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도 스님(조계종 담양 마하무량사)

● 대한불교 조계종 포교원장·교육원장, 조계종 원로 대종사, 중앙승가대학교 부교수 역임, 대한민국 국민훈장 ‘석류장’ 수훈

복스럽게 잘사는 길은 대승보살도(代承菩薩道) 가운데 자비보시(慈悲布施)가 제일이다. 자비심이 넘치면 보시행이 따라서 사회완성(成佛國土)이 될 수밖에 없다.

소승적 자리(自利)의 수도(修道)가 완성되면 대승적 이타의 수행(修行)이 완성 되어야만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으로 불자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인생은 복(福) 불복(不福)이라고 한다.
복은 행복(幸福)을 말하고 불복은 화(禍)를 말한다. 복을 짓고 복을 받고 복을 누리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일(自業自得 自作自受)이다.

일반적으로 생활이 넉넉한 사람은 행복하고 의식주(衣食住)가 변변치 못한 사람은 불행하다. 그러나 출가 전 석가모니 부처님처럼 행복의 조건인 오복(五福:財色食名壽 )이 넘친다 하더라도 본인의 마음이 흡족하지 못하면 행복하다고 할 수는 없다.
사람마다 정신적 차원에 따라서 인생의 목적인 행복관이 다르다. 육체적인 쾌락을 행복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정신적 희열을 행복이라고 말하고 단란한 부부생활을 행복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진리를 깨달아 열반락(涅槃樂)을 누리는 사람도 있다.

실지 복이란 무엇인가? 쉽게 말하면 복은 좋은 인연(因緣)이다. 그래서 인생을 인연 노름이라고도 한다.
예를 들면 혈연, 지연, 학연, 직장연, 법연(法緣) 등 모든 사람들은 수많은 인연 속에 살면서 좋은 인연을 만나기 위해 노력한다.

초년에 부모를 잘 만난 사람은 부모 복이 있고 말년에 자식을 잘 둔 사람은 자식 복이 있고 중간에 처를 잘 만나면 처복이고 남편을 잘 만나면 남편 복이고 가는 데마다 돈이 잘 생기면 재(財) 복이고 먹을 것이 풍부하면 식(食) 복이고 매일 일만 생기면 일복이 많다고 하며 심지어 자주 얻어맞는 사람은 매 복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죽어서 좋은 곳으로 가는 사람은 명복(冥福)이 좋다고 한다. 명복은 살아 생전에 좋은 일(業績)많이 한 덕이다.
복은 자기가 지어서 받는 것(自作自受)이다. 전생에 좋은 일을 많이 한 사람은 천복(天福)이 있다고 하고, 금생에 아무리 노력을 해도 겨우 밥밖에 못 먹는 사람은 전생에 복을 짓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복을 짓는가?
첫째, 복스럽게 잘 사는 길은 보시(布施)다.
보시는 자비심으로 남에게 베풀고 사는 대승보살도(大乘菩薩道)다. 사랑의 근본 마음이 자비심(慈悲心)인데,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듯이 베풀어야 한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상대를 위해서 아낌없이 돕는 것이다. 옛날 말로는 법시(法施) 재시(財施) 무외시(無畏施) 삼시청정(三施淸淨)이라고 하는데, 주로 사람 마음이 깨끗하고 받는 사람 마음도 깨끗하며 중간에 주고 받는 물건이 깨끗해야 한다. 세상살이는 주고 받는 것(give and take)이라고 하지만 무엇이든지 주면 잘 받아 주어야 한다. 사랑도 주기만 하고 상대가 받아주지 않으면 짝사랑이 되고 만다.

우리 몸의 감각기관은 전체가 주는 것이다. 눈으로 봐주고 귀로 들어주고 입으로 먹어주고 코로 맡아주고 손으로 만져주고 마음으로 생각해 주고 온통 우리 인간은 주는 것 뿐이다. 그러니 자비심으로 잘 주고 사는 것이 복을 짓고 복스럽게 잘사는 것이며, 모든 은혜(부모·스승·친구·사회·국가)에 보답하는 길이다.

둘째, 복스럽게 잘사는 길은 지계(持戒)다.
지계란 계를 지킨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 자신의 욕망과 분노를 통제하고 남의 인격을 존중하며 배려하는 것이 계의 근본취지다. 소승계는 나쁜 짓 하지 않는 지악(止惡)을 주장하지만 대승보살계는 착한 일 하는 것(作善)을 강조한다. 살생은 물론 안하고 방생(放生)을 하며 도적질 안하고 바르게 살며 사음하지 않고 거짓말 하지 않고 참말만 하고 술 안마시고 깨끗한 물을 마시는 것이 사실은 자기가 자기를 위해 복 짓는 것이다.
본능에 가까운 업과 습관(業習)이 잘못되어 그렇지 자기 건강을 위해서도 계는 지켜야 복스럽게 잘사는 길이다.

