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도 스님(조계종 담양 마하무량사)

●대한불교 조계종 포교원장·교육원장, 조계종 원로 대종사,
  중앙승가대학교 부교수 역임, 대한민국 국민훈장 ‘석류장’ 수훈

이 세상에는 많은 길이 있다.
하늘에는 천도(天道) 황도(黃道) 흑도(黑道)가 있고, 땅에는 육로(陸路) 도로(道路) 인도(人道)가 있으며, 바다에는 해로(海路) 항로(航路)가 있다. 그리고 사람 사는데는 만 팔천 개 이상의 인생의 길(직업)이 있다. 또 눈에는 눈길이 있고 귀에는 소리 길이 있으며 코에는 숨길, 발에는 발길, 손에는 손길, 마음에는 뜻길(意路)이 있다.
그 가운데 잘사는 길은 여덟 가지 바른 길(八正道)이 있다.

첫째, 바르게 잘사는 길(道)은 정견(正見)이다.
정견은 불성광명(佛性光明)을 바르게 보고 사견(邪見)이나 편견(偏見)에 빠지지 않고 바른 마음으로 세상과 자기 인생을 바로 보는 견해이다. 어찌 보면 인생은 전부가 보는 것이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 보고 코로 맡아 보고 입으로 먹어 보고 손으로 만져 보고 생각해 보는 것이 인생살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몸의 감각기관이 건강해야 마음이 건전하지 그렇지 않으면 장애인이 된다. 눈이 고장나면 봉사, 귀가 고장  나면 귀머거리 코가 고장 나면 킁킁이, 입이 고장 나면 벙어리, 발이 고장 나면 절룩발, 머리가 고장 나면 바보 인생이 되고 만다.
그런데 아무리 몸이 잘 생기고 멋이 있어도 마음이 병들면 빙신이다. 그 사람은 정신이 어리빙빙하니까. 어찌 됐든 소승 삼법인(一切皆苦·諸行無常·諸法無我)을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둘째, 바르게 잘사는 길(道)은 정사(正思)다.
견해가 바른 사람은 생각이 바를 수밖에 없다. 서양의 사상가 파스칼(Pascal)은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했다.
이 생각 저 생각 오만가지 생각이 죽 끓듯 하는 것이 중생(衆生)인데 시간적으로 보면 과거 생각은 기억이나 추억이라고 생각 억(憶)자를 쓰고, 현재 생각은 사고(思考) 사유(思惟)라고 생각 사(思)자를 쓰며, 미래 생각은 상상(想想) 이상(理想)이라고 상(想)자를 쓴다.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를 통틀어서 신념(信念) 이념(理念)이라고 념(念)자를 쓴다.
과거심도 불가득(不可得)이요, 현재심도 불가득이요, 미래심도 불가득이라고 하지만 과거의 기억이나 현재의 사고나 미래의 이상이 잘못되면 그 인생은 망치고 만다.
한 생각 잘하면 한 평생 잘살고 한 생각 잘 못되면 그 사람은 평생을 잘 못살게 된다.

셋째, 바르게 잘사는 길(道)은 정어(正語)이다.
정어는 거짓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실을 바르게 말하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말부터 시작하고 인류의 정신문화는 글에서 출발한 것이다. 말과 글은 사람의 의사(意思)를 전달하는 약속 수단이다. 말은 입에서 귀로 전달하는 소리고, 글은 손에서 눈으로 전달하는 상형(象形)이다.
말을 많이 한다고 잘하는 것이 아니고 안한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다. 할 말은 꼭 하고 안할 말은 입을 닫는 것이 좋다. 현대사회가 시끄러운 것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누구나 큰 소리로 외치기 때문이다. 옛적엔 길이 아니면 가지 말고 말이 아니면 탓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이 말이 아닌 소리를 개소리라고 한다. 고운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는가 하면 쓸데없는 소리 잘 못해서 신세 망치는 경우도 있다. 구시화문(口是禍門)이라, 세치(三寸)혀를 조심해야 한다.
모든 가정이 화목하고 사회가 화합하고 국가가 평화로우려면 모든 사람들이 바른 말로 중론(重論)을 모으고 공론(公論)을 소통(疏通)시켜서 국론(國論)을 하나로 묶어야 한다.

