없다. 씨크릿우먼은 업계최초 입체패턴으로 두상성형 효과를 넣은 헤어웨어가 세상에 화두를 던지고 있다.

헤어웨어, 머리에도 옷을 입히는 씨크릿우먼의 김영휴 대표. 여성의 자존감과 품격을 높여주는 헤어웨어의 진가로 전설이 되고 싶다는 김영휴 대표가 입은 헤어웨어를 통해 더 빛이 난다.

씨크릿우먼(SSecretWoman)에는 이면의 의미가 또 숨어 있었다. 브랜드에도 스타일(S)에 스토리(S)가 있는 여자(W)라는 뜻으로 첫 글자 S를 두 개 쓴 SSecretWoman, 역시 각별했다.

제품도, CEO도, 직원도, 고객도 모두 스토리가 있는 브랜드 기업이 되는 게 꿈이라는 김영휴대표.

헤어웨어를 만든 사장, 헤어웨어를 입은 고객 뿐 아니라 직원들까지도 삶이 즐겁게 변화한 행운의 사연이 많아 브랜드 에센스가 영원한 행운이다.

30대 후반, 여성이라는 올가미에서 벗어나기

인생은 반전이다.

철학을 전공한 나는 12년차 전업주부로 집에서 수학 과외를 하던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두 아이의 엄마로 공기업에 다니는 남편을 내조하는 30대 후반의 교과서 같은 여성이었다.

모든 상품은 제조업자의 간절함을 담보로 만들어질 때 진품의 역량을 발휘하듯이 나도 그 선상에서 헤어웨어의 시작을 알렸다. 뒷머리에 일명 뽕을 넣고 다니기 시작하다가 수업 받으러 왔던 우리 학생이 “선생님 머리 너무 예뻐요.”라고 던진 한마디에 숨어있던 운명의 문이 열리고 말았다. 사람들이 예쁘다고 한마디씩 훈수를 들자 취미에서 어느새 사업의 문으로 들어섰다. 인생은 느닷없어서 호기심 많은 나에게 오히려 도전과 성취를 번갈아 안겨주었다.

운명 같은 만남은 나를 평범한 주부에서 사장이라는 명함을 갖게 했다.

2021년 8월 27일 대전신세계백화점 Art & Science가 오픈하는 날 빛나는 고객, 감사한 인연들이 찾아와 오프닝을 축하해주었다. 아름다운 여인, 신용보증재단의 박○○ 본부장이 그날의 가장 반가운 얼굴이었다. 다른 고객들이 서운함을 표시해도 고개를 숙여 이해를 구할 수 있다. 생면부지로 만나 20년간 동반성장을 하는 인연의 카테고리로 묶인 여성들의 만남. 사족이 필요 없이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인연이다.

20년 전 평범한 전업주부였던 내가 인조모 가발로 창업의지만 불태우면서 관련기관을 발을 동동 구르며 다니고 있었다. 호기심만 갖고 세상물정 모른 채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을 즈음에 그녀를 만났다. 신용보증재단의 직원이었던 그녀는 열정과 투지만을 담보로 갖고 있던 나에게 5000만 원의 보증서 실사를 나와 응원해 주었다. 당시 초보사업자였던 나의 주소와 사업장주소는 동일했다. 바로 우리 집, 대전 서구 탄방동 ○○아파트 ○○동 ○호. 집주소가 사업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대전 유성 우체국 사서함 66호를 썼다. 사서함 주소의 의미는 당시 내가 시선이 남달랐고 사업가의 인자가 내 안에 숨어있던 반증이기도 했다.

20년 전 평직원이었던 그녀는 본부장으로, 초보사업자로 좌충우돌하던 나도 씨크릿우먼의 대표이사가 되었다. 20년의 세월이 주는 간극을 너무 아름답게 촘촘히 매운 아름다운 여전사들이다. 물론 전사라는 이름 안에 ‘여성’은 손상되지 않고 더 아름답게 무르익었다.

부레 없는 상어로 쉼 없는 여정들이 모아지다

창업 당시 나는 응축된 열정으로 24시간이 모자랐지만 남들이 평가하는 점수는 가발이라는 사양사업을 들고 다니는 어설픈 아줌마도 아니요, 사업자도 아닌 정체성을 어디에 두고 나를 판단해야 할지 나조차도 모르던 시절이다.

초창기 창업지원단에서 나도 응모했던 6개 팀 중 5개 팀이 창업지원팀에 뽑히고 나만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나는 담당자를 붙들고 탈락의 이유를 물었다. 결과에 승복하지 않겠다는 응수가 아니라 이유를 알고 다음에 제대로 도전하겠다는 선의였다.

