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것을 해야 평생 해도 행복할 것 같았다

나지영 미국 드림웍스 스토리보드 아티스트

홍익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한 나지영씨는 애니메이션 공부를 위해, 2018년 Ringling College of Art and Design을 졸업하고 픽사 스토리 인턴을 거쳐 현재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사의 스토리보드 아티스트로 일하고 있다.

 

뉴스 포털1은 2021년 새해가 시작되었지만 코로나로 암울한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새 희망을 전하고 싶어, 나지영씨를 줌을 통해 만났다. 다수가 가는 길이 아닌 하고 싶은 일에 매진한 결과 미국에서 인정받는 스토리보드 아티스트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삶의 가치관을 물었다.

 

<일문일답>

 

Q. 본인 소개를 해달라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사에서 스토리보드 아티스트로 일하고 있는 나지영입니다. 현재 넷플릭스에서 방영중인 <쥬라기 월드:백악기 어드벤쳐>, <위져드:아카디아의 전설> tv 시리즈에 참여했습니다.

 

Q. 요새 청년들이 진로결정에 많은 고민이 많다. 나지영 아티스트가 어떻게 애니메이션을 진로로 결정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하찮고 별거 아닌 이유가 때로는, 아주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있다.”

 

요새 학생들에게 진로결정에 대해 질문을 가끔 받는다. 왜 애니메이션을 결정하게 되었나요? 무엇이 스토리보드란 길을 선택하게 되었나요? 같은 질문들이다. 직업이라는 것은 한번 길을 정하고 공부하려면, 꽤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될 텐데, 정하려면 꽤나 걱정해야 할 거리가 많은 것 같다. 나도 그랬었다. 본격적으로 “내가 진짜 무엇을 목표로 달려야 할까” 라고 내 자신에게 물었던 때는 대학교 시각디자인과 2학년 때 즈음이었다. 당시 재학중이었던 시각디자인이라는 과는 꽤나 광범위해서, 고학년이 될 수록, 좀 더 세부적인 파트로 세부전공이 나뉘어져 있었다. 2학년이 되자, 동기들이 저마다 세부전공을 정해서, “나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될 꺼야.” “나는 모션그래픽 회사를 목표로 준비할 거야.” 등등 과에서 말을 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초초했었다. 나도 당당하게, 난 이거! 라고 말하고 다녀야 될 것 같았다. 그렇지만 아무리 이것저것 따져봐도,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내가 그래픽 디자인을 하려면.. 내가 이것을 잘하나?” “내가 일러스트레이터를 하려면.. 직업이 안정적인가?” “이 파트로 졸업을 할 시, 무슨 회사를 갈 수 있을까?” “페이는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고 따져봐도, 장단점의 충돌이 너무 많아서 결론이 나질 않았다.

 

그래서 혼자 집에서 다른 방향으로 내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하면서 제일 즐거웠을까?” 이 질문을 생각하니, 대답은 아주 빠르게 나왔다. 중학생때 내가 한창 만화에 빠져 있을 때, 그 때의 나는 항상 만화를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에 빠져있었다. 빈 연습장에 그림을 그리면서 참 행복했었던 기억이 났다. 당시 부모님은 내가 만화책을 보는 것을 아주 안 좋아하셔서, 고등학교때 입시공부를 시작하면서 서서히 멀어지게 되었지만, 애니메이션은 항상 좋아하는 장르 중 하나였다. 그래! 내가 해서 즐겁다면, 그 직장이 평생직장이다. 하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시도해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다음 학기에 애니메이션이라는 수업을 듣기 시작했고, 예전에 느꼈던 즐거움이 조금씩 다시 살아났었다. 그때가 내가 애니메이션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던 것 같다. 지금까지 그 결정엔 후회가 없는 것 같다. 아마 그 이유가 내 자신의 즐거움이었기에 항상 힘든 순간이 와도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Q. 의미 있는 수상을 했다고 들었다. 어떤 의미인가?

 

어디언스 어워드 필름 페스티벌, Southern short film festival 등에서 first place 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1년 6개월이라는 시간동안, 아이디어부터 스토리보드, CG 애니메이션까지 감독한 필름이 좋은 반응을 얻으니 정말 뿌듯하였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 특유의 엉뚱한 코미디 스토리를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어서, 애니메이션 디렉팅에 대해 많은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훗날 가까운 미래에 또 다른 애니메이션 단편을 제작하려고 계획 중이다. 그런 의미에서 ‘Attack of Potato Clock’ 의 수상은 단편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 나에게 좋은 첫 단추를 끼워준 것 같다.

 

Q.길 예르모 델 토로 감독과 작품을 함께 한 인연이 있었나?

 

길 예르모 감독은 드림웍스에서 처음 일하게 된 프로젝트의 프로듀서였다. 트롤헌터:아카디아의 전설 이라는 시리즈의 마지막 시즌인 ‘위져드’라는 작품의 스토리팀에 참여하게 되었다. 특히, 트롤헌터스의 시리즈는 길예르모 감독이 직접 쓴 청소년 판타지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티비쇼였기 때문에, 열정적으로 이 시리즈에 참여하시는 것을 많이 보았다. 당연히 처음에 뵈었을 때는 정말 떨렸었다. 그 해 “Shape of water” 라는 작품으로 오스카 감독상을 받으셨을 정도로 대단한 영화의 거장인데, 직접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많이 긴장했었다. 옛날부터 ‘판의 미로’, ‘크림슨 피크’ 같은 영화를 보면서 존경했던 감독님의 프로젝트에서 일하면서 많이 배웠고, 계속 기억에 남을 작품이 될 것 같다.

