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도스 기획 장규돈‘방향으로 이은 살과 안개' 展

장규돈은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화면에 옮기는 동시에 자신의 붓이 걸쭉하게 머금은 물감 자체가 지닌 물질의 특성을 희석시키지 않는다. 물감은 작가의 행동을 타고 평면위에 입혀지며 대상을 닮은 복제가 되지만 작가의 손에 쥐어지기 전에는 그저 중금속과 광물, 유기물의 정제된 부산물이 섞인 튜브속의 물질에 지나지 않는다. 갤러리도스 기획 장규돈 ‘방향으로 이은 살과 안개'展이 2021. 3. 24 (수) ~ 2021. 3. 30 (화)까지 열린다.

장규돈‘방향으로 이은 살과 안개' 展 안내 포스터
장규돈‘방향으로 이은 살과 안개' 展 안내 포스터

녹아내린 형상에서 다시 다른 유기체로 형성되는 기괴한 순환을 지닌 작품은 장르적인 상상력을 동반하는 동시에 그림을 그리는 기초적인 재료가 사람의 손에 쥐어 졌을 때 고민했을 무엇을 그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되새긴다. 인물의 실루엣을 지니고 있지만 시각적으로 적나라하게 다가오는 질감은 작품을 만져보지 않아도 생고기의 질기고 물렁한 점성을 느끼게 한다. 가장자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높은 채도의 푸른색은 차가운 용액처럼 작품 중앙에 위치한 형상의 표면을 절이고 엉겨 붙으며 동물 체온정도의 열기를 지닌 신체기관의 색과 대조를 이룬다.
  
우리의 신체 역시 존재를 자각하고 행위를 증명하지 않으면 튜브 속의 물감처럼 피부에 쌓인 축축한 고기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재료는 단순히 사물을 재현하는 수단에서 그치지 않고 표현의 거미줄 중앙에 있는 작가와 세상에 무수히 존재하는 서로 관계없는 사물간의 연결지점이 된다. 그렇게 장규돈이 생성한 감정의 양분은 작품이라는 탯줄을 통해 작가와 관객을 연결한다.

내가 그림을 대하는 태도가 되는 동기는 ‘보다 큰 존재에 속하려는 통상적인 갈망’이다. 여기서 ‘보다 큰 존재’는 중심이 없고 숭고한 무제약적 세계이다. 내게 인물의 형상이 위치한 배경은 그 형상을 적시고 있는 세계, 시공간이다. 나는 형상을 배경의 색에 담근다는 태도로 그림을 진행한다.녹는 모습 자체도 중요하지만, 나는 인간의 살과 다른 요소를 결합해서 이을 수 있는 흐름을 그린다. 인물의 녹은 살과 만나는 곳에 흙벽, 빛과 붉은 꽃, 녹슨 철, 미네랄 결정 등과 같은 소재를 연상시키는 색과 질감을 발견할 수 있다.

살과 이러한 요소들을 하나로 잇는 시도를 지속하는 것은 살과 각 요소들이 서로 다르지만, 어떤 ‘방향’은 그림에서 이어진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 방향은 유기적 조직화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쉽게 말해서 ‘알’로 대변되는, 비유기적 생명을 향하는 방향이다. 내게 그림을 그리는 일이란 비정형의 물감 덩어리인 ‘안개’에서 살로, 살에서 도마뱀의 가죽으로, 피로, 피에서 꽃과 빛으로 순환하고 이행상태로 보이도록 이질적 요소들의 결을 다듬는 일이다. 나는 이러한 그리기로 무제약적 세계의 숭고와 공포를 감미로움과 함께 강조해 보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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