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승 ‘Sense of Natura’展

태양이 담긴 이슬을 머금은 풀은 흙을 딛고 사는 짐승의 양분이 된다. 그 몸에 담긴 순환의 생명을 사람이 섭취하며 살아간다. 태양에서 시작된 에너지는 끝없는 과정에 불가피한 죽음이라는 매듭을 이어가며 무신경하고 경이로운 생명의 고리를 만들어낸다. 작가는 죽음이 삶의 끝자락이 아닌 지구를 채우고 있는 이야기들이 지닌 긴 시간속의 일부분이라 여긴다. 권혜승 ‘Sense of Natura’展은 2020. 10. 7 (수) ~ 2020. 10. 13 (화)까지 갤러리 DOS에서 펼쳐진다.

권혜승 ‘Sense of Natura’展 홍보 포스터
권혜승 ‘Sense of Natura’展 홍보 포스터

권혜승은 도시와 멀리 떨어져 있는 탄성을 자아내는 대자연의 광경 뿐 아니라 동시대 사람들이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는 평범한 사물과 풍경의 모습을 빌려 생명이 지닌 순환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화면은 푸른색과 붉은색 계열로 명확히 구분되는 동시에 자극적이거나 작위적이지 않은 색의 채도로 인해 차분하게 어우러진다.

자연풍경을 주로 담아낸 작품은 푸른색이 지배적인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화면에 주입한 붉은색은 어스름이 만들어낸 그림자처럼 생경하지만 작가가 만든 화면 속의 세계가 지녀야 마땅한 필수적인 요소처럼 녹아든다. 모든 생명이 태어남과 동시에 공평하게 소유하는 죽음은 금빛 석양도 지워버리는 밤하늘처럼 짙은 장막 너머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권혜승이 그려낸 세상은 태양아래 열기를 머금은 눈을 찌르는 색이 아닌 달빛에 빛나는 차분하고 고요한 색감을 지니고 있다. 자연에서 마주하게 되는 익숙한 사물이지만 앞서 이야기한 독특한 분위기로 인해 처음 먹어보는 야생과일을 맛보는 신비로움이 느껴진다.

작가가 바라본 자연은 땅과 물에서 비롯된 모든 생명의 보금자리지만 호의도 적의도 보이지 않는 무심한 자연이다. 화면을 채우고 있는 사물은 특징이 강조된 상태로 세밀하게 묘사되었다. 실제 색을 개의치 않은 밀도 높은 표현은 군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생물을 연상시킬 정도로 기괴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삶과 죽음이라는 가깝고도 먼 이야기를 그렸지만 작가의 의문은 인생에 대한 거창한 철학이 아니다. 작품은 자연인 동시에 주제가 무색할 정도로 현실에 가까운 세속이기도 하다. 작가가 그려낸 그림은 눈을 감아야 보이는 어둠이 지닌 다채로운 색으로 그려졌지만 고개를 돌려야 보이는 관계에 대한 이미지이기도 하다. 권혜승이 던지는 질문은 평소 이야기하기 꺼려지는 먼 순간을 담고 있지만 사소하고도 소중한 순간과 닮았기에 관객들은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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