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로 가는 사랑의 물수제비 

  안녕하십니까? 신년 계획들은 벌써 착착 진행 중이시지요? 올 한해는 서로 사랑만 하며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다음 김상미 시인의 「사랑」이란 시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김상미 시인은 1957년 부산에서 출생하여 1990년 <작가세계>로 등단하였고, 시집으로 『잡히지 않는 나비』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한 당신』 등이 있습니다.

그는 남쪽에 있다 
남쪽 창을 열어놓고 있으면 
그가 보인다 
햇빛으로 꽉 찬 그가 보인다 
나는 젖혀진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젖혀진 내 목에서 
붉은 꽃들이 피어난다 
붉은 꽃들은 피어나면서 사방으로 퍼진다 
그의 힘이다 
그는 남쪽에 있다 
그에게로 가는 수많은 작은 길들이 
내 몸으로 들어온다 
몸에 난 길을 닦는 건 사랑이다 
붉은 꽃들이 그 길을 덮는다 
새와 바람과 짐승들이 그 위를 지나다닌다 
시작과 끝은 어디에도 없다 
그는 남쪽에 있다 

                                                        -김상미, 「사랑」 전문

  베란다에 화분을 갖다 놓으면 잎새나 꽃들이 어느새 남쪽으로 향해 있습니다. 남쪽에 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식물의 향일성(向日性)이라고 하지요.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있는 쪽으로 고개가 젖혀지고 몸이 기웁니다. 청마 유치환이 이승에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책상마저 애인이 사는 쪽으로 돌려놓았듯이, 그가 있는 쪽으로 온 마음이 다 기울지요. 
  젖혀지고 기운 내 목과 마음에서 붉은 꽃이 피어납니다. 그것도 한 송이가 아니라 무더기무더기 피어납니다. 피어나면서 그 향기가 또 사방으로 퍼집니다. 시인이 굳이 “그의 힘이다”라고 설명을 하지 않아도 깊이 사랑해본 사람은 사랑의 힘이 얼마나 센 것인가를 잘 알지요. 또 사랑에 빠져본 사람은 잘 압니다. “그에게로 가는 수많은 작은 길들이/내 몸으로 들어온다”는 것을 압니다. 내 몸으로 들어온 길들이 항상 나를 이리저리 이끈다는 것을 알지요. 그리고 그 길들을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아야 한다는 것도 잘 압니다. 
  사랑이 가고 오는 그 길은 붉은 꽃들로 덮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이와의 모든 만남을 하나의 축제로 체험 한다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사랑의 그 길엔 새와 바람과 짐승들마저 우주적으로 참예할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그 길이야말로 “시작과 끝이 어디에도 없다”는 말은 바로 ‘영원한 사랑’에 대한 다짐인 것입니다. 
  여기서 ‘햇빛’은 해의 빛을 가리키는 말로 해가 내려쬐는 기운을 가리키는 ‘햇볕’하고는 구분하여 쓰셔야 됩니다. 햇빛은 해의 광도이고 햇볕은 해의 온도와 관계합니다. 

  이제 곧 얼었던 강물이 풀리겠지요? 강물이 풀리면 강가에 나가 그리운 사람을 향하여 물수제비를 뜨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권혁웅 시인의 <내가 던진 물수제비가 그대에게 건너갈 때>라는 시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권혁웅 시인은 1967년 충청북도 충주에서 출생하여 199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습니다. 시집으로 『황금나무 아래서』 등이 있지요.
 
그날 내가 던진 물수제비가 그대에게 건너갈 때
물결이 물결을 불러 그대에게 먼저 가 닿았습니다
입술과 입술이 만나듯 물결과 물결이 만나
한 세상 열어 보일 듯했습니다
연한 세월을 흩어 날리는 파랑의 길을 따라
그대에게 건너갈 때 그대는 흔들렸던가요
그 물결 무늬를 가슴에 새겨 두었던가요 
                      -권혁웅, 「내가 던진 물수제비가 그대에게 건너갈 때」 부분

  이 시를 보면 참으로 애틋하고 순결한 기억들이 햇빛에 반짝이는 물결처럼 파닥이며 일어납니다. 연애의 시절, 강가에 나가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물수제비 한번 떠보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요? 그렇게 던진 물수제비가 그대 마음에까지 건너가면, 마치 입술과 입술이 만나듯 물결과 물결이 만나 참으로 아름다운 한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물수제비가 건너갈 때 그대의 마음도 흔들리고, 그러면 그 형언할 길 없는  물결무늬를 가슴에 새겨두기도 했을 것입니다. 내가 던진 물수제비가 그대에게 건너가서 그대가 굳게 닫힌 마음을 열어 나의 사랑을 받아들이면, 이제 나의 방황은 끝나고, 그대는 나의 삶의 구원으로 황홀하게 떠오르고 말겠지요. 
  하지만 물수제비는 저편 강가에까지 가 닿지 못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위 시에 계속 이어지는 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가 던진 물수제비가 그대에게 건너갈 때/이 삶의 대안이 그대라 생각했던 마음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없는 돌다리를/두들기며 건너던 나의 물수제비,/그대에게 닿지 못하고 쉽게 가라앉았지요/그 위로 세월이 흘렀구요/물결과 물결이 만나듯 우리는 흔들렸을 뿐입니다.”라고요.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 그것이 순수하고 애절한 만큼 더 오래도록 기억이 되지요. 가장 순결하게, 진정으로 우리의 마음이 흔들린 경우가 그 뒤로  한번이나 더 있었을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이 시에서 ‘물수제비뜨다’라는 말은 자동사로 “동글고 납작한 돌로 물 위를 가로 쳐서 담방담방 뛰어가게 팔매치다”는 뜻입니다. 원래 물에 팔매질해서 띄우는 돌이 수제비처럼 납작납작 해서 붙여진 말이 표준말화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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