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가 '종교개혁(Reformation)' 시대를 만들고 있는가?
집합금지의 장기화로 기존 종교행태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대한민국은 종교국가라로 할만큼 종교단체가 많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종교는 다양한 방법으로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헌신해 왔다. 그래서 일부 종교이기는 하지만 국가 행사나 군부대 등에서도 합법적으로 인정받고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종교 행사를 보장받는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와서 종교가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거나 비판의 도마위에 놓여지기도 한다. 특히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이 되면서 더 그렇다.

이러한 위드 코로나 상황에서 종교에 대하여 행복인문학적 관점의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종교의 의미나 개념은 종교학자들에 따라 달리 해석된다. 한자의 의미로 종교는 불교가 중국에 들어와 산스크리트(범어)의 불교 경전을 번역할 때 진리의 궁극적인 경지를 뜻하는 ‘싣다아안타(siddhānta)’를 ‘종’으로, 이러한 ‘종’에 도달하기 위한 가르침을 ‘교(敎)’라고 번역하였다. 

국민행복강사는 행복 코디네이터 책임교수 강좌에서 "종교란 유한적 존재인 인간이 삶 속에서 절망이나 자괴감과 같은 부정 정서에 휩싸일 때, 그러한 상황에서 인간다움의 가치를 회복하고 보다 더 의미있게 살아가는 삶의 진실한 태도를 의미한다. 이런 까닭에 참된 종교는 지적이거나 정적이거나 의지적인 부분을 총체적으로 망라하는 전인격적인 태도와 실천을 요구한다"고 정의했다.

근본적으로 종교는 삶을 통해 꽃을 피우고 결실해야만 하는 생동적이고 고차원적 삶의 철학이다. 다시 말해서 삶의 실천으로 종교의 핵심 가르침이 연결되지 아니하면 그것은 한낱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의미이다. 불교에서 회심을 통해 타인에게 자비심을 실천하고, 내면으로는 정진과 인내와 극기의 삶으로서 평화를 유지하는 것은 생활종교로서의 불교의 핵심가치를 보여준다. 기독교도 마찬가지이다. 거듭난다는 것은 곧 이웃에 대한 책임감을 사랑으로 실천하는 삶의 결실을 이루는 것이며, 이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진정한 신앙인의 삶임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지금 코로나 팬데믹으로 대한민국 전체가 봉쇄되기 직전의 위기 상태에 놓여 있다. 자영업자들과 서민들의 삶은 핍폐해지고 있고 아비규환 상황 직전이다. 이러한 가운데 일부 종교인들의 이기적인 종교행위를 행복인문학적 관점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이 글에서 전제하고자 하는 것은 종교인들의 순수한 신앙적 모임 자체를 민주주의 국가에서 금지하자는 것이 아니며, 종교 모임으로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확산되도록 하는 일부 종교단체의 행태에 대한 제한적 논의임을 분명히 하고 싶다. 안타깝게도 일부 종교단체의 모임이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확산에 기름을 붓는 도화선이 된 사례가 몇 차례나 연속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는 위기 상황에 빛을 내야 한다. 종교의 기본적 역할은 고행이며 십자가이다. 이기심이 아닌 이타심이 종교가 가르치고자 하는 생활철학의 기본 요건이다. 십자가를 앞세우고 숱하게 많은 사람을 죽였고 결국은 중세를 멸망케 했던 십자군 전쟁이 과연 신의 뜻에 합당했던가? 혹시 그것은 종교 이기주의에 빠져 범한 종교적 범죄는 아니었는가를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최근 1년간 기존 종교는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종교적 모임이 약화됨으로 인해 종교심 자체가 희미해지고 신자들의 단결력과 충성심도 시들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 장소로 모여서 종교지도자들의 가르침을 규칙적으로 들어야만 자신들의 신앙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종교인들의 열정적인 신앙심이 많이 약화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종교는 2021년 지금 심각한 존립 위기를 맞고 있다. 종교는 이러한 위기에서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자기들의 교세를 유지하기 위해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하향을 요구하거나 독선적인 종교 모임을 계속하는 것이 과연 이웃사랑이라는 명제에 합치하는 일일까? 그동안 종교국가 대한민국의 종교인 숫자는 크게 감소 추세였다. 2018년에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한국의 종교현황'을 보면, 2005년도 종교인 비율은 53%였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2015년에는 44%까지 하락했다. 종교 시설을 찾는 사람들의 숫자는 크게 감소하고 있었고, 그러한 가운데 코로나 19의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1년간 종교시설은 강제적으로 집합 금지를 당하며 종교심은 많이 소멸되어 가는 중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 진솔한 질문을 해 보아야 한다. 지금 이 상황이 종교 시설이나 종교 단체의 소멸인지? 아니면 종교 그 자체의 가르침을 빛내기 위한 정제 기간인지를 말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종교는 큰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마치 15세기 루터의 종교개혁 선언문이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부착된 이후 가톨릭교회당을 찾던 사람들이 개혁교회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가톨릭교회의 교세가 급격히 줄어들었던 것 처럼 말이다. 중세 유럽을 온통 지배하던 가톨릭교회는 세력을 잃었지만, 신생 개혁교회가 새로운 유럽의 번창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에서도 종교의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면 좋겠다.

