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현 '끝나지 않는 반추 Endless Rumination' 展

강연이나 성공담에서 흔히 다루어지는 미래에 대한 계획은 어린 시절부터 수없이 들어온 건조한 문구이자 먼 훗날 어떤 과거를 기억할 것이며 어떻게 기억될 것인지에 대한 기약 없는 계약이기도 하다. 빛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그 누구도 자신이 밟고 있는 바닥에 드리운 그림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아현은 잠시 빛을 등지고 서서 자신의 의지가 개입되었거나 어찌할 수 없었던 수많은 사건과 선택이 뒤섞인 과거라는 이름의 그림자를 바라본다. 이아현 '끝나지 않는 반추 Endless Rumination' 展은 2021. 8. 4 (수) ~ 2021. 8. 10 (화)까지 전시된다.

이아현 '끝나지 않는 반추 Endless Rumination' 展
이아현 '끝나지 않는 반추 Endless Rumination' 展

기억은 다양한 색을 지니고 있다. 만지고 다가갈 수 없는 공간에서 재구성되는 기억은 현재의 감정과 뒤섞이며 본래 사건이 지니고 있던 색과 형태를 왜곡한다.  마치 분해된 퍼즐 조각의 일부만 관찰할 수 있는 모양이다. 관객으로 하여금 작품에 담긴 이야기를 유추하도록 이끄는 글자 정보는 명확히 알아보는 것을 의도적으로 방해하기 위해 잘려나간 사진처럼 수수께끼의 단서로 화면에 새겨져 있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다양한 색상이 사용되었지만 높은 밀도로 화면을 채우고 있는 형상들의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시간대를 알 수 없는 정적인 분위기를 지니고 있기에 차가운 온도로 다가온다. 단단한 껍질이 없는 연약한 소형 식물은 작가의 고통스러운 후회와 치유가 뒤섞여 반복되는 애증의 대상이며 쉽게 망각되고 대체될 수 있는 위태로움을 상징한다.

식물은 크기와 종류를 막론하고 느린 속도와 자극적이지 않은 운동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뿌리내리고 가지를 펼친다. 하지만 메말라 추락한 낙엽이 다음 봄의 잎사귀를 품은 씨앗의 양분이 되듯 심경을 채운 균열 위에 가파르게 매달린 감정의 각질은 심장의 맥동으로 서서히 떨어져 나가고 다른 기억을 품을 공간을 만들어낼 것이다.

마냥 긍정적이지 않은 기억을 곱씹으며 후회를 하고 반복될수록 상처받지 않기 위해 방어적으로 변이되는 가상현실은 관계의 충돌과 단절의 통증을 안고 살아가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아현은 자신이 투영된 작품 속 이미지가 지닌 고요한 이야기로 굳이 드러내기 싫지만 그럼에도 누군가 알아봐 주었으면 하는 흉터를 그려낸다. 때로는 지난 시간을 바로잡으려는 발버둥보다 무정한 벌판에서 뱉는 한숨이 사람을 가볍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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