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서로의 의견을 정확히 이해시킬 수 있을까? 불행히도 그것만큼 위험한 생각은 없다. 마음속에 있는 생각은 말을 통해 밖으로 전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안에 있는 생각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말을 했다고 해도, 그것은 단지 뭔가를 표현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타인이 자신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는 경우는 단하나, 사랑의 기적이 일어났을 때만 가능할 뿐이다.”

생텍쥐페리 잠언집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이유>에 실린 글이다. 그는 관계의 소중함을 끊임없이 말해왔다.

‘관계에서 관계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 사람과 자연. 우리는 모두 관계 안에서 성장한다. 그 안에서 달그락 거림이 사람이 살아가는 소리이고, 세상이 돌아가는 소리인 것이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점점 이해 중심적으로 변질되어가는 이 시대에 정말로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은 것들이다. 사회도덕률 안에서 관습과 인습에 얽매어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가치 있는 일까지도 포장해 관계에 이용한다. 관계에 편을 만들거나 욕심이 들어가도 그것을 교묘히 강제해 진실인척 가장을 한다. 모든 관계는 관계로서만 의미가 있을 뿐이다.

‘진짜와 짜가’

세상에는 다양한 인간들이 존재한다. 이름모를 길가의 잡초들이 어떤 역경속에서도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가듯이 인간들 또한 자신들만의 삶의 방법을 터득하고 살아남기 위해 길들여진 방법으로 세상과 마주하고 있다. 그래서 세상은 진짜와 짜가가 만들어가는 요지경속이다.

짜가들의 위치 또한 확고하다. 그들은 그들의 세상속에서 진심으로 생존을 위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생존에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작동을 한다. 그게 세상의 이치이기도 하다.

시대의 주제가 바뀔 때마다 자신의 생각은 변하지 않고, 말만 바꿔 교수하는 짜가들.

인간관계의 소통을 강의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보다는 남의 말에 더 솔깃해 귀를 기울이는 짜가들.

모든 말이 제3자에 의해 전달되면 그 말의 진실은 이미 반은 왜곡된다는 것을 모르는 짜가들.

누군가를 견제하거나, 비교하거나, 은근히 남의 말을 흘려보내거나, 의중을 한번 떠보는 말을 하거나, 남의 약점을 들춰내는 말을 하고 다니는 짜가들.

‘너 잘되나 두고보자’ 마음속에 독을 품은 메마른 짜가들.

자신이 받은 상처만 전부라 생각해서 당사자와는 등을 돌린 채 주변사람들에게 자신의 입장만을 이야기하며 하소연 하는 짜가들.

‘자리가 사람을 만들어 준다’는 낡은 사고방식을 가진 짜가들.

진실을 알면서도 모른척 자신의 이해 관계만을 생각하는 짜가들.

유유상종으로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가는 짜가들.

세상은 이런 짜가들이 살아가는 요란한 요지경 속이지만 그 정도를 가늠해 보는 척도는 바로 그 안에 사랑이 내재되어 있는냐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은 ‘사랑’이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다면 그것은 모두 짜가들이 만들어 놓은 황무지에 불과하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사막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이곳 어딘가에 우물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야...”

어린 왕자에 나오는 말이다. 인간 또한 마음안에 삭막한 모래사막을 만들어 간다면 결국은 숨이 막힐 것이다. 마음안에 ‘사랑의 우물’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모든 힘든 상황에서 버틸 수 있는 오아시스이다. 마음에서 마음을 이어주는 진심을 마주할 수 있는 인간 본연의 길인 것이다.

살면서 큰 파고가 다가와도 사랑이 근본적으로 내재되어 있으면 삶은 상처를 치유하며 단단한 자신으로 발전시켜 나간다. 모든 곳에서 가진 능력을 펼칠 수 있을지라도 그곳에 사랑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 성과는 메마른 가지에 불과할 뿐이다. 길게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은 사랑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사랑은 단단한 뿌리를 만들어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준다. 마음에서 마음을 이어주는 길은 바로 사랑이다.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인생 100세 시대가 도래했다. 앞으로의 시대는 남과의 경쟁보다는 내면의 발전, 자기 성장에 집중하는 사람들, 성공보다는 성장을 중시하는 사람들, 외부의 동기 보다는 자기 내면의 취미, 교양, 몸, 지식의 성장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세상에서 주인공은 자신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이 국민이어야 한다.

사회 도덕률에 의한 존경심보다는 정의에 대한 존경심이 먼저여야 한다.

지위에 대한 예의보다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우선이어야 한다.

우리는 인간적인 아주 인간적인 사람들이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신이 만든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관계 안에서 길들여지고 ‘사랑’을 먹고 살아가다 결국에는 죽음이라는 같은 곳을 향해 가는 동지들인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에는 ‘사랑과 평등’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인간은 관계 안에서 사랑으로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 삶을 살아간다.

‘소중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어리석고 감상적이라는 말을 듣거나 반과학까지는 아니지만 비과학적이라는 말을 듣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용감하게 사랑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마음의 관료화에 ‘아니요’라고 말하는 법을 꼭 배워야 합니다.”

<프레이리의 교사론>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어느 곳에서든 소중한 것들은 말, 물질, 성과 등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니다. 밤하늘에 무수히 빛나는 별들처럼 삶을 아름답게 수놓아 가는 것은 언제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이다. 그래서 언제나 마음으로 찾아야 한다.

마음 속 정의를 잃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논할 줄 아는 진정 사람다운 사람, 마음이 진정 섹시한 사람이 가슴 시리도록 그리운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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