루터는 교리와 도그마에 몰입된 가톨릭교회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벗어나는 개혁을 요구했고, 그러한 주장에 동조한 사람들이 만든 개혁교회가 500년 간 전 세계를 변화시키는 동인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에서 개혁교회는 또 다시 개혁의 위기를 요청받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빚어낸 강제 상황으로 말이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는 종교로서 생존하는데 필요한 전문화된 제도적 규범들로 변장하지 않았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종교의 세속화(secularization)로 이어지지 않았는지를 반성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종교의 본질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루터의 개혁 운동으로 가톨릭의 권위에서 해방된 각 영역들은 각자의 정체성을 찾아 발전하였다. 정치는 왕정제에서 민주주의로, 경제 역시 자본주의로 발전했다. 그러나 종교 가운데 개혁교회의 전통을 따르는 기독교는 500년 전 루터가 개혁한 그 상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미물보다도 못하다고 간주하던 정체불명의 코로나 19 바이러스와 변이 바이러스의 무자비한 침공은 종교국가화 된 대한민국에서 종교의 거듭남을 요구하는 간곡한 요청일지도 모른다.

위드 코로나 시대의 종교는 변혁기를 맞이하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온라인 예배의 일상화로 인해 비대면 예배 행위의 정당성을 이미 확보하고 있다. 이렇게 온라인 예배가 정착되어 된 후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되면 현존하는 종교의 양태는 과거와 많이 달라질 것이다. 물론 인간의 예전처럼 이기적 욕구와 본능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차원에서의 종교적 욕구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외형적 성장을 부흥이라고 간주하던 자본주의 정신에 세속화된 종교계의 패러다임은 확실히 바뀌어질 것이다. 특정 종교시설로의 모임에 대한 의미나 열정은 급격히 식어질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조만간 경험하게 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종교는 힐링과 웰빙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고, 융복합 시대에 적합한 공유정신을 실천하면서 철저히 개인주의화로 치닫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예전 같이 규모가 크거나 화려한 종교시설은 더 이상 인기를 얻지 못할 것이다. 한 때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세워졌던 중세 첨탑의 성당들이 이제는 구경꾼들이 몰려드는 관광지로 전락하였듯이 말이다. 예배 의식을 중시하던 중세가 무너짐으로서 도그마 시대가 붕괴되고 이성의 시대가 도래한 것처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개인별 소확행을 만족시키는 프로그램으로 종교가 변혁될 것이다.

정리하자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지금의 종교와 달리 '종교개혁(Reformation)'의 수순을 밟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행복 코디네이터가 새로운 종교를 안내하는 성직자의 자리를 차지하는 시대가 될지도 모른다. 비록 내가 행복 코디네이터를 창시하고 이것을 규격화하여 대한민국 정부에 2013-0880호로 등록한 본래 목적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글> 김용진 교수, 국제웰빙전문가협회 협회장, 국제웰빙대학교 총장, 행복 코디네이터 창시자, 뉴스포털1 전국방송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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