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도스 기획 황은실 'The First Touch' 展

황은실의 작품에서 사물의 표면을 이루는 주된 원색은 높은 채도로 그려졌음에도 전체적으로 밝은 화면속의 환경과 어우러진다. 입체적인 설명이나 색의 종류가 생략되고 절제된 표현은 관객으로 하여금 화면속의 상황에 간편히 몰입하기보다 충분히 거리를 유지하도록 한다. 황은실 'The First Touch' 展은 2021. 5. 19 (수) ~ 2021. 5. 25(화)까지 갤러리도스에서 전시된다.

갤러리도스 기획 황은실 'The First Touch' 展 전시안내 포스터
갤러리도스 기획 황은실 'The First Touch' 展 전시안내 포스터

내가 이미지에 매료되는 순간에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빛과 색이다. 빛은 그것이 아니었다면 드러나지 않았을 대상의 물성을 드러내며, 그로 인해 나는 순간을 조금 더 촉각적으로 지각할 수 있다. 색은 지나간 순간을 기억하는 주된 인상으로 작용한다. 색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특정한 분위기를 만든다. 삶의 강렬한 순간, 일상의 아름다운 순간들은 스쳐 지나가는 인상을 만들어내는 속도감 있는 붓질들과 선명했다 사라지는 고정되지 않는 형태들, 가볍고 사랑스러운 색채들로 캔버스 위에 담긴다.

캔버스 표면을 스치듯 얇고 빠른 속도의 붓질로 칠해진 형상에서 작가가 작품을 제작할 당시 취한 몸의 움직임과 속도감이 드러난다. 물결의 불규칙적이고 끊임없는 움직임과 약한 바람에도 나부끼는 인물의 머리카락, 유리진열장을 통해 새나오는 차가운 빛의 산란은 매순간 변화하는 사진 밖 세상의 특징을 보여준다. 작가가 자신의 화면에 옮기려고 선정한 사물들의 공통된 특징은 얇고 부드러운 질감을 지니고 있거나 자극적이지 않은 온도를 지니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강도를 지닌 물체들은 섬세한 감각을 요구하지만 알아채는 순간부터 편안함을 준다.

얼핏 무신경한 듯 보이는 가볍고 경쾌한 붓질은 물감의 물리적 성질을 최소화하여 칠해졌음에도 대상이 지닌 질감을 잃어버리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구체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대상이 존재했던 당시의 현장에 있지 않았다면 오롯이 파악할 수 없는 이야기가 필연적으로 지니게 되는 군더더기들이 빠져나간 상태이다.

플라스틱 버튼을 누르는 가벼운 손짓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소중하고 인상 깊은 짧은 순간을 영원히 남길 수 있을 것이라는 최면을 건다. 지나간 시간과 기억에 남겨진 잔상에 대한 갈증은 매순간 과거가 되고 있는 별 볼일 없는 지금을 소중하게 만드는 이유이다. 황은실은 회화라는 느린 장르를 통해 역설적으로 동시대 사람들이 손끝으로 빠르게 넘겨버리는 수많은 일상 속 이미지들이 남긴 흔적을 비로소 천천히 감상하게 되는 휴식의 자리를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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