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박사와 함께 떠나는 기후변화 나비여행⑥ 바람 따라 제비처럼, 무늬박이제비나비-송국 담양에코센터장

1947년 제주도에서나 채집된 희귀 종류
불과 80여년이 지난 지금은 기온 변화로
제주도, 전남·경남 남해안서 흔히 볼 수 있어

날개에 마술 부리는 노란색 부채꼴 반달무늬
날개짓때 맹금류가 눈알 굴리는 것처럼 섬뜩
생존 위해 위장전술 같은 방어 메커니즘 발현

무늬박이제비나비, 거제 지심도
무늬박이제비나비, 거제 지심도

⑥ 무늬박이제비나비

무늬박이제비나비(Papilio helenus)는 지금으로부터 약 2천500만여년 전 신생대 제3기의 중기에 출현했다. 이후 신생대 제4기의 빙하기와 간빙기를 여러 번 거치며 극심한 기후환경 변화에 적응하며 진화를 거듭해 온 나비이다. 일본, 중국남부, 대만, 히말라야, 인도, 동남아시아 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남방계 나비이다.

호랑나비과 나비들 중에서 대형에 속하는 종으로 필자가 동남아시아 채집여행을 갔을 때 숲길에서 자주 마주치던 흔한 녀석들이다. 그 때 채집해 온 나비는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채집한 나비보다 훨씬 크다. 그 이유는 애벌레 먹이와 온도, 습도, 계절변화, 기후환경 조건 등이 개체변이에 영향을 준 것이다.

애벌레의 먹이식물은 머귀나무, 산초나무, 탱자나무, 귤나무 등 운향과 식물이다. 이 식물들의 잎이나 줄기에 알을 낳는다. 성충은 5월부터 9월까지 연 2회 발생하며 엉겅퀴, 누리장나무, 자귀나무 등의 꽃에서 꿀을 빨며 날아다닌다. 번데기 상태로 혹독한 추위를 견딘 후 이듬해 봄이 되면 우화한다.

무늬박이제비나비로 이름이 지어진 것은 나비학자 석주명 선생이 1947년 조선생물학회에 발표한 「조선 나비 이름의 유래기」에 ‘이름대로의 형태를 구비한 종류로 제주도와 남조선서 알려졌지만 극히 희귀하다. 제주도에서 한 마리 잡은 일이 있을 뿐이다’라고 기록돼 있다. 하지만 불과 80여년이 지난 지금은 기온 등의 변화로 인해 제주도, 전남과 경남의 남해안 도서지역에 정착하며 살고 있어 현지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나비가 됐다. 점차 내륙으로 이동해 담양을 지나 전북 장수에서도 관찰되고 있다. 앞으로는 더욱더 북쪽으로 분포가 확대하는 추세에 있어 환경부에서는 「국가 기후변화 생물지표 나비」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말벌은 독침을, 사마귀는 날카로운 톱니발을, 딱정벌레는 방패 같은 겉날개와 강한 턱 등 곤충들은 각기 생존을 위한 비밀 병기를 개발하는 쪽으로 진화해 왔다. 하지만 나비들은 천적에게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공격 모드가 전혀 없다. 고작 날개로 도망가는 삼십육계 줄행랑치는 방법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대부분의 나비들은 날개를 작게 하고 의태 색으로 위장해 숨바꼭질 작전을 편다. 하지만 이 친구는 오히려 몸체에 비해 커다란 날개를 가지고 있다. 더구나 새까만 색으로 치장한 망토를 걸치고 바람을 일으키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독특한 품격이 있다. 여기에 덧붙여 비장의 무기가 하나 더 있다. 날개에 마술을 부리는 노란색의 부채꼴 반달무늬이다. 검은색 바탕의 날개에 노란색 무늬는 명시성이 높아 천적에게 잘 띄는 색상이다.

뒷날개 양쪽에 대칭으로 커다랗게 자리 잡은 이 무늬는 날개짓을 할 때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한다. 맹금류가 머리를 좌우로 움직이며 매섭게 노려보는 것처럼 느껴 섬뜩할 것이다.

꽃에 앉아 꿀을 빨 때에도 날개를 지속적으로 빠르고 가늘게 파르르 떤다. 멀리서 천적이 볼 때 노랑무늬가 빛을 산란해 남은 잔상이 단순한 날개가 아닌 맹금류가 눈알을 굴리는 것처럼 위협적으로 보이게 한다. 살아남기 위해 위장전술 같은 방어 메커니즘을 발현한 것이다.

날개에 커다란 무늬를 만들도록 진화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나비를 잡아먹는 새를 먹이로 삼는 포식자 맹금류의 눈을 닮아 깜짝 놀라 도망가게 한다. 둘째, 새들이 눈알무늬를 쪼도록 해 나비의 중요부분인 머리, 가슴, 배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새들은 본능적으로 피식자의 머리 쪽을 공격하는 습성이 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날개만 일부 다치고 자손번식을 꾀한다. 셋째, 짝짓기 상대방에게 보다 더 매력적이고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유혹의 사랑마크이다. 넷째, 멀리 있는 짝을 빨리 찾기 위한 성표(性標)로 활용한다. 이유야 어찌됐든 이 무늬는 생존과 자손번식을 위해 몸부림친 흔적일 것이다.

식물은 햇빛을 받아 광합성을 할 때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사용해 우리에게 필요한 녹말(포도당)과 산소를 내놓는다. 바람 따라 제비처럼 날아온 무늬박이제비나비가 더 이상 북상하지 않고 담양에서 우리와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자투리땅에 한 그루의 나무라도 심는 작은 실천을 기대해 본다./담양자치신문

⇒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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