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토정보공사 손명훈 과장
한국국토정보공사 손명훈 과장

우리 집은 매년 새해가 시작되는 날, 가족들이 둘러앉아 그해 목표를 각자 5가지 정도 세운다. 자격증 취득은 나의 단골 목표 중 하나다. 덕분에 대학생 때부터 꾸준히 따온 자격증이 12개다. 회사 업무에 필요한 지적측량·공간 정보 관련 자격증부터, 호기심에 취득한 스쿠버다이빙 자격증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올해는‘브랜드 관리사 3급’에 도전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기술 직렬이 대부분인 우리 조직에서 흔치 않는 홍보담당자로서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막상 공부를 시작하려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관련 서적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개설된 지 얼마 안 된 민간자격증이어서 그런듯했다. 하는 수없이 취득 후기를 참고해 자격증 발급처에서 제공하는 이론 집과 기출문제 위주로 공부했다. 약 2주 정도 공부하고 시험을 쳤고, 어렵지 않게 합격했다. 내 인생 13번째 자격증이었다. 하지만 다른 자격증을 취득할 때 느꼈던 성취감이나 뿌듯함은 들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2주 만에 벼락치기로 딴 자격증을 내놓기가 머쓱한 느낌이 들었다. ‘자격증은 취득했지만 그에 걸맞은 자격과 실력을 내가 갖췄나’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2020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등록된 민간자격증 종류는 무려 36,624개에 달한다. 국가 기술자격증 542개를 포함하면 우리나라에서만 발급되는 자격증 종류가 약 4만 종에 육박하는 것이다. 가히 대한민국은 자격증 천국이다. 1997년 자격기본법 제정 이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민간자격증 때문이겠지만, 갈수록 치열해지는 취업 문턱을 넘기 위해 이력서에 한 줄이라고 더 쓰고 싶은 취업 준비생들의 안타까운 현실도 한몫 했을 것이다.

갈수록 좁아지는 취업 문제로 요즘 취업준비생들에게 자격증은 직무수행능력 수준에 따라 부여되는 증표가 아니라 취업을 위한 스펙으로만 여겨지는 듯하다. 취업에 성공한 사회 초년생 중에도 다양한 자격증은 땄지만 실무적인 소양은 부족한 신입사원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OA 자격증을 다수 소지하고 있지만 기본적인 문서 작성에 대한 훈련이 안 돼 있는 신입 직원도 있다. 반면 관련 자격증은 없지만, OA 관련해서 누구보다 뛰어나게 업무를 처리하는 직원도 있다. 조직에서는 당연히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욱 인정받고 보상받는다.

기업들이 자격증 취득여 무를 묻는 것은 경쟁력 있는 인재를 찾기 위해서다. 하지만 좁아진 취업문 덕분에 스펙 경쟁이 심화돼 새로운 방식의 채용이 시도되고 있다. 1,700만 명이 가입한 모바일 금융 서비스 ‘토스’는 얼마 전 첫 공개채용을 했다. 입사조건은 자격증, 어학점수와 같은 스펙이 아닌 실무능력이었다. 그래서 서류전형을 없애고 코딩 테스트만으로 신입사원을 채용했다. 필자가 속해 있는 한국국토정보 공사(LX)도 2013년부터 공공기관 최초로 NCS(국가직무능력표준)을 도입했다. 불필요한 스펙 대신 직무에 필요한 역량을 평가하기 위해서 채용 방식도 블라인드 채용으로 바꿨다. 그 결과 LX는 2015년 직무능력 중심 채용제도 최우수 기관에 선정, 기획재정부 장관상을 받았다.

자격증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자격증을 따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 그 능력과 자질을 갖추는 게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취득 이후에라도 해당 분야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노력이 없다면 자격증은 단지 자기과시를 위한 쇼윈도에 불과하다. ‘자격증’이 아닌 ‘자격’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앞으로 새해의 목표에는‘새로운 자격 갖추기’를 적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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