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고필(문화기획가, 향토사전문책방 이목구심서 대표)

 “은일의 소쇄원” 제작기

옛 사람들은 어떤 일을 도모하고 시행할 적이면 그 이유와 과정과 결과를 담은 기문을 남기는 것이 일상이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또 생활이 바뀌면서 이런 일들이 번다한 것이나 남새스러운 것으로 치부되기도 하여 생략되고 먼 옛날에나 그런 것처럼 얘기하고 말지만 담양사람인 나는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이제부터 진술하는 것은 지극히 사적인 체험임에도 내 고향의 일과 닿아 있어 꾸밈없이 얘기하고자 한다.
내용인 즉슨, 1999년 소쇄원에서 받은 공명이 2020년 11월 17일에 어떻게 당도했는가에 관한 실토이다. 내가 소쇄원에 공부하고자 들어선 것은 1997년 광풍각에서 문화답사 분야에서 엄지척 할 수 있는 이세영 선생님의 해설을 듣고 나서 부터였다. 서울 말씨로 소쇄원의 숟가락까지 꿰는 것에 나는 무참하게 자존심이 상했다. 바로 유제에 살면서 예쁘고 소담한 정원이라는 것 말고는 아는 게 없는 관광전공자라는 것이 아프게 다가왔다. 모든 것을 놓더라도 이곳을 공부하자 결심하고 15대손인 양재영 선배에게 부탁해 그곳을 출입했다.

먼저 이곳을 공부하고 확장하는 은사 같은 강기욱 선생과 이동호 선생이 있었고, 마치 하서 김인후가 양산보를 찾듯이 불쑥 나타나는 나의승 선생이나 산악인 장광호 선생 같은 분들도 있었다. 먼저 이곳을 찾으신 분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고 종손에게도 공간이나 사물이 갖는 직설적 의미와 은유적 의미, 그리고 확장된 해석 등을 배웠다. 그런 중에 소쇄원을 운율로 읽는 나의승 선생의 방식은 독특하면서도 울림이 전해져왔다. 그래서 언젠가는 이곳 소쇄원의 가치와 의미를 공유할 새로운 방식의 무언가를 만들어 보겠으며 공간에 대한 해석을 음악으로도 창출해 보는 작업도 전개해 볼 작심을 했다.

특히나 그 시기에 나의승 선생이 들려주었던 김수철의 “팔만대장경”이라는 음악과 원일의 “신뱃놀이”는 충격이었다. 국악관현악이라는 음률에 내재된 역사의 도도한 이야기나 삶의 숨결은 그야말로 생동감 있게 내 귀를 휘벼팠다. 군대시절 선임병이 내게 들려줬던 소지로의 “대황하” 라는 음악을 들으며 우리에게는 이런 작곡가가 없는지 개탄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하여튼 그때 결심했다. 뭐라도 되어서 두분 중의 한분을 모셔서 소쇄원이 어떤 내력을 지녔는지 설명하고 이에 감응하면 음악을 부탁 하리라고.

2011년 광주문화재단에 있을 때, 광주브랜드 공연인 자스민 광주를 제작하며 작곡가인 원일 감독과 만날 기회를 가졌다. 새침해 보이고 늘 고민이 가득한 얼굴인지라 말을 붙이기 어려웠는데, 공연진이나 제작진 모두들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고 매일 식당 밥에 질린 것 같기도 하여 고서의 어머니에게 부탁드려 찰밥과 오이냉국, 옥수수를 쪄서 함께 나눠 먹었더니 조금 말 붙이는 사이 정도는 되었다. 마침내 공연을 올리고 뒷풀이를 하면서 또 한 단계 가까워졌다. 헤어지는 날, 소쇄원을 얘기하며 그 때문에 언젠가 부탁을 청하면 거절 마시라는 말을 건네고 미덥지 않은 긍정의 신호를 받았다.

세월이 흐른지 7년 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명예강사 강연에 박애리 선생과 함께 원일 감독을 만나 다시 상기하고, 최정화 작가와 함께 운주사와 고인돌공원을 다녀오기도 했다. 2017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의 대한민국테마여행 10선 남도 맛기행 권역의 PM으로 일하고 있는 나는 공간의 명소화, 명품화 사업의 일환으로 소쇄원의 속내를 깊이 알 수 있는 기획사업으로 “소쇄처사 양산보와 함께 걷는 소쇄원”이란 체험을 운영하며 이와 더불어 음악 제작을 통해 더 심도 있는 소쇄원의 감동을 기록하고 전달할 계획을 가졌다.

마침내 2019년 그 사업을 문화부에서 승인해주며 원일 감독에게 작품의 제작을 의뢰할 수 있었다.
소쇄원을 함께 거닐고 깊이 있는 공부를 마친 원일 감독은 작년 12월, ‘은일의 소쇄원’이라는 제목을 단 12곡을 세상에 내놓았다. 소정풍경, 삽상, 오곡측이, 옥류옥추, 연어비약, 임향, 청의어희, 천손가, 청유, 파사, 적료적력, 천성으로 구성된 곡에는 소쇄원의 시간과 숨결과 조영자의 아픔과 희망이 모두 담지하고 있었다. 운율안에서 전해져 오는 이 느낌은 한편으로 벅차고 한편으로는 오싹 해지는 느낌이었다. 저 작곡가의 치밀한 독법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라는 놀라움이었다. CD로 녹음을 하고 뒷풀이 자리에서 내년을 기약했다.

그리고 금년 11월 17일, 소쇄원 종중과 종손, 담양군의 도움을 받아 비공개 온라인으로 소쇄원에서 연주회를 하고 영상을 공유했다. 공연중간 지휘를 하던 원일 감독은 지금 이 공간과 혼연일체가 된 지휘자와 연주자 모두는 이 행복한 시간에 그대로 머물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낸다.
이를 지켜보는 나는 울컥 솟구치는 눈물샘을 막아내지 못했다. 문화의 자장, 소쇄원이 갖는 자장에 스며든 또 하나의 큰 바위얼굴이 만들어지는 순간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담양출신의 원장현 선생님이 만드신 대금소리에 소쇄원이 갖는 소리의 공명이 있다면 이제 소쇄원의 이야기가 깃든 은일의 소쇄원이 우리 지역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것이며 거기 내가 함께 했다는 사실을 기록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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