계(戒)를 깊이 생각해 보면 부처님과의 약속이다. 친구와의 약속은 말로 하면 언약(言約)이고 글로 하면 서약(誓約)이다. 사회생활에 있어서 강제적인 약속이 있다. 그것은 법률(法律)이다. 그리고 자기가 자기하고 하는 약속이 있는데 결심(決心)이라고 한다.
인생은 약속을 잘 지키면 복스럽게 잘 살 것이고 안 지키면 불행할 수밖에 없다. 신용이 재산(財産)이라, 약속이 신용을 낳고 신용이 재산을 낳는다.

셋째, 복스럽게 잘사는 길은 인욕(忍辱)이다.
인욕은 참고 견디는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탐욕과 진심(嗔心)을 참고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나 치욕을 억울해도 이겨내는 것이다. 옛날 어머니들은 시어머니 앞에서 눈도 크게 뜨지 못하고 참고 사는 것이 미덕이었다. 요즘 여자들은 참다가 속 알이 생긴다고 막 퍼 대다 보니 고부간에 존경과 사랑은 어디로 갔는지 찾아보기 힘들다.

백 번 참으면 살인도 면하고 인욕은 수행(修行)의 근본이라고 했다. 재미있는 말로, 참는 자가 복이 있나니, 천당과 극락이 저의 것이다. 최후의 승리자는 참고 이기는 것이며 복을 받는 법이요 길이다.

넷째, 복스럽게 잘사는 길은 정진(精進)이다.
정진은 견성성불을 목표로 정밀하게 쉬지 않고 밀어붙이는 것이다. 일반사업도 노력해야 성공하는 법인데 생사문제를 해결하는 마음공부는 지극정성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서 전력투구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한 것이다.

부처님 같이 근기(根機)가 수승(殊勝)해도 입산수도(入山修道:上求菩提)를 6년 하시고 하화중생(下化衆生)을 45년 동안 포교수행(布敎修行)을 하셨는데 하근기인 우리가 먹을 것 다 먹고 중도수행(中道修行)한다고 적당히 살아서 무슨 재주로 성불하겠는가?
무상한 세월을 아끼고 속득해탈(速得解脫)을 위한 정진은 복을 받는 수행으로 복스럽게 잘사는 길이다.

다섯째, 복스럽게 잘사는 길은 선정(禪定)이다.
선정은 정신통일의 경지로 복을 누리는 길이다.
아무리 복을 많이 짓고 받았다 하더라도 결국 복을 누리지 못하면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만다. 설사 행복의 조건을 다 갖추었다 하더라도 불편하면 불행한 것이다.

소욕지족(所欲知足)이라, 항사 욕심을 줄이고 현실에 만족할 줄 알면 행복을 누릴 것이다. 언제나 마음을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심일경성(心一境性)이 되도록 평정심(平定心)을 갖는 것이 복을 누리고 복스럽게 잘사는 길이다.

여섯째, 복스럽게 잘사는 길은 지혜다.
지혜는 현실긍정적 사고(思考)로 자기의 내면(몸과 마음)과 외면(주위환경)을 관찰하고 전체를 통찰하는 공적영지(空寂靈智)다. 그리고 지혜는 자기의 능력을 효과적으로 능률화하는 힘이다.

현실을 부정하거나 회피 도피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기 불만에 쌓여 불행할 수 밖에 없다. 생활은 호화(집) 사치(옷) 낭비(음식)하지 말고 근검 절약하며 베풀고 사는 것이 지혜로 복스럽게 잘사는 길이다.
이상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는 이 세상의 고해를 건너 저 언덕(彼岸) 최고 이상(理想)의 세계로 도달하는 대승보살도(大乘菩薩道:六波羅密)로서 복을 짓고 복을 받는 복을 누리는 길(道)이다.

소승불교의 잘사는 길이 반야지혜로 파사현정(破邪顯正)해서 견성(見性)한다고 하면 대승불교의 잘사는 길은 자비보시로 불국토를 건설하는 성불(成佛)이다. 결국 견성성불은 모든 불자들의 사명이요, 복스럽게 잘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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