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고필(문화기획가, 향토사전문책방 이목구심서 대표)

자연과의 상생을 부여해준 관방제림에서

인간의 입장에서 가장 종잡을 수 없는 것이 자연의 일이다. 자연에 의탁하여 살면서도 사실 자연이 우리와 공생한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산다. 인간의 무지와 무기력이 여기서 발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번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이야기만 들었던 매트릭스라는 영화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인간을 분류하다가 영감을 얻었지. 너희는 포유류가 아니었어. 지구상의 모든 포유류들은 본능적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데 인간들은 안그래. 한 지역에서 번식을 하고 모든 자연자원을 소모해 버리지. 너희의 유일한 생존방식은 다른 곳으로 이동해 버리지. 이 지구상에는 똑 같은 방식을 따르는 유기체가 또 하나 있지. 그게 뭔지 아니. 바이러스야. 인간들이라는 존재는 질병이야. 지구의 암이지”
영화의 대사에서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이 대화는 오늘 코로나19로 인해 제한되고 고통받게 되는 원인들이 인과응보에 있다는 점을 20여년전에 설파하고 있었다.

담양 가마골을 시원으로 삼백오십리의 물길을 유장하게 흘러가는 영산강의 물줄기가 기세등등하게 읍내를 넘보던 날, 한편으로 나는 관방제림을 쌓았던 부사 성이성이 떠올랐다.
자연의 일에 견주어 큰 힘을 발휘할 수 없을 것 같은 미약한 인간이 자연을 예측하고 거기 대비하여 꼼꼼하게 준비하면 서로의 공존관계가 깨지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 것이다.
읍내의 곳곳이 길이 막히고, 침수되고, 도로의 차단벽이 물을 저장하는 공간이 되어버린 아비규환의 날, 안타까운 마음으로 책방에 들어서면도 그렇게 느꼈다. 그나마 저 제방이 있어서 더 큰 참사를 막아냈다는 사실을 고마워했다.
사실 담양의 지형이 행주지형이라고 해서 물에 떠내려가는 형국이니 이를 막기 위해서 돛대인 석당간을 세우고, 이를 부리는 석인상을 배치한 선인들의 풍수설은 그냥 낭설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던 것이기도 하다.
영산강의 본류대에 위치한 고장이다 보니 강우가 쏟아지면 지천의 물들이 본류로 진입하며 수량이 급격히 늘고 유속 또한 강해지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이런 점을 경험과 지혜로 알고 있는 지역민들과 담양의 목민관 중 부사 성이성은 방관하지 않았다. 인조28년인 1648년 관민의 힘을 모아 제방을 쌓고 나무를 식재했던 것이다. 이 시작이 오늘 담양을 건사하게 만든 저력이기도 할 것이다.

며칠전 서울에서 여행을 온 지인가족과 관방제림을 걸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대개 관에서 하는 일들 중 큰 공사는 관청을 짓거나 성곽을 짓고 보수하는 것인데 이렇게 제방을 쌓고 나무를 식재하는 경우는 우리나라에는 흔하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여기 관방제림이고, 함양의 상림이 있죠. 상림은 신라때 고운 최치원이 읍내로 오는 물길을 막고자 조성했다고 하니 담양과 더불어 명확하게 수해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그 기능은 그것대로 존재하면서 한편으로는 이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길을 선물해 주기까지 했습니다. 작년 말 경북 봉화를 지나가는데 관광안내판에 ‘이몽룡 생가’ 라는 글이 있어 의아하게 보다가 연신 보이기에 생각을 더듬어 보니 바로 담양부사 성이성이 봉화 사람이고, 성이성의 행로가 남원과 닿아 있는데다 그 시기가 춘향과의 연분이 쌓였던 것과 일치하고, 심지어 춘향이의 성씨가 성이라는 점까지 들어봤을 때 성이성이 성춘향과 로맨스가 있었다는 점에서 그분의 이름을 대면 사람들이 잘 모르니 아예 작심하고 이몽룡 생가라고 하지 않았을까 라는 지점에 도달했지요. 지금 서먹해져 다시 되돌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경상도와 전라도가 결코 그런 관계가 아니었음도 확인된 것이죠.
하여튼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또 경북 칠곡에는 ‘담양담’ 이라는 흙과 돌을 섞어 쌓은 담이 있는데, 석담 이윤우 라는 분이 담양에서 선정을 베풀고 청렴하기 그지없어 그 고마움에 전별의 답례를 하려 하니 거절하자 주민들이 칠곡까지 찾아가서 그 집의 추수를 도와주고 무너진 담장을 담양 방식으로 쌓아 드렸다는 것입니다. 이게 담양사람들의 인정이고 의리 아니겠습니까.”

나도 모르게 이렇게 내 고향의 두둑한 인심과 정을 자랑하며 한편으로는 이를 떠받들어 공생하고자 했던 목민관들의 치적까지 곁들여 이야기를 하는데 힘이 저절로 솟구치는 경험을 하였다.
인문과 생태문화도시를 표방하고 그것을 향해 차분하게 걸어가는 현싯점에서 나는 담양이 갖는 인문적 토양에는 이곳만이 가지고 있는 인문지리적 특성과 이를 바탕으로 성장하고 도모했던 수많은 인물들의 친연적 관계망이 호명되고 호출되어 함께 자리해야 한다는 점을 제안하고 싶다.
누정을 찾으면 현판과 주련에 등장하는 글의 주인공들이 생각하는 담양과 담양사람들의 면면들은 학문과 문장에서 결코 뒤처지지 않으며 강호가도의 주인공이었으며, 자연을 거슬리며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상하지 않게 하였다는 점은 오늘 인류가 추구하고자 하는 지구와 공존하며 지속가능한 삶을 살아가자는 전략과 진즉 상통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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