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뉴스는 지역사회와 더욱 가깝고 밀착된 마을뉴스, 동네뉴스, 골목뉴스 서비스 제공을 위해 ‘뚤레뚤레 동네한바퀴’ 코너를 신설하고 마을의 자랑거리와 소식, 주민들의 소소한 일상을 소개합니다. 참여를 희망하는 마을은 우선적으로 취재, 소개해 드립니다.(취재문의 : 담양뉴스 381-8338)/편집자 주

▲마을 어르신들과 부위원장님
▲마을 어르신들과 부위원장님

무정로를 타고 대덕면에서 담양읍을 오가는 길 오른편에 눈길을 끄는 마을이 있다. 밝은 황토색 담장과 잘 정돈된 지붕들이 예쁘게 보여서다. 어떤 마을일까? 이 마을의 옛 명칭은 푸른 돌이 많이 나온다고 해서 청석리(靑石里), 지금은 평화로운 땅이라는 의미로 평지리(平地里)다.

처음 만난 마을주민에게 “안녕하세요. 마을이 깨끗하네요. 어떻게 이렇게 잘 정돈하신 거예요?”라고 했더니, “저는 여기서 태어나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했어요. 지금은 퇴직하고 귀향했죠. 마을에 대해 저도 어느 정도 알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장님을 만나면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을 것 같네요.”라며 평지마을 맞은편 언덕집을 가리켰다.
가보니 ‘돌담집’이라는 흑염소 전문 식당이었다. 이장님은 마을 일 보러 면사무소에 가셨고 사모님이 계셨다.

“언제부터 식당을 운영하시는 거예요?”
“5년 전부터요.”
“사모님 분위기가 경영자로 오래된 분 같아요.”
“저는 이곳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 5년 살고 도시로 갔어요. 제 꿈은 공무원 은퇴 후에 도시에서 공부도 더 하고 시도 쓰면서 사는 것이었죠. 그런데 조기 퇴직하고 전원생활을 하겠노라고 내려갔던 남편이 아팠어요. 어쩔 수 없이 일단 제 꿈을 접고 내려왔지요. 요리는 평소에도 관심이 있어 해오던 터라 남편이 키우는 흑염소로 식당을 열게 된 거죠.”
“고생 많으셨겠어요. 제일 힘들었던 때가 언제인가요?”
“오래전 일이지만 도시에서 살고 싶었던 나와 전원생활을 하고 싶어 하는 남편과 의견충돌이 힘들었죠. 지금은 문화생활이며 여러 가지 것들이 대도시와 비슷해서 살기 좋아요.”
“이곳에 와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요?”
“사투리예요. 손님이 ‘솔지 좀 더 주세요.’ ‘생지 더 줄 수 있어요?’라고 해서 못 알아듣고 어리둥절했죠.”

▲담장꾸미기로 넓고 깨끗해진 마을 안길
▲담장꾸미기로 넓고 깨끗해진 마을 안길

이야기 중에 이장님이 오셨다.
“두 분이 평지마을 이주민으로서 몇 년 살아본 소회가 있다면요?”
“시골 생활은 상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어요. 평생 정신노동을 하다가 하나에서 열까지 육체노동을 해야 하는 것이 힘들었어요. 또 도시에서는 사생활이 보장되지만, 시골은 열린 공간이면서 한 집 건너 한 집이 다 연결되어 있어서 조심스럽죠. 하지만 우리 마을은 텃새가 없어 좋아요.”
마을 정비사업에 대해 여쭤보니 정정길 전 이장님을 소개해 주었다. 마침 마을 정자 용화정에 전 이장님·부위원장님·마을주민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정자 이름이 독특해서 ‘용화정(龍花亭)’의 뜻을 물으니 ‘龍’자는 마을 앞 용굴산(=금산)에 용이 사는 굴, 즉 용 굴이 있는데 옛날에는 그곳에서 기우제를 지내곤 했다. ‘花’자는 마을 뒤에 화봉산(花峰山)이 있어서라고 했다.

▲마을정자 '용화정'
▲마을정자 '용화정'

“위원장님 고생 많이 하셨어요. 마을사업이 궁금한데요.”
“고생은 무슨 고생요. 마을주민들이 애를 많이 썼죠. 2015년 박근혜 정부 때 제2차 새마을 운동으로 전국 54개, 전라도에서는 8개 마을이 선정되었죠. 26억을 지원받아 슬레이트 완전제거·빈집철거·담장개량·마을안길 3·5 미터 이상으로 넓히기를 목표로 3년간 진행되었어요. 이장 겸 위원장·부위원장·추진위원 13명·마을주민들이 일심동체가 되었죠.”
“앞으로 바라는 일이 있다면요?”
“마을에 이주민이 30호 정도 돼요. 그분들이 갖고 있는 재능으로 마을을 이끌고 도와주면, 마을주민들도 잘 따를 것인데. . . 서로 소통의 방법을 찾아서 마을발전의 밑거름이 되면 좋겠어요.”
옆에서 얘기 나누고 계신 대전댁·수북댁·감바우댁·물안실댁 어르신들께 여쭤봤다.
“오늘 무슨 날이어서 모이신 거예요?”
“아니 우리는 이렇게 맨당 노요. 농사는 30평 정도 소일거리로 하고.”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다 여든 넘었제.”
“6~70대 같이 보여요.”
다 같이 함박웃음. 하~하~하~. . . 연세에 맞는 적당한 노동을 하셔서인지 피부도 곱고 인상도 다 좋았다.
“마을 정비하고 나니까 어때요?”
“깨끗해져서 좋고·길이 넓어 차가 다닐 수 있어 자식들이 좋아하제. 또 65세 이상 독거노인들은 70대와 80대를 짝꿍으로 정해 점심 식사 당번을 해서 같이 밥해 먹응께 맛나고 다 좋아.”
“400년 넘은 보호수가 있다면서요?”
“내가 안내해드릴게요.”
“아니요. 저 혼자 가도 돼요. 위치만 알려주시면요.”

▲400년 넘은 보호수
▲400년 넘은 보호수

박생두 부위원장님께서 기꺼이 오셔서 보호수로 나를 데려갔고 또한 자세한 설명도 해주셨다.
“부위원장님, 평지리는 다른 마을과 달리 집집마다 텃밭 농사를 많이 하시는데 왜죠?”
“빈집을 철거한 자리에 농사를 짓는 거예요.”
보호수를 감상하고 나서 마을 정자 옆 밭에 심어져 있는 동남아에서 즐겨 먹는 향기로운 채소10여 가지를 보았다. 나는 평소 향신료를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대부분 내가 먹어본 채소였다. 누가 심었을까 궁금했다. 물어서 그 댁에 가보니 시어머니가 계셨다.
“정자 옆 밭에 외국 채소 보고 왔어요.”
“응 우리 며느리가 여기저기 장에 가서 팔지라우.”
“열심히 사시는데 한 번 만나서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아적에 일찍 나가서 저녁에 늦게 온다요.”
“아이들은 어르신이 봐주세요?”
“응 손주 둘 내가 보제.”
나는 오래전 외국 생활 8년 경험한 입장에서, 며느리를 꼭 만나서 응원 해주고 아이들도 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 채 마을을 나왔다./ 양홍숙 군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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