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고필(문화기획가, 향토사전문책방 이목구심서 대표)

인류세 (Anthropocene)와 담양

읍내로 입주한지 1년하고도 3개월이 되었다. 이곳에 오고서부터 매일 하루가 달라졌다. 광주로부터 출근하는 길의 길가 풍경이 그렇고, 만나고 의논하는 사람들도 이전과는 딴판이다. 이런 날들이 행복한데 가끔은 불안한 생각이 치밀어 든다. 나만 이렇게 유유자적 하는 것은 아닌지 라는 미안함 때문이다. 그렇다고 딱히 뭘 하자고 하는 것은 아니면서 어쩌면 사치스러운 투정을 부리는지도 모른다. 코로나19까지 겹쳐서 오갈데 없으니 손에 잡히는 것은 책이고 하는 일은 원고 쓰는 것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런 어느 날 광주에서 10월에 개막하는 아시아문화포럼의 발제문을 받았다. 문화의 위기에 대한 대응을 논하는 대회인데 그곳에 인류세라고 하는 말이 쓰여져 있었다. 다소 생소한 이 단어를 그냥 유추해 보았을 때 인류가 지불해야 할 세금이 아닌가 싶어졌다. 오늘같은 팬데믹 시기에 그간 지구로부터 모든 것을 거져 가져다 썼으니 그에 상응한 댓가를 지불해야 하지 않는가 라는 나만의 생각을 가지다 얼른 네이버로 검색을 해 보았다. 인류세는 그게 아니었다. 지구에 생명이 존재하면서 변화해온 과정을 세와 기로 나누고 있었다. 쥬라기, 백악기 같은 것과 홍적세, 충적세 같은 것이 그에 해당 되었다. 그런 세와 기를 거치면서 우리 인류는 충적세의 지구상에 지존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구가 생성된 이래 가장 높은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가장 높은 온도, 가장 이상한 기후 변화, 빙하의 해빙, 해수면의 상승, 절멸하는 생물종의 급증 이라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그래서 노밸화학상을 받은 크뤼천은 2001년 지금의 시대를 신생대 4기 충적세 이후라고 하지 말고 인간이 자연에 간섭함으로서 재앙을 지구의 변화와 인류의 절멸에 이르게 할 시기인 인류세의 시기라고 부르자고 한 것이다.
물론 이 용어에 모두가 동의하고 공감하지는 않는 상황이지만,  지질학이나 해양학 등에서는 일부 수용하고 있다. 지구의 창조 이래 누적된 역사만 보더라도 이렇게 인류가 지구에 위해를 가하던 시대가 있었던가 싶은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일일 것이다.

나의 경험을 빌리자면 중학교 3학년때 일이다. 가마골에 야영을 갔는데 그때 한봉보호구역이라는 안내판을 본적이 있었다. 그런 말이 너무 신기해서 기억해 두었다. 대체 왜 벌을 보호하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야생화들이 지천인 이 산골에 보호를 받아야 할 이유를 잘 모르다 대학에 다니면서 어느 책에서 한봉과 양봉이 만나면 양봉이 한봉을 공격하여 죽이고 꿀을 빼앗아 가는데, 한봉은 저항하기 위해 침을 쏘면 그것으로 목숨을 잃는데 반해 양봉은 침을 쏘아도 다시 재사용이 가능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쓰여 있었다. 아. 그곳은 양봉이 들어와서는 안되기 때문이라고 여겼는데, 시간이 흐른후 아인쉬타인의 지구의 종말을 이야기한 “이 지구상에 벌과 나비가 없다면 인류는 멸망할 것이다”라는 말을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 어느 겨울 딸기 농사를 짓는 친구의 비닐하우스에서 벌들이 없어서 직접 인공수정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런 시간의 간극이 20년이었다. 20년만에 나는 이질적인 환경이 생태를 이렇듯 교란하고 자연의 순환질서를 쉽게 회복하지 못한다는 점을 직접 알게 된 것이다.

인류의 편리함을 가져온 산업혁명의 시대부터가 인류세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고 농사를 본격적으로 짓기 시작한 신석기 시대 부터라고 하는 이들도 있고, 인류가 등장한 그때부터가 인류세의 시작이라고하는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는 가운데, 그것이 어느 때 부터인지가 내게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예컨대, 습지였던 곳, 야생의 초원이나 산록이었던 곳에 생존을 위해 불을 지르고 개간을 시작하면서 우리가 보지 못했던 생물들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거나 그들의 영토를 잃고 사라져 갔다. 지금 지구상에 만나는 생물은 처음 인류가 등장할때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는 연구도 있다. 그렇다면 이건 심상치 않은 일이다. 코로나19가 발병해 우리 옆으로 바짝 다가오면서 모두들 긴장하고 K-방역의 착한 이행자로서 역할을 하면서 맑아진 하늘, 차없는 거리, 이동의 제한으로 회복한 예전 모습의 마을 등에는 찬사를 보내면서 정작 내가 지구를 위해 실천하는 것이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인류의 위기 앞에서 인류세를 정식으로 도입할 것인지 아닌지는 불명확하지만 적어도 우리 모두는 그간의 편리함을 제공해 준 지구에게 감사해야 하고, 혹시 내가 지구에 어떤 피해를 줬는지도 고려해 봐야 한다. 생태도시를 표방하고 일찌감치 환경적으로 우수한 명소를 만들었던 담양이지만 그것이 단지 관광매력물로 소비를 자극하여 지역경제를 살리는 기제로만 이용되었다면 이제 한발 먼저 나가면 좋겠다. 1회용품 안 쓰는 지역 담양의 관광지와 서비스 업체, 좋은 환경을 즐겼다면 그것이 지속가능하도록 기부하고 기여하는 담양, 쓰레기 제로 관광지 만들기 같은 어렵고도 힘든 일이지만 나부터 지구에 미안해하고 보존하는데 작게나마 도움이 되는 실천 운동을 펼쳤으면 좋겠다. 인류세라는 말이 더 일상화 되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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