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돌발 위기관리 능력이 부족한 대한민국호가 셧다운 되고 있다.
발만 동동굴리고 울부짖는데 정략적 대립만 남고 민생은 불타고 있다.

김용진 교수, 국제웰빙전문가협회 협회장, 국제웰빙대학교 총장, 행복 코디네이터 창시자, 뉴스포털1 전국방송취재본부장
김용진 교수, 국제웰빙전문가협회 협회장, 국제웰빙대학교 총장, 행복 코디네이터 창시자, 뉴스포털1 전국방송취재본부장

 

요즈음 코로나 확진자가 12일, 15일, 16일에는 1천명대를 가뿐히 넘어섰다.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전면 시행을 대통령은 만지작거리고 있다. 게다가 잡히지 않는 집값에 전세난까지 겹치고 있다. 또한 정치적으로는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 간의 심각한 대립으로 나라가 더 어수선하다. 그에 대한 여야 정치인들의 시각과 판단도 완전 대립적이다. 민심은 동요하고 있고 서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풍전등화의 대한민국인데도 뾰족한 해결책도 없이 난파선처럼 표류중인 현 상황이 마치 과거 불행했던 조선의 역사를 되풀이하는것 같아 마음이 참 아프다. 

지금부터 450여년 전인 1575년 조선은 동인과 서인으로 분당하여 당쟁에 휩쌓여 있었고, 상대 당파를 적으로 간주하여 제거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사실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국방력 강화와 민생안정 주력에 힘쓰던 이이 선생은 자신의 뜻과 달리 동인들에 의해 서인의 우두머리로 지목되게 됨으로서 정치적으로 동인들에 의해 큰 반감을 받고야 말았던 비운의 인물이다. 과연 이이 선생이 함께 살았던 그 시대 왕과 군신들은 곧 들이닥칠 쓰나미 같은 임진왜란의 표호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일까?

이이 선생은 1536년 강릉의 오죽헌에서 시화에 능한 신사임당의 아들로 태어났다. 1551년 어머니가 별세하자 3년상을 치루고 19세에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의 선학을 수학하며 학문적 깊이를 쌓던 이이는 1년 만에 불교를 접고 성리학에 관심을 두고 하산하였다. 이후 23세에 혼인하고 처가에서 우연히 35세 연상인 퇴계 이황 선생을 만나게 되었다. 이후부터 퇴계 선생과 장문의 편지를 통해 이기론을 논의하며 자신의 사상을 검증받으며 학문적 완성도를 높여 나갔다.

이후 29세이던 1564년 문과에 장원급제 하고 이후 9번이나 과거에서 장원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는 호칭도 받게 된 문인이다. 선조가 즉위한 다음해인 1568년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가 왕조의 중간 쇠퇴기라고 규정하고 대개혁이 필요하다는 '동호문답'을 문답식으로 정리 작성하여 16세인 선조에게 읽게 하였다. 이이 선생은 형조판서와 병조판서를 거쳤고 죽기 1년 전인 1583년 국방부장관격인 병조판서 재임시에 그 유명한 '시무6조'를 통해 국방력 강화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이이가 주장한 시무6조 즉 정책적으로 시급히 시행해야 할 6가지 조항은 다음과 같다. 1.현능(賢能) 즉 똑똑하고 유능한 인물을 임용할 것 2.군민(軍民) 즉 군사와 백성을 양성할 것 3.재용(財用) 즉 국가 재정을 비축할 것 4.번병(藩屛) 즉 국경을 견고하게 지킬 것 5.전마(戰馬) 즉 전쟁을 감당할 말을 준비할 것 6.교화(敎化) 즉 백성의 의식을 개화시킬 것이다. 이 내용이 훗날 그 유명한 '10만 양병설'의 기원이 된다. 

이렇게 부국강병 조선이 되는 비결에 대한 정공법을 제안했던 이이의 주장에 대한 선조의 답변은 두루뭉실했다. 당시 인구 230만명에 불과한 백성을 통치하던 조선 국왕이 북쪽으로는 여진족의 침입과 남동쪽으로는 왜족의 공격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선조는 국방력 강화의 위기상황이라는 이이의 본질적인 주장에 대하여 "공직자들이 청렴결백하여 뇌물을 주거나 개인적 청탁하는 행위만 근절한다면 세상은 평화롭게 돌아간다"고 안이하게 대답했던 것이다. 결국 1592년 왜족의 침공으로 조일전쟁 즉 임진왜란이 터지고 조선은 전쟁에 광분한 왜놈들의 피비린내 나는 전투 놀이터가 되고야 말았던 것이다. 정치는 교과서적인 이론을 따르는 것이 아닌 실물을 능동적이고 생산적으로 다루는 통치술이다. 현실적으로 다수 국민이 좋다고 평가하도록 일하는 것이 결국은 잘 하는 정치인 것이다.

