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등열차, 버선발, 보름달

추석 하면 연관되어 떠오르는 이미지가 귀향이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추석의 귀향만큼 마음에 강렬하게 새겨진 각인이 또 있을까. 그것은 해마다 삶의 통과의례이자 하나의 축제 같은 것이 된다. 오늘날에도 국민의 절반가량을 움직이게 하는 추석의 귀향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세 개가 있다. 그것은 70년대 서울살이에서 귀향할 때 형성된 이미지다.
 
 그 하나가 삼등열차인데, 그때 기차 중에서 제일 느린 비둘기호를 타고 서울역에서 고향을 향해 출발하는 시각은 대개 저녁 8시 무렵이었다. 차는 좌석 입석할 것 없이 이미 만원이었다. 좌석권을 가졌다 해서 계속 좌석을 차지할 수 없는 노릇이고, 입석이라서 도착할 때까지 12시간을 계속 서서 가라는 법도 없는 삼등 완행열차 안에서 나는 늘 말이 없었다.
  자욱이 담배연기를 내뿜거나 기타치고 박수치며 노래하는 사람들, 목을 메이게 하는 계란 조각을 씹거나 소주에 취해 목청을 높이는 사람들, 이곳저곳에서 화투판을 벌이는 그 와중에서도 코를 곯아대는 치들이 뒤엉킨 기차 안에서 나는 왜 늘 우울했던 것일까.
  서울살이라고 해봐야 아무 잘날 것 없는, 짜장면집이나 아파트 공사판, 영등포 방직공장이나 청계천 피혁공장에서 새벽부터 밤늦도록 노동을 파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고향에 가도 뭐 별반 펼쳐 보일 것도 없는 그 사람들이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곽재구) 모습 속에서 우수 말고 무엇을 본단 말인가.
  더구나 우리에게 돌아갈 고향은 어디에 있긴 있던 것인가. 자연과 사람과 모든 생각들이 합일을 이루던 고향은, 우리가 그곳을 떠난 순간부터 이미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씁쓸한 사실을 해마다 득달같이 변해가는 고향에서 느끼지 않던가. 
 
 그럼에도 우리는 온 밤을 하얗게 내달려 아침 8시경이면 종점역에 내린다. 다시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서 덜컹대는 시외버스에 몸을 싣고, 덜컹거리는 신작로 길을 달려 부랴부랴 집으로 향하는 마음은, 그래도 이미 창밖의 가을 물색에 흠뻑 젖어 있었다. 순금빛으로 출렁이는 들판과 둔덕에 반짝거리는 억새들, 저 멀리 마을에서 발갛게 알몸을 드러내는 감들과 피어오르는 강 안개에 두어 시간 젖다 보면 어느덧 마을 동구였다.
그곳엔 갈색으로 물들어가는 커다란 정자나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 주막집에서 새벽부터 돼지를 잡아 마을 집집이 고기를 나누고, 남은 머리와 내장을 삶아 귀향하는 사람들에게 뜨건 소주와 함께 권하던 어른들이 있었다. 그것이 내 고향의 동구풍경이었다. 
  거기서 소주 한 잔을 얻어 마시고 대밭 고샅길을 돌아 이윽고 활짝 열린 사립문 앞에 서면 그때 마루 끝에서 자식을 기다리던 부모님이 버선발로 토방에 내려선다. 버선 발, 바로 추석과 관련한 또 하나의 이미지인 버선발만 보면 왜 그다지 가슴이 아리고 아리던가.
  서울 가서 공부해서 무슨 금의환향하는 것도 아닌데, 아니 제대로 입히지도 가르치지도 못하고 자식들을 객지로 내보낸 채 이제 온통 얼굴이 논밭고랑이 되고, 무릎이 돌밭에 삽날 부딪는 소리를 내는 당신들이 무슨 탕자를 기다리는 구세주라도 된 것이어서, 그렇게 버선발로 마당을 딛으면서까지 자식을 반긴단 말인가.  
  괜히 속이 상해 건넌방으로 가서 밤 내 내려오느라 자지 못한 잠을 잠깐 청하고 있노라면, 누이들은 벌써 마루에서 송편을 만들며 그 깔깔대는 웃음을 담장 밖으로 날려 보낸다.
그러면 나도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박재삼)이 되어 방문 밖에서 벌써 진을 치는 친구들을 따라 마실을 나선다. 마을 주막집에선 벌써 윷판과 술판이 흐드러지게 벌어져 있었다. 나는 술판 쪽에 끼어 동무들과 함께 쓰라리기만 하는 도회의 삶의 애환들을 영탄조로 읊어대곤 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열나흘 달은 마을을 대낮처럼 밝혔다. 어머니의 품 같은 달이었다.

  피붙이들 돌아와
  안방 건넌방 마루에까지 시끌벅적할 때
  큰 정지 검은 가마솥에
  활활 장작불 메워
  새하얀 쌀밥 가득 짓는 어머니,
  그 함박웃음 울 넘지 않으면
  얼마나 쓸쓸하리
  울 넘어 솟아오르는
  저 꽉 찬 달
  저 넉넉한 달

  저 달 씻는 싱싱한 바람자락과
  마당 가득 풀벌레 울음 있어
  천리만리 더욱 트인
  오늘밤 어머니의 달
                                                                 -고재종 「만월」

  마을회관에서는 그때부터 온 젊은이들이 나와서 콩쿨대회를 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악을 쓰며 노래를 하고, 한껏 보릿대춤을 추다가 끄억끄억 울어대고, 술에 만취하여 회관 담벼락에 토악질을 해대곤 했다. 그래도 그 대동마당이 얼마나 좋던가.
  콩쿨 잔치도 거의 기울 무렵 나는 몰래 빠져나와 뒷등을 지나 마을방죽가에 나앉는다. 그때 달은 이미 호수에 빠져 어느새 수월(水月)이 된다. 그 수월이 관음보살이 되는 것을 본 것은 언젠가 어떤 미술책 속의 ‘수월관음도’에서였다.
  교교한 달빛이 비치는 물가의 동굴 안에 관음보살이 앉아 계시는데, 관음보살의 광배는 커다란 원이어서 그것이 달 같고, 물에 비친 달은 또 관음보살 같은, 그런 금빛 찬란한 고요지경! 그 수월관음을 앞에 두고 진리를 찾는 선재동자처럼 보살의 길을 묻고 설법을 청하고 싶던 귀향이 있어 그나마 안심이던가.
 
 삼등열차도 버선발도 사라지고, 코로나19 바이러스가 2,500만명의 귀향을 막아선 오늘에도, 손 한번 대지 않고 마음을 쓸어대던 그 수월관음의 이미지는 내가 어디에 있건 나의 귀향을 재촉한다. 그 귀향은 이미 사라진 고향이 아닌 삶과 존재의 궁극적인 고향 같은 곳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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