 

Q. 미국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하면서 힘들었던 점이나, 또는 미국 애니메이션 사를 다니면서 힘든 점이 있었다면?

 

한국 취준생들이 겪는 것과 같이, 미국에서의 취업준비도 쉽진 않았다. 재학중에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는 것, 어렵게 회사에 들어가서도 회사의 비자 서포트를 받기위해 노력해야하는 것 등등 졸업 후 1년은 바쁘게 지나갔었다.

 

요새엔 더 좋은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갖고 행복한, 동화 같은 해피엔딩이면 너무 좋겠지만, 시작에 불과했다. 옛날부터 어른들이 “취미를 일로 만들지 마라" 하시는 것과 같이, 즐거웠던 것이 일이 될 때의 어려움은 있었다. 우선, 애니메이션이 직업이 되니, 예전만큼 만화를 미치도록 안 보게 되었다. 보게 되더라도 이제 제작자의 관점에서 보니, 즐거움보다 단점들을 먼저 보게 된다. 좋아했던 취미를 일로 바꾸고 나선, 따로 시간을 내서 연습장에 그림을 그리는 횟수도 예전보다 줄었고 이런 점들이 나를 슬프게 하기도 했다. 애니메이션 회사에 다니면서, 주변 동료들과 이야기를 해본 후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그들도 나와 같이 좋아했던 존재를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을 갖고 있었다. 이 후에 나는 직업으로서의 아티스트인 나와 개인으로서의 아티스트인 나를 분리해보기로 했다. 회사 안에서 스토리보드 아티스트로서 성장하면서, 큰 팀안에서 내가 우리의 작품을 위해서 어떤 식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 그리도 다른 아티스트들과 어떻게 협동할 수 있는지 등등을 많이 배우고 있다.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은 워낙 사람 손이 많이 가는 작품이기에, 많은 사람들과 같이 작업하는 것을 배우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나만의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나의 목소리가 원하는 만큼 작품에 다 들어 갈 수는 없다. 어떤 때에는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데도 그려야 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힘들 때가 많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개인으로서의 아티스트인 나를 분리하는 것이다.

 

Q.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일하는 시간 외의 나는 내가 어떤 스타일의 스토리를 좋아하는지, 어떤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는지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그리고 직업과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내 목소리를 넣을 수 있는 작은 이야기들을 짧게 연구하고 그린다. 요즘 많은 아티스트들이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아티스트적인 자아를 찾기 위해, 인스타그램 같은 플랫폼에 그림을 많이 올리는 것 같다. 이 두 존재의 분리가 나에게는 좋은 솔루션이 되었다. 일을 하면서, 프로페셔널한 아티스트로서 성장하고, 개인적인 작업을 소소하게 하면서, 독립적으로 내가 어떤 아티스트인지를 이해할 수 있어서 ‘무언가를 잃는 듯한’ 쓸쓸함을 극복할 수 있었다.

 

또 애니메이션이라는 것 이외에 다른 취미도 쌓으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림을 그리는 것과 다른 취미를 시도하면서, 내 작품의 영감도 얻고, 마음적인 휴식도 얻을 수 있다.

 

Q.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후배들을 위한 재능기부교육 기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걸로 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미국에 유학을 하고 취업을 하고 보니, 힘들었던 적도 많았다. 나는 유학을 오기 전엔 비자문제, 취업문제, 영어문제들을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먼저 애니메이션 필드에서 일하는 선배로서 조금이라도 후배들의 걱정을 덜어주고 싶었고, 조금이라도 내가 아는 것을 나눠주고 싶었다.

 

Q. 한국과 미국 교육의 차이점이 있다면?

 

미국에서는 대학교육만 받아봤기에, 그 점에서만 비교하면, 다양성인 것 같다.

 

한국에서는 전공과 커리큘럼을 좀처럼 바꾸기 힘들고, 학년마다 들어야하는 과목들이 굉장히 많지만, 미국에서는 학생마다 필수 과목 이외에는 자신이 듣고 싶은 수업을 자신에 맞게 다양하게 맞출 수 있었다. 심지어 내가 속해 있지 않는 학과의 수업이 듣고 싶으면 언제든지 들을 수 있었다.

 

그 밖에 큰 다른 점은 취업에 대한 대학의 적극적인 태도였다.

 

학교에서 매년 좋은 회사들의 리쿠르터들을 캠퍼스에 초대해서 회사의 인턴쉽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졸업이 임박한 4학년들에겐 인터뷰의 기회도 주었다. 이런 적극적인 태도가 확실히 학생들의 취업률도 올리고, 공부 능률도 올려준 것 같다.

 

Q. 스토리보드 아티스트에 관심있는 한국의 청년들에게 팁이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선 좋은 영화, 애니메이션 작품들을 많이 보면서 공부하라고 전하고 싶다. 그리고 드로잉 연습을 꾸준하게 연습하기! 이 두가지 조언은 나에게도 매일 하는 잔소리이다...!

 

Q. 앞으로 스토리보드 아티스트를 통해 이루고 싶은 계획이 있다면?

 

내가 애니메이션 스토리보드 아티스트를 하는 이유는, 예전에 어릴 때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감명을 받았던 것처럼, 누군가가 울고 웃고 놀랄 수 있는 기억에 남는 순간을 애니메이션을 통해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보았던, 디즈니의 뮬란, 지브리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같은 애니메이션의 장면과 대사들은 그 당시 어린 나에게 알 수 없는 용기와 힘을 주었고, 그 작품들을 지금 보아도, 아직까지도 많은 영감을 받는다. 아직 배울 길은 많지만, 언젠가 미래에 나도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순간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까지 돌아왔던 길을 돌아보며, 내가 왔던 길들이 조금이나마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은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미국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 후배들을 위한 취직 관련 세미나, 아이들에게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작은 수업들을 하면서, 자기 발전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나누고 도와주는 행복을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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