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오 작가

담양뉴스는 『기획연재Ⅴ/소설』로 이번호부터 2020담양 송순문학상 수상작인 강성오 작가의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를 연재합니다.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는 임진왜란 당시 우리지역 출신 의병장으로 활약했으나 억울하게 처형됐던 김덕령 장군의 아내와 주변 인물들의 비극적인 삶을 형상화한 소설입니다.
본지는 금년도 송순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인 강성오 작가의 소설 ‘추월산 길라잡이’를 월2회 가량 지면을 통해 연재합니다. / 편집자 주.

【작가 프로필】
담양이 좋아 몇 년전 담양으로 귀농한 강성오 작가는 자신이 평소 꿈꿔왔던 작가의 꿈을 이루었으며 그동안 틈나는 대로 담양 관련 글을 써 왔다.
이번 2020담양 송순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인 ‘추월산 길라잡이’는 우리 지역의 역사인물을 발굴하고 그에 얽힌 사연과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의 역사와 사회상을 소설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작가 강성오는 필명 ‘무진’으로 완도가 고향이다.
담양으로 귀농해 원로작가 문순태 선생에게서 글쓰기를 사사했으며 <생오지 소설창작대학>을 수료했고 한라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당선(2012년), 머니투데이 경제신춘문예(2013년), 농어촌문학상(2014년), 한국해양문학상 우수상(2016년), 제10회 목포문학상 남도작가상 수상(2018년) 등의 경력과 함께 무등문예창작연구회장을 맡고 있다.
현재 본지 농촌·문화예술 분야 전문기자로도 활동 중이다.

【프롤로그】
1596년에 요절한 김덕령 장군은 대역죄인이라는 이유로 한동안 선산으로 가지 못했다.
선산이 있었는데도 멀리 떨어진 금곡동 배재마을 뒷산에 안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378년이 지난, 1974년 11월 19일 장군의 묘를 선산으로 이장했다. 이날, 장군의 생가 마을인 성촌마을(현, 성안마을) 주민 몇 분과 파는 다르지만 광산 김 씨의 후손 몇 분이 이장을 거들었다.
그때 이장에 참여했던 분이 증언했다. 장군의 몸과 머리가 분리된 흔적이 있었다고. 그는 지금도 성안마을에 살고 있다.

<제1화>
■ 1593년 8월

 심상치 않은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귀를 기울였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석굴에 등잔불을 밝혀놓고 자다가 번쩍 눈을 떴다. 등잔불이 석굴을 은은히 비추고 있었다. 바위틈에서 똑, 똑, 떨어지는 청아한 물소리가 들렸다. 밤새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자는 동안은 들리지 않았고, 시끄럽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낯선 소리가 들려온 것이었다.
이 석굴에서 숱하게 밤을 보냈지만 처음이었다. 능주는 석굴 입구로 다가가 밖을 향해 귀를 열어놓고 소리에 집중했다. 벌이 무리 지어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잘못 들었나? 다시 귀에 신경을 끌어 모으고 소리에 집중했다. 몇 번을 들어도 벌 떼의 날갯짓 소리가 틀림없었다.
  밤에는 벌이 움직이지 않는 거라고 알고 있었다. 벌통을 이동할 때도, 저녁에 시작해서 동트기 전까지 끝내는 게 일반적이었다. 아직 동도 트지 않았는데 움직이다니.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고 떼를 지어 이동하다니. 감때사나운 장수말벌의 날갯짓 소리는 아니었다. 꿀벌 소리가 분명했다.
벌 떼가 수십 마리인지, 수백 마리인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벌떼가 급하게 이동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분봉할 거라면 야밤에 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물일지라도 위험을 감지하면 본능적으로 대피하기 마련이니, 벌이 위험에 직면했는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대피 중이란 말인가.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구석구석 휘젓고 다녔다. 불이 났을지도 몰랐다. 불이 났다면 능주도 석굴을 빠져나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야 했다. 평소보다 일찍 눈을 뜬 탓에 피로가 덜 풀렸다. 몸이 묵지근해도 다시 눈을 붙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바깥부터 살펴야 했다. 능주는 젖먹이 아이처럼 바닥을 기다시피 하여 동굴 밖으로 나갔다.
 
 추월산에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고, 사위는 고요했다. 산새나 풀벌레들도 모두 잠에 빠진 듯했다. 밤늦게까지 울어대던 부엉이나, 여치, 쓰르라미 등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고즈넉한 산 중 새벽이었다. 까만 하늘에 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여명에 밀리기 전에 마지막 힘을 쓰는 듯 영롱하기 그지없었다. 금방이라도 몸으로 쏟아질 것 같았다.
심상치 않은 벌 떼 소리를 듣지 않았다면, 아름다운 새벽이라고 느끼고, 영롱한 별을 보며 아내를 상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한가하게 상상이나 하고 있을 시기가 아니다. 달은 보이지 않았다. 하현과 그믐달 사이의 포동포동한 낫 모양의 달을, 잠들기 전에 보고 잤는데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야 확보가 잘 되는 바위에 올라섰다. 고개를 왼쪽 아래로 돌려 보리암부터 살폈다. 불이 났다면 암자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해 먼저 살핀 것이다. 보리암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다. 낯익었다.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듯 더없이 평온한 모습이었다. 법당이나 요사채에서 가느다란 촛불 한 줄기마저 흘러나오지 않았다.
인시가 되어야 새벽 예불을 시작했고, 능주는 예불을 알리는 타종 소리를 듣고 일어나 일과를 준비했다. 아직 인시가 한참 남은 모양인지, 타종과 새벽기도를 준비하려는 움직임조차 감지되지 않았다.
 
 능주는 옆 바위를 향해 서른여 걸음을 걸어 바위 등에 올라섰다. 저 아래 보이는 미륵실 계곡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속인들로 매일 북적인 곳이었다. 추월산은 미륵부처님이 편안하게 누워 있는 형상이라 미륵실 계곡에서 기도하면, 신통력이 높아지고, 집안은 안녕과 평화가 이어질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미륵실 계곡은 자정이 훌쩍 넘을 때까지 곳곳에서 촛불이 일렁거렸다. 누군가가 끄지 않고 잠들었다면 초가 다 타서 불이 났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불꽃 하나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행여나 이 시간까지 징이나 꽹과리를 두드리며 기도하는 무속인 때문에 벌 떼가 놀라서 이동했을 까 싶어 미륵실 계곡으로 귀를 기울였다.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능주는 다시 자리를 이동해 산기슭이 한눈에 들어오는 바위에 올라섰다. 아련하게 보이는 구복마을에 이 새벽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샅샅이 훑었다. 마을은 그 어떤 일도 없다는 듯 납작 엎드려 잠에 취해 있었다. 안온한 전경이었다. 아니다. 왜적이 들이닥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바짝 긴장하여 몸 사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마을 사람들도 깊이 잠들지 못하고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여 귀를 기울일 것이다.

 능주는 낯선 소리에 흠칫흠칫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장면을 상상하고 도리질 쳤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희미하나마 불빛이 보일 텐데 한 줄기도 보이지 않았다. 왜적 때문에 불빛을 감추어서가 아니라 아직 아침을 지을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리라.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고요한 새벽이었다. 이 고요한 새벽에 왜 벌떼가 급히 이동할까. 여우. 삯, 늑대, 멧톹 같은 짐승들의 습격이라도 받았나? 그건 아니지 싶었다.
짐승들이 야심한 밤에 벌집을 공격했다면 그동안 한 번쯤은 이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짐승들이 굳이 오늘 이 시간까지 기다리지 않았을 것이다. 문득, 왜군의 정찰병이나 척후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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