이이 선생의 십만양병설은 제자인 사계 김장생 선생이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5년 후인 1597년에 집필한 '율곡행장'에서 이이 선생과 영의정 유승룡 과의 대화체 형식으로 소개 된다. 이이 선생이 48세에 죽은 뒤에 사계 선생이 기록한 내용이다. 선조가 죽은 후 광해군이 즉위하여 선조 시대를 정리하는 '선조실록'을 편찬하였는데 그 때 동인 중에서 강경파이던 북인들이 핵심 집권세력이 되었다. 이들 북인의 주도하여 선조실록을 편찬 할 때 반대파이던 서인들에 대한 적대적 감정에서 서인들의 활동에 대한 평가절하된 입장이 실록에 가미되었다. 비록 이이 선생이 무당파로서 중립적이었다고는 하더라도 광해군 시절 집권세력은 북인이었다. 이들은 이이 선생을 서인의 우두머리라고 간주했기에 선조실록에서는 이이의 죽음에 대하여 '이이졸'이라고 아주 간략히 세글자로만 기술하였던 것이다.

이후 정권이 바뀌어 인조가 즉위하고 서인들이 집권세력이 되자 선조실록을 그대로 두고 수정본인 '선조수정실록' 편찬을 시작하여 효종대에 완성하게 되었다. 정권이 바뀌니 역사관도 정반대가 되었다. 그러니 당연히 선조수정실록에서는 이이 선생의 인품이나 학문적 성취와 정치적 예지력, 애국심 등을 소상히 극찬하게 된 것이다. 선조실록에서는 평범한 한 정치인이 죽었다는 것으로만 정리되었지만, 선조수정실록에서는 미래를 바라보는 혜안을 지녔던 학자이자 정치가의 모습으로 이이 선생의 모습이 선명하게 부각된다. 이렇게 역사는 권력을 가진 자의 편에서 재해석 된다.

세월이 많이 지난 오늘날 이이 선생에 대한 동인의 평가가 옳은지 서인의 평가가 옳은지 우리는 정확히 평가할 수 없다. 역사학자들의 평가 역시 주관적인 해석을 가미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행복강사 김용진 교수가 이이의 십만 양병설이라는 키워드를 아젠다로 삼은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국회의원 경험도 없는 사람이 감히 현재 대한민국의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 간의 헤게모니에 대한 정치적 비판을 가하고자 함이 아니다. 국민행복을 고뇌하는 행복학자로서 그리고 일개 서민으로서 융복합 시대인 2020년대에도 여전히 반복을 답습하는 후진 정치적 대립과 갈등과 분열이 '서로 때리고 서로 자폭하기'라는 국가적 비극과 국민적 불행으로 재연되고 산불처럼 확산되고 있음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다수의 국민이 그러하듯이 법무부장관의 편도 검찰총장의 편도 들 생각이 전혀 없다. 오직 민생을 돌아보지 못하고 자기들의 밥그릇 싸움만 하고 있는 사악한 사람들로 인해 국가부도가 예견되는 이 극심한 위기상황을 헤쳐 나가는데 힘을 모으지 못하는 정치인들에게 자중을 요청하는 것 뿐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이 아름다운 나라가 그들 정치적 야심을 가진 몇 사람의 다툼으로 혼란과 도탄에 빠져서는 정말 안되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 상황은 엄중하고도 엄중한 위기 비상 상황이다. 6.25 한국전쟁 시기와 뭐 다를 바가 없을 정도로 도처에 실직자가 넘쳐나고 있고 상당수의 국민은 빚으로 하루 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나날이 아파트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전세대란에 서민들은 추운 2020년 겨울을 어떻게 버틸지가 걱정되는 나날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의 확산으로 인해 3단계 방역조치에 접어들게 되면 서민경제는 완전 파탄나고 만다. 코로나 대출을 받아서 근근이 버텨온 자영업자들 거의 모두가 회생불능에 가까운 파산을 당할 지경이다.

