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상으로부터 영원을 구(救)하다”

현종광 개인전 <잔상 After-image> 展

현종광의 회화는 사진 이미지의 세련된 정서를 물씬 풍기는 듯하다가, 파괴적인 그리드(Grid/격자무늬) 구조나 채색의 우발성 같은 시각적 효과의 힘으로 곧장 해체로 나아간다. 뭔가 문명적인 것과 원시적인 것이 충돌하는 형국이며, 이미지를 만들려는 힘과 이미지를 파괴하려는 힘이 서로 격렬하게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모양새다. 현종광 개인전 <잔상 After-image> 展은 2021. 5. 4 (수) ~ 2021. 5. 17 (화)까지 갤러리 DOS에서 전시한다.

현종광 개인전 잔상 After-image 展 안내 포스터
현종광 개인전 잔상 After-image 展 안내 포스터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는 기억이란 동일성의 지속이 아닌 차이(difference)의 지속임을 강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억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기억은 현재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어떤 실체의 행위이며, 물질들의 사건적인 흐름 과정이다. 현종광의 회화가 ‘이미지-기억’을 ‘이미지-차이 생성’으로 환원하고, 차이의 반복과 지속을 통해 세계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음을 상기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전시의 주제이기도 한 ‘잔상’(殘像)의 사전적 의미도 “시각에 있어서 자극이 없어진 뒤에도 감각 경험이 연장되거나 재생하여 생기는 상(像)”이 아니던가. 작가는 그리드로 촘촘히 나누어진 이미지로부터, 그리고 그 미세한 부분들의 총체성으로부터 이미지의 삶을 ‘차이 생성’의 본보기로 전환하려는 것이다.

현종광은 잔상(afterimage)을 그의 화두로 삼고 있다. “하나의 이미지가 사라진 후 일시적으로 남아있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이며 또렷하지 않은 개입 현상“인 이 잔상을 그는 화폭 속에서 구현한다. 마치 표현 불가능한 잔상을 담아내는 것이다. 현종광에게 풍경의 전면에 드리워진 <그리드>는 이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필터이고 시선이고 방법임을 입증한다. 나는 그것이 그가 풍경을 바라보는 방법, 그 이후의 느낌, 흔적, 남은 이미지 그것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아마도 그는 이것을 잔상이라고 규정한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회화에서 벗어나 전통적인 회화에 침몰하지 않고 작품이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시선. 그것에서 그리드는 하나의 풍경을 바라다보는 그만의 안경 혹은 렌즈일 수 있다. 그는 종종 스스로 그리드(grid)를 원본이 소멸된 부재 속의 잔상적 이미지를 일시적으로 드러내고 고정시키며 담을 수 있는 성유물함과 같은 도구(screen, container)이다. 나에게 그림의 모체(matrix)인 그리드는 실체의 부재 속에 희미하게 드러나는 잔상들을 지연시키는 물리적 또는 정신적 좌표”라고 정의하고 있다.

현종광의 근작들은 엔트로피가 극대점에 달한 평형상태를 암시한다. 버트란트 러셀의 발언을 참조하면 현종광의 회화에서 에너지는 “많은 쪽에서 적은 쪽으로 평형이 이루어질 때까지” 이동한다. 그리하여 결국 남는 것은 그리드다. 그런 의미에서 현종광의 근작들은 궁극의 평형상태를 구현한다고 말할 수 있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궁극의 평형상태에 최대한 가까운 어떤 것으로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거기에는 아직 현종광이 ‘파편화된 잔상’ 또는 ‘반복시의 잔여물들’이라고 불렀던 것들이 잔뜩 남아있기 때문이다. 투명한 것에 접근하려면 결국 불투명한 필터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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