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도스 기획 김보경 ‘Ever Flowing - the harmonious world' 展

얇은 가닥들이 모여 생각하는 순간에도 눈을 깜박이며 호흡을 한다. 무언가를 보는 것이 지겨워 눈을 감아도 세상을 가리는 눈꺼풀의 어둡고 붉은 장막은 촘촘히 짜인 핏줄을 타고 흐르는 맥동에 따라 화려한 얼룩을 보여준다. 김보경이 이야기하는 흐름은 살결을 타고 흔적을 남기는 바람이나 물결 그 자체일 수도 있고 그 모든 스침을 못 견디고 떨어져 나간 각질을 적셨다 사라진 입김일 수도 있다.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7길 37 갤러리 도스에서 2021. 3. 31 (수) ~ 2021. 4. 5 (화)까지 열린다.

김보경 ‘Ever Flowing - the harmonious world' 展 안내 포스터
김보경 ‘Ever Flowing - the harmonious world' 展 안내 포스터

화면을 가득 채울 듯 그려진 검은 덩어리는 머리카락을 떠올리게 한다. 풍성히 엉키고 쌓인 군체에 손가락을 펼치고 집어넣으면 허무하게 흐트러질 연약한 구조와 무게를 지니고 있다. 가장 강인할 시기에는 윤기와 탄력을 지닌 채 어깨 위를 아름답게 빛내지만 그 은은한 검은 광택은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며 음산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긴 시간에 걸쳐 인내를 담아 그려낸 획의 모임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기에 잔잔한 물의 표면처럼 고요한 분위기를 뿜어낸다. 하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리드미컬하게 휘어진 굴곡과 농도의 차이로 인해 반짝이는 햇빛의 반사에 가려 수면 아래 품은 생물의 움직임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높은 채도로 칠해진 넓은 표면 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새겨진 검고 짧은 획들은 긴 시간에 걸쳐 느리게 변하는 환경을 짧게 살다 떠나는 작은 생물들처럼 꿈틀거리며 작품에 소음을 만들어낸다.

김보경이 느끼고 그려내는 세상을 채운 생명은 사람의 생을 아득히 초월하는 길고 먼 시간이 아니다. 작가는 평범하고 대단치 않은 하루의 일부를 얕고 가벼이 채우는 관계가 주고받는 소소하고 소중한 감각을 그려낸다. 드라마틱한 사건과 공감하기 어려운 감동에서 비롯된 영감이 아닌 숨을 쉬는 평범한 모두의 시간에 깃든 사사로운 감정이 도리어 고민에 깊은 선택을 새긴다. 그리고 그 허한 무게로 인해 붓질은 날갯짓처럼 자유롭고 획은 물처럼 미끄럽게 꿈틀거릴 수 있다. 김보경은 생명의 흔적을 흐름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 헤아릴 수 없는 굴곡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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