지난 15일 행정안전부 공공데이터포털에 등록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상가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3분기(9월 30일) 기준 서울지역 상가 수는 36만7535곳으로 집계됐다. 올해 1분기 39만1499곳, 2분기 37만321곳이었다는 점에서 3개월 단위로 2만여 곳이 문을 닫고 있다. 코로나19 2차, 3차 대유행으로 영업에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임대료와 관리비 등 고정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운영을 포기하는 이들이 급증한 것이다. 이렇게나 대한민국호가 침몰직전이기에 정치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당리당략을 떠나 민생회복에 사활을 걸어야만 하는 절대 위기 상황이다. 그러함에도 월급이 꼬박꼬박 입금되는 그들로서는 이 상황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가 보다. 한 마디로 고위 공직자들이나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 상당수가 정신차리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권력을 쥐지 못한 서민의 입장이기에 말도 안될 억지 주장이지만 넋두리를 좀 해 보고자 한다. 이이 선생의 십만 양병설처럼 먹혀 들지 않을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파퓰리즘적인 차원에서 제안하는 것도 아니다. 서민들의 고충이 얼마나 심각한지 고위직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이 뼈져리게 느끼라는 의미에서이다.

국민행복강사가 제안하는 것은 월급이나 세비를 팍 출여보자는 것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 사는 모든 정치인들과 공직자들의 월급도 지금 상황에서 재고해 보면 어떨까? 국가 경제 성장률에 비례하여 월급도 탄력적으로 주면 어떨까? 영세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의 수입처럼 공직자들과 정치인들의 세비를 평균내어 비례 지급하면 어떨까? 항간에 자영업자들의 월매출이 코로나로 인해 70%도 넘게 줄었다고 한다. 그러니 이들 고위직 귀족들에게도 전년 대비 30퍼센트 이하의 금액만을 월급이나 활동비로 지급해 보자는 것이다. 세금을 인상하고 서민의 목을 죄는 일은 아무렇지 않게 여기면서도 자신들의 철밥통은 지키는 사람들은 진정 서민경제와 서민복지와 국민행복을 염두에 둔 국민의 머슴이라고 할 수 없다. 그들은 권력을 가진 깡패 패거리일 뿐이다. 

우리나라는 어쩌면 무뇌아들의 놀이터인듯 싶어 안타깝다. 코로나 사태만 생각해 본다고 하더라도 그렇다. 무조건 서민의 발을 묶어 이동제한 조치만 강화하면 해결된다는 발상이 거의 유일한 대안이다. 가진자들의 고통분담에 솔선수범하는 정신이 실천되는 모습은 별로 안 보인다. 코로나 사태를 빨리 진정시키려면 3단계로 거리두기를 격상해야 한다고만 말하지, 그러한 결과로 빚어지는 서민경제 파탄이라는 엄중한 사태를 자신들은 책임지거나 분담하거나 공유하려고 하지 않는다.

아무튼 서민경제는 나날이 심각하게 파탄나고 있으니 국민세금을 많이 받아 먹고 사는 머슴들도 당연히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 대통령부터 장차관을 비롯한 고위직 공무원들 그리고 국회의원들과 정치인들도 현재 대한민국 국민들이 겪고 있는 수준의 월급과 활동비로 낮추어 받아야 한다. 2021년도 고위직의 월급을 2020년도에 받은 금액의 30% 이하로 낮추어 지급하자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채무도 생긴다면 그건 그 개인이 감당해야 할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서민 대다수가 은행 채무자로 전락하고 있다는 현실을 반추한다면 억울한 일은 아니다. 이게 진정으로 다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는 공정사회의 모습이 아닐까?

만일 이렇게 가진자들이 먼저 고통을 분담하는 낮은 자세를 취하고 국민에게 3단계 거리두기를 제안한다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모든 국민이 기꺼이 두문불출하며 코로나 잠식을 위해 적극 동참하지 않을까?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금모으기를 했던 사람은 높은 자리에 앉아서 호령하던 사람들이 아니라, 차거운 5일장 시장바닥에서 100원짜리 동전을 주고 받으며 경제를 이어가던 서민들이었다는 것이 오늘 새삼 기억나는 것은 왜일까?

국민의 마음을 붙잡지 못하고 장수의 목만 벤다고 한들 다가오는 임진왜란 같은 어처구니 없는 환난은 면하기 어려울 듯 싶다. 이제는 칼을 거두고 화합과 포용으로 우리 모두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할 위기 상황이다. 우리 모두가 함께 잘 살아갈 묘안을 찾아야 하는 마지막 타이밍일지 모른다. 수 시간동안 침몰중인 세월호를 바라보면서도 하선 명령도 내리지 않고 왔다리 갔다리 하던 그 모습이 자꾸만 오브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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