“제가 떨어진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담당자가 혹여 ‘이 아줌마 왜이래?’라고 말한들 결과를 번복할 수 는 없었다. 그래도 궁금했고 열정만으로 세상을 움직일 수 없다는 처절한 현실도 만났다.

위기는 기회, 다시 끈을 부여잡고 물어물어 연결에 연결을 거듭하며 나는 5천만 원의 창업자금을 지원받고 씨크릿우먼을 시작했다. 포기를 몰랐던 당돌함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여성의 아름다움이 숨겨진 비밀의 문을 열어가는 신호탄을 울리며 씨크릿우먼은 그렇게 탄생했다. 30대 후반의 초보 사업자 김영휴였다.

백조처럼 우아한 자태와 호수 밑의 사정없는 물질, 매 순간 숨을 헐떡이면서 하루하루를 모아갔다.

씨크릿우먼 사옥

단순히 여성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기업이었다면 나는 좌절이 올 때마다 넘어지거나 포기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헤어스타일만 예쁜 여자를 위한 씨크릿우먼이 되고 싶지 않았다. 여성의 자존감과 정체성으로 삶의 변화에 기여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헤어웨어다. 가발이라는 평면컨셉으로 우리 씨크릿우먼의 세계를 재단할 수 없다.

‘나이든 여성은 도서관 한 채와 같다’는 인디언 속담이 말해주듯이 여성의 품에 녹아있는 삶의 지혜가 바로 씨크릿우먼이다. 나도 20년간 수십 편의 드라마를 찍으면서 여기까지 도래했고 ‘이야기공장’을 통해 나의 이야기, 그리고 씨크릿우먼의 이야기들을 하나씩 공유해야 할 사명을 하나 더 얻었다.

출근길 본사 사옥에 들어서면 가지런히 정돈된 화단이 나를 반긴다. 점심 무렵이면 따사로이 내리쬐는 햇살로 행복감은 절정에 이른다. 각층마다 발코니를 두어 사색의 시간에 젖어드는 최적의 공간을 조성했다. 우리는 매일 아름다운 이야기, 삶의 진수를 녹여내는 이야기를 만든다. 여자들이 써나가는 인생의 진수를 담는 씨크릿우먼을 이야기 공장으로 만드는 즐거운 상상을 하고 있다.

내가 여성의 내면과 외연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역량은 태어나면서부터 얻은 축복의 결과물일수도 있다.

첫 번째 축복은 영휴(永烋: 길 영, 아름다울 휴) 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지어주신 아버님과 어머님이 자존감 강하고 호기심 많은 존재감을 심어주셨다. 유년시절 별명이 ‘털손’이었다. 호기심쟁이라 눈에 보이는 신기한 물건은 내 손에서 한 번씩은 해체의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작은 네모박스, 라디오 안에서 들리는 말소리, 똑딱똑딱 시계소리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안에는 뭐가 들었을까. 다 열어보고 뒤집어보았다. 물론 내 나름의 원형으로 복구했지만 절대 처음처럼 복구되지 않았다. 호기심 가득한 나를 향한 질타에 혼나지 않으려 나몰라 하다 보니 ‘털손’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가발’이라는 각별한 아이템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된 단초도 역시 호기심이었다.

대전신세계 Art & Science에 입점한 씨크릿우먼

20대의 축복은 대학에서 철학을 만난 엄청난 기회였다. 소크라테스를 만나면서 내가 얼마나 작은 사람인지 알았고 반면교사로 더 성장하는 계기는 이어서 주어진 덤이었다.

30대의 축복은 전업주부에서 사장이 되었다. 남편과 아이들이 함께하는 집안의 경영자인 평범한 주부의 삶 역시 가치를 논할 수 없을 만큼 귀하고 소중했다. 하지만 발전지향적인 나, 호기심 많은 내가 역량을 발휘하기에는 집은 한정된 공간이었다. 그래서 세상으로 나왔다.

나 혼자만의 영화를 누리기위해서 세상에 나오지 않았기에 20년을 버틸 수 있었고 세상의 여자들이 그리고 그 여자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남자들도 아름다워지기를 바라는 마음하나만으로 여기까지 걸어왔다.

사업은 내일을 모르는 전쟁터다. 오늘은 공격 내일은 수비를 거듭하면서 리더로 소비자로 역할을 오고가면서 페달을 끊임없이 밟아야한다. 바다위의 황제 상어도 부레가 없어 단 한 순간도 쉴 수가 없다. 역동의 기간들이 필요했다. 나는 부레 없는 상어가 되기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코로나라는 위기 속에서 씨크릿우먼도 충격파는 엄청났다. 하지만 나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대전신세계백화점 Art & Science에 입점하면서 또 다시 성장의 발판 위에 한 걸음을 올려놓았다.