넷째, 바르게 잘사는 길(道)은 정업(正業)이다.
정업은 바른 행동과 행위다. 업(業)이란 까르마(Karma)라 하는데 의도적인 행위다. 우리 말 가운데 생활용어로 가장 많이 쓰는 말이 업이다.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것은 수업 또는 학업이라 하고 끝내면 졸업이라 하며 농사짓는 것은 농업, 공장을 차리면 공업, 장사하면 상업, 점포를 열면 개업, 놀면 휴업, 그만두면 폐업, 사람이 하는 짓은 무엇을 하든지 사업이고 작업이라 한다.
생각과 말과 행동이 바른 사람은 정직한 사람으로 사회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아무리 생각이 좋고 말이 좋다 하더라도 행동이 바르지 못한 사람은 결국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없다.

다섯째, 바르게 잘 사는 길(道)은 정명(正命)이다.
정명은 바른 생활로 생명을 이어 가는 바른 직업이다. 정당하지 못한 기업이나 공직생활을 해도 부정한 짓을 하면 정명(正命)이 아니다.
특히 수도생활(修道生活)을 하는 사람이 계율(戒律)을 지키지 않고 참선한다고 망상을 피운다든지 불사(佛事)를 한다고 재물과 색을 밝히는 짓은 속인보다 더 큰 죄를 짓고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질 확률이 높다. 윤회(輪廻)를 모르고 인과법(因果法)을 믿지 않는 사람은 중(僧)도 아니고 불자(佛子)도 아니다. 더욱이 스님은 자기 스스로 님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법력(法力)과 도력(道力)이 있어야 한다.

여섯째, 바르게 잘사는 길(道)은 정념(正念)이다.
바른 신념과 이념을 정념이라 한다.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에 귀의하고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닦아서 견성(見性) 성불(成佛)하겠다는 신념이 있어야 훌륭한 수도승으로 도인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신념이 없는 사람은 성공할 수 없다. 더군다나 삼계(三界)의 대도사인 완전한 사람(부처님)이 되려면 지극한 마음으로 생명을 삼보에 바치고(至心歸命) 말 그대로 확고한 신념(四弘誓願)을 가져야 한다.
믿음은 도의 근원(信爲道源)이요, 일체 모든 선근(善根)을 장양(長養) 시킨다 했다.

일곱째, 바르게 잘사는 길(道)은 정정진(正精進)이다. 정정진은 바르게 정성껏 목적을 향해 진격하는 것이다. 일반 사회인들도 노력은 성공의 어머니라고 한다. 하물며 지고지순(至高至純)한 성불(成佛)을 적당히 노력해서 되겠는가?
정진은 지극한 마음으로 정밀(精密)하게 쉴새 없이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해야 한다. 어쩌다 자기별을 좀 보고 심월(心月)이 독로(獨露)했다고 해서 보임(保任)한다는 핑계로 잠시라도 쉬면 정진하고는 심만 팔 천리나 먼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열반하시기 전 까지 제자들에게 죽을 때까지 정진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 수도(修道)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전력투구해야 성도(成道)하는 것이다.

여덟째, 바르게 잘사는 길(道)은 정정(正定)이다.
정정은 바른 선정삼매(選定三昧)다. 삼매는 정신통일의 경지로 참선하다가 정신통일이 되면 선정삼매, 독서하다가 정신일도(淨神一到)하면 간경삼매, 염불(念佛)하다가 삼매에 들어가면 염불삼매, 무슨 일을 하던지 열중하면 사사삼매(事事三昧)라 백 천 가지 삼매가 있다. 초선·이선·삼선·사선정(四禪定)을 거쳐 아라한이 되는 것이다. 정정은 팔정도의 종착역이다.

이상 여덟가지 바르게 잘사는 길(道)은 우선적으로 불지(佛智)를 얻어서 자기완성하는 수도과목(修道科目:三十七助道品) 가운데 대표적인 덕목이다.
다시 말하면, 바른 견해(正見)로 생각과 말과 행동이 바르고 바른생활(正命)을 통해서 바른 신념과 바른 정진으로 바른 선정을 얻어서 해탈하여 열반에 드는 것이 바르게 잘사는 길(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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