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종주국은 대한민국

김치는 고대 이래로 한국인의 축제식품으로 자리잡았다. 김치는 세계 어디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한국인만의 발효식품이다. 김치는 배추를 재료로 쓰기 이전부터 무, 부추, 미나리, 죽순 등 토종재료를 사용하여 장(醬)이나 소금에 절여 만들어 왔고, 지금도 전주에 가면 이러한 고대의 김치 원형(元型)을 발견할 수 있는 패스티발이 열린다. 김치는 고대부터 의례음식으로서 기능적 상징성을 지니고 있어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국례와 가례의 필수적인 제례(祭禮) 식품으로 등장하였고, 난리통에는 백성들이 땅에 묻은 김장통을 꺼내서 구황식품으로 대체하기도 하였다.

흔히 국제적으로 김치를 논할 때 중국의 옌차이(腌菜)나 파오차이(泡菜), 일본의 쓰케모노(漬物), 유럽의 피클(pickle)이나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와 나란히 비견하여 소개하는데 이는 근본적인 오류가 있다. 발효식품인 김치와 달리 이들 식품은 모두 절임에 해당하는 일종의 짱아치 종류이기 때문이다. 다만 김치가 식품영양학의 범주에서 이탈리아의 파스타나 중국의 국수, 일본의 스시처럼 학문적인 체계가 축적되지 못한 한계 때문에 혼동을 야기하고 가끔 종주국 시비가 벌어지는 상황은 안타까운 일이다.

비닐하우스 농사가 발달한 지금과 달리 김치는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이나 눈발이 날리는 초겨울에만 담았다. 김치를 담그는 날에는 온 가족이 함께 달려들어 힘을 보탰다. 김장을 고춧가루와 양념에 버무리고 젓갈을 섞어 독에 담근 후 땅에 묻어둔 후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한겨울이면 잘 발효되어 익은 김장김치를 꺼내 먹었다. 가난한 집이나 부잣집이나 할 것 없이 김치는 겨우 내내 봄이 올 때까지 주요식품으로 밥상에 오른다. 김치는 나누고 베푸는 식품이기도 하다. 가난하여 김장김치가 떨어진 집에 마을 사람들이 순서를 정해서 한포기씩 전달하였고, 초상을 치루는 가난한 집에도 십시일반으로 모아진 김장김치가 보시(報施)되었다. 김치는 한국인의 혼이고 한이었으며 삶 자체였다. 김치가 식품 중에 드물게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자리잡은 것은 이와 같은 한국인의 독특한 ‘김치문화’ 때문이다.

김치 종주국 논란의 원조는 애초에 일본이었다. 일본은 그저 단순한 한국의 토종음식으로만 인식되던 김치를 일본식품의 ‘기무치’라는 이름으로 상품화하여 국제시장에 내놓았고, 한국을 제치고 기무치를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 등록하려 하였다. 이러한 일본의 비열한 상혼(商魂)에 충격을 받은 한국은 1996년 뒤늦게 발분하여 코덱스에 기무치가 아닌 김치(Kimchi)를 공식적인 명칭으로 통일하도록 조치하였고, 2001년에 비로소 제네바에서 열린 제24차 코덱스 총회에서 한국의 식품으로 인정받았으며, 2013년 유네스코는 김치문화를 인류무형문화재로 지적하였다. 김치 자체가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받은 것은 아니지만 김치를 둘러 싼 한국인의 김치문화를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인정한 것이다.

중국 역시 김치를 놓고 신경전을 벌였다. 쓰촨성의 파오차이가 김치의 원조라고 주장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당나라 장군 설인귀가 자신의 고향식품인 절임채소를 한반도에 들여 온 것이 김치의 시초였다고 규정하였다. 최근에는 한국의 김치를 ‘한국 파오차이’라고 명명하면서 김치라는 말 자체를 말살하는 풍조가 퍼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이러한 조치는 한중 양국의 선량한 국민정서를 해치는 장애물로 등장하였고, SNS를 중심으로 언론에도 양국의 경제문화적 갈등으로 대두되었다. 이미 일본이 한차례 훼절했던 김치문화를 비슷한 방법으로 재탕하는 것은 대국의 체면이 아니다. 황화문명을 잉태하고 동아시아에 빛나는 한자문화를 일으킨 중국이 G2국가로서 일대일로를 꿈꾼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상대국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다. 김치는 근본적으로 쓰케모노나 파오차이가 아닌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이다. 김치는 단순한 음식이 아닌 한국인의 ‘김치문화’이다.

중국이 김치를 김치라고 부를 때 비로소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문화와 유네스코 정신을 존중하는 진정한 문화대국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김치와 김치문화를 둘러 싼 한중 양국의 정서가 하루빨리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고대한다. 이 문제를 원만하게 풀면서 두 나라의 선린우호가 더욱 깊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글.사진 : 경기대학교 김대유 초빙교수

경기대학교 김대유 초빙교수
경기대학교 김대유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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