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뉴스는 『기획연재Ⅴ/소설』로 2020담양 송순문학상 수상작인 강성오 작가의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를 연재합니다.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는 임진왜란 당시 우리지역 출신 의병장으로 활약했으나 억울하게 처형됐던 김덕령 장군의 아내와 주변 인물들의 비극적인 삶을 형상화한 소설입니다.본지는 금년도 송순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인 강성오 작가의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를 월2회 가량 지면을 통해 연재할 예정입니다. / 편집자 주.

<제3화>

■ 1593년 8월

  능주는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가 이럴 때를 대비하여 알려주었다고 생각했다. 왜적이 쳐들어와 나라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고, 간신히 전라도만 침략을 당하지 않고 있지만 언제 왜적을 맞닥뜨릴지 몰랐다.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이 석굴로 몸을 피할 요량이었다.
  “영감쟁이는 첨에 어떻게 알았는지 말해주던교?”
  떡배는 이슬에 휘주근하게 젖은 저고리를 벗어, 두 손으로 비틀어 짜며 능주를 보았다.
  “아부지가 석청이 어디 있는지 알아보러 댕기다가, 이 석굴에서 사람이 나오는 걸 우연히 봤다고 하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인디, 눈이 어찌나 깊고 맑은지 도인이라는 생각이 젤 먼첨 들었다등먼. 왜 걱서 나요냐고 물은께, 산짐승을 피해 숨었다가 나오는 중이라고 했다등먼. 그람시로 혹시 짐승한테 쫓기면 들어가서 피하라고 알려주었다등먼. 마실 물도 있담시로.”
  
능주는 아버지가 들려준 말을 그대로 떡배에게 전했다. 떡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능주는 속으로 자신을 나무랐다. 떡배 부모님의 안부를 무엇보다 먼저 챙겨야 했다는 생각이 그제야 떠올랐다. 능주는 더 이상 석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떡배에게 말한 거 외에 아는 것도 없었다. 능주가 떡배 부모님의 안부를 물으려는데 떡배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형님요? 여기 말고 물을 마실 수 있는 다른 석굴도 있습니꺼?”
  “이 정도면 충분한 거 아녀?”
  “이번에는 사향 두 개를 가져가야 합니더. 두 마리를 잡으려면 바위틈에서 얼마나 묵을지 모르지 않겠습니꺼? 사향노루가 급경사 암벽지대에서만 산다는 거, 형도 잘 안다 아입니꺼? 고놈들을 잡으려면 암벽지대에서 몸을 숨기고 적어도 두어 달은 기다려야 할 거 아입니꺼? 사향노루가 계곡으로 내려가 물을 마시지 않을 거니, 물이 나오는 곳을 알아두면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꺼? 지도 동물인데 목이 마를 때가 있지 않겠습니꺼? 오늘 보닌까니 사향노루만 물이 필요한 게 아이고, 내가 더 필요하겠데예.”
  
떡배 말투와 표정에서 반드시 사향노루를 잡아야 한다는 결기가 느껴졌다. 저 정도 결기라면 사향노루 두 마리를 잡을 때까지 산에서 내려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물이 필수일 것이다. 능주는 물이 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알려주었다. 떡배가 추월산 지형을 잘 몰라, 같은 말을 두세 번 반복해야 했다. 그래도 다시 물었다.
  “오메, 징상스럽게도 말귀를 못 알어 묵네이? 하긴 낯선 지형인디 어련하겄는가? 내가 언제 데꼬댕길랑께 걱정 말게나.”
  
산중이라도 물은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다른 먹거리가 걱정이었다. 가을이라 열매가 지천이라 해도, 풀만 먹고 살 수야 없지 않은가. 짐승도 아닌데. 
능주는 떡배 봇짐을 보았다. 하얀 보자기가 한껏 부풀어 있었다. 그렇다 해도 사향노루를 잡을 때까지 묵새기기에는 아무래도 무리 같았다. 말이 두어 달이지, 암벽지대에서 보내야 할 시간이 훨씬 오래 갈지도 몰랐다. 
능주는 떡배에게 봇짐을 풀어보라고 했다. 떡배가 눈을 크게 뜨고 왜냐고 반문했다. 부족한 게 무엇인지 알아야 가져다 줄 게 아닌가, 라고 하자 떡배가 지싯지싯 봇짐을 풀었다. 봇짐에서 나온 살림도구는 단출했다. 광목 주머니에는 두 돼 정도의 보리가 들어 있었다. 떡배는 광목으로 꽁꽁 싸맨 작은 항아리 두 개의 뚜껑을 열고 비스듬히 세워 안을 보여 주었다. 하나는 된장이, 하나는 고추장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김치나, 깍두기는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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