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인 이선 님의 “무등산은 마당, 떼죽나무 군락지는 정원"

▲귀농인 이 선 님
▲귀농인 이 선 님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처럼 반복되는 생활은 누구에게나 지루하기 마련이다. 일부 직장인도 그런 지루함 때문에 퇴사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한두 번 정도는 있을 것이다. 자영업자도 마찬가지다. 가족의 생계가 아니라면 생활에 변화를 주고 싶은 사람이 주위에 많은데 나 역시 되풀이 되는 생활에 염증을 느껴오던 터라 삶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나는 광주에서 유통업에 종사했다. 정확히는 마트를 운영했다. 자영업자라서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은 것은 좋았지만 같은 일을 매일 반복해야 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늦은 밤까지 일하다 집에 들어가면 파김치처럼 몸이 축 늘어지곤 했다. 젊었을 때는 그나마 나았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버거웠다. 
주말이면 취미생활도 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을 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나는 사진 찍기를 좋아했다. 카메라를 메고 그럴싸한 장면을 담으려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목적지를 정하고, 카메라를 메고 집을 나선 순간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어떤 멋진 장면을 담을까. 작품이 될 만한 구도를 생각하며 떠나는 길은 행복 그 자체였다. 셔터를 눌러대는 순간도 가슴이 부풀었고 작품을 편집할 때도 들떠 있었다. 취미란 그런 것이었다. 새벽길을 나서고, 장시간 운전을 하면서 돌아다니다, 늦은 밤에 돌아와도 피곤한 줄 모르는 것. 하지만 유통업에 종사하다 보니 취미 생활을 마음껏 영위하기가 불가능했다.

10여 년 운영을 했는데 매출은 갈수록 하향곡선을 그렸고, 건강도 우려스러울 정도로 약해졌다. 유통업에 계속 종사하다가는 돈도 잃고 건당도 잃을 것만 같았다. 취미 생활을 만끽하지 못한 것을 떠나 건강 때문에라도 유통업을 접어야 했다. 나는 후속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차분히 알아보기 시작했다. 
건강과 생계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을 찾았는데 귀농이 그 두 가지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귀농을 결심하고 작목을 알아보았다. 내 여건을 종합해 판단하니 양봉이 맞을 것 같아 차분히 준비를 이어갔다. 부지를 구하고 양봉을 배웠다. 그런 준비 기간을 2년 거친 후에 미련 없이 마트를 정리하고 사봉실 마을로 들어왔다.

▲사봉실 꿀벌 농장
▲사봉실 꿀벌 농장

내가 둥지를 튼 곳은 국립공원 무등산의 깊은 계곡 옆이다. 계곡을 건너면 바로 무등산이니 국립공원의 경계에 둥지를 튼 셈이었다. 사람으로 친다면 배꼽쯤이나 될까. 버스에서 내려 걸어 오른다면 족히 한 시간 가까이 걸릴 정도의 위치에 농원이 있다. 사봉실꿀벌농장. 
이곳 무등산 중턱에서 벌꿀을 생산하게 된 것은 귀농을 염두에 두고 여로 군데를 알아본 결과였다. 이곳에 첫 발을 들여놓은 순간 바로 여기다, 라는 확신이 섰다. 무등산이 있고, 계곡이 흐르고, 떼죽나무 군락지가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무등산을 마당으로 삼고, 떼죽나무 군락지를 정원수라고 생각해도 좋을 정도였다. 벌꿀을 생산하려고 계획했기 때문에 떼죽나무 군락지가 있다는 것은 천혜의 조건이었다. 
아카시아꿀이나 잡화꿀은 익히 들어보았고 가끔 먹기도 했지만 떼죽꿀은 생소했다. 귀농을 준비하면서 농업기술센터나 전문가들에게 여러 과정의 교육을 받았다. 양봉 교육 또한 깊이 있게 받았다. 그때 알았다. 떼죽꿀이 얼마나 귀하고 좋은지를. 떼죽나무 군락지는 흔한 게 아니다. 희소성이 있다는 말이다. 
떼죽나무 군락지가 무등산 중턱에 있으니 오염원이 없었다. 이런 주변 환경을 보고 일부러 사러 오는 단골이 생겼다. 함께 오신 분이 맛을 보고 맛과 향이 깊고 그윽하고 신선하다고 예정에 없이 구입해 가신 분도 계셨다. 단골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이선 귀농인이 생산한 떼죽나무 꿀
▲이선 귀농인이 생산한 떼죽나무 꿀

벌꿀을 생산하고 있으니 예전보다 자주 꿀을 먹을 수밖에 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꿀도 떼죽꿀이다. 나는 틈틈이 떼죽꿀을 먹는다. 그래서일까. 마트를 운영했을 때보다 훨씬 몸이 좋아졌다는 것을 절절히 느낀다. 무등산을 오르내리고, 청정 지역에서 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귀농 후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겼다. 카메라를 메고 돌아다닌 시간도, 지역도 늘었다. 올해는 백두산 천지를 카메라에 담아오기도 했다. 마트를 운영했다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아내도 귀농을 만족해한다. 벌들은 겨울에는 꿀을 생산하지 않는다. 해서 나도 다른 때보다 한가한 편이다. 아내와 또 어디를 갈까. 어떤 장면을 카메라에 담아올까. 나는 자주 꿀처럼 달달한 생각을 한다. / 강성오 군민기자

※ 귀농인 이선 님은 2014년 가사문학면 사봉실마을로 귀농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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