한국 여성벤처협회 충청지회로 존재하던 지회를 송은숙 명예회장과 연대하여 10년간 공들여서 대전세종 충남 여성벤처 협회라는 지역사회 여성공유지로 발전시켰다. 지역사회 여성경제 공유지를 만드는 데 헌신을 아끼지 않았다.

여성들인 모인 공동의 장은 아름다움만 존재하지 않는다.

삶의 조건이 달라서 의식과 행동은 반목을 거듭하고 의견일치를 이루는 과정은 살얼음판이다. 그 속에서 여성들이 조금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느라 또 진땀을 빼는 일들은 부지기수였다. 동반성장을 바라는 마음들이 모여 험난한 시간들을 뒤로하고 대전세종충남 여성벤처협회가 존재케 하는데 기꺼이 헌신하며 발전하기를 응원하고 있다. 그 속에서 씨크릿우먼도 함께 성장했고 나의 성장은 더불어 얻어지는 결과물이었다.

미래의 여성,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서 충분한 가치와 역량을 발하다

미래 4차산업혁명 시대에는 여성의 감성을 생태계에 혁명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OECD 국가 중 여성을 자원화 하지 못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아직도 우선순위에 올라와있다. 안타깝고 조금은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육체적인 힘이 약한 여성들이 서서히 생태계에서 다크호스로 거듭날 것이다. 왜? 이제는 감성과 여성의 진화된 이성이 세상을 이끌어갈 장이 펼쳐졌다. 씨크릿우먼이 준비해 왔던 20년의 기간이 다시 또 응집의 결과물을 내고 새로운 문을 열 것이다.

나 역시 전업주부가 철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했지만 활용하지 못하고 전업주부에서 사업자가 되었다. 직장생활을 안 해봐서, 그래서 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나는 사장이 되었다. 주어진 조건에 맞는 결과물을 붕어빵처럼 찍어내던 시절은 이미 과거 속에서 사진 한 장으로 남아버렸다.

사업 초창기는 가발이 핸디캡이라는 편견이 심어져있던 때라 발목을 잡는 일들이 허다했다. 모델이라는 단어는 여성들에게 선망의 단어이다. 수많은 모델은 비용을 지불하면 모두 가능했다. 하지만 가발 모델은 거부하는 사람들의 선입견 탓에 6살짜리 딸을 모델로 기용해서 제품을 어필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에 시장 경쟁에 들어섰다.

가발은 핸디캡을 가진 사람이 사용하는 것이라는 편견이 제품모델로 구할 수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가발이 첨단의 패션상품으로 진화할 것을 미리 짐작한 나의 선견지명이 오늘에 이르게 했다.

고정관념과 편견의 시간까지 뛰어넘으며 씨크릿우먼은 오늘에 이르고 성장했다. 6살 딸은 너무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장했고 그 사이 나는 거목의 나이테처럼 주름이라는 세월의 이름표를 얻었지만 더 아름다워졌고 나를 멘토로 삼은 이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나에게 ‘사장수업’을 들으면서 척박한 시장에서 살아남은 방법들을 배워나간다.

그리고 씨크릿우먼은 올해 창립20 주년을 맞이하여 다시 도약을 하고 있다 헤어웨어와 함께 몸도 함께 건강한 몸으로 거듭나는 이너뷰티 시장에 발을 내딛고 SSecret BFLab(씨크릿 비에프랩)이라는 이너뷰티시장에 도전장을 내었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심신양면과 모습까지 함께일 때 더 온전하다고 생각하며 사세 확장과 함께 기업의 외연을 더 키워가고자 하는 청사진을 가지고 있다.

씨크릿우먼 갤러리

폭염이 우리를 옥죄던 그 시간들을 어느새 소리 없이 지났다. 새벽녘에 찾아드는 한기로 이불을 끌어와 배위에 얹어야 하는 9월이다. 코로나의 올가미에 아직은 갇혀있지만 백신을 통해 희망을 찾아가고 있다. 씨크릿우먼 또한 삶의 백신이 되어줄 출사표를 던져본다.

서글프고 암담한 희망의 부재가 너무 오래 지속되고 있다. 씨크릿우먼이 입체적인 삶, 아름다운 삶에 백신이 되어 내가 꿈꾸는 월트디즈니 같은 세상, 마음껏 상상하고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세상을 그림으로 그린다. 희망의 부재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하나 둘 초대하련다.

서서히 찾아온 가을이 너무 반갑다.

폭염 뒤의 가을이라는 백신을 들고 씨크릿우먼이 어디까지 뛸 수 있을지.

누구보다 호기심쟁이인 내가 가장 궁금한 그림이다.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염원하던 하루, 숙제하듯이 살지 말고 축제처럼 살자는 말을 기억해본다.

자, 희망의 백신을 만드는 축제의 장에 씨크릿우먼이 잰걸음으로 달려보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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