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고필(문화기획가, 향토사전문책방 이목구심서 대표)

지역문화진흥법에 의해 2023년까지 전국에서 30개의 자치단체를 문화도시로 지정하게 되어 있다. 5년간 200억원의 예산이 지원되는 이 사업은 그간의 접근 방식이 건물을 짓고 설비를 들여놓는 의례적인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발의한 각종의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하며 문화력을 높이는데 있다. 거기에 다양한 세대와 계층의 삶을 존중하며, 공동체의 문화를 일구는 자율성과 창의성과 다양성에 근거한 사업을 요구한다.

전라남도만 해도 준비하고 있는 자치단체가 목포와 여수, 나주, 고흥, 광양 그리고 담양이 올해 예비도시 지정 신청을 할 예정이다. 2004년 광주가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 출발하게 되면서 국내에는 문화도시에 대한 논의가 꽤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와 더불어 경주와 전주, 공주와 부여 등이 역사와 전통의 문화도시로서 부상되며 사업을 시행해 왔다.

하지만 이런 도시를 지칭하는 용어에 대해 문제제기들이 많았다. 모든 도시가 더불어 문화도시가 되어야 하지 어떤 특정한 곳만 문화도시가 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과거 예술장르만을 문화로 여기던 시대와는 정말 많은 변화가 왔다. 요셉 보이스의 말처럼 모든 사람은 예술가라고 하는 것이 타당한 시절이 도래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에 광주는 문화중심도시 혹은 문화수도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더 많은 질책을 받기도 했다. 어떻게 문화에 중심이 있느냐는 질문에 쉬이 답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까지도 야기된 것이다.

이렇게 십수년이 흐르면서 일상의 문화화와 생활문화 등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고 정부의 재정 지원도 그쪽으로 자연스럽게 쏟아져 왔다. 그만큼 삶의 질이 중요시 되는 시대로 전환이 되어 온 것이다. 그런면에서 이제 문화도시를 지정하여 보다 근원적으로 문화를 중심에 두고 사고하고 행동하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이 문화도시의 비전이다. 이런 비전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그 동안 생산활동과 생계에만 전념해오느라 문화향유나 창작은 꿈도 꾸어 보지 못한 분들에게 공유지를 제공하고, 논의 테이블을 만들고, 하고 싶은 것들을 스스로 해 보실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이 문화도시로 가는 첫 걸음이다.

담양은 이 분야에 대한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공예거리를 만들면서 진행된 사업이나, 해동문화예술촌을 조성하면서, 천변리의 정미소를 정비하면서 담양문화재단과 담양문화원이 묵묵히 수행해왔다. 더불어 죽녹원 옆 대담미술관에서도 다양한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주민과 함께하는 벽화와 글쓰기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해 온 것도 값진 의미를 지닌다. 서원마을에서는 빈집의 공간을 마을의 공동체 자금을 활용하여 작가들을 초대하여 레지던스 공간으로 제공하며 창작 예술촌으로 가꿔오는 사업을 십여년째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누군가 주목하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을 사업들이다. ‘우공이산’ 이라는 말이 딱 맞는 경우다.

우리는 늘 화려함이나 거대함에 전도되는 삶을 경험했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것이나 농촌사회의 해체라는 아픔으로 겪은 산업사회로의 진입이 그런 것이었다. 그런 사이에 개별적 자아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배려는 다 개인의 탓으로 몰아버린 사회적 경험을 해 왔다. 하지만 산업사회에서 인간의 소외와 공동체의 소멸과 지방의 몰락이라는 쓰디쓴 아픔을 함께 겪어왔고 이제는 더 이상 그래서는 안된다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게 되어 있다. 사회안전망이 필요하고, 거기에 더해 문화적 안전망까지 이야기 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문화를 소비재로 보는 시각이나 특정인의 전유물로 인식하는 태도가 이제는 많은 부분에서 개선되어 있고, 담양은 그것을 앞서 실천하고 있다는 점이 앞서 열거한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나타난다. 이제 문화도시의 지정을 위해 지원서를 상재하는 마당에 힘을 보태는 말씀을 몇가지 더 하자면 이렇다.

그간 공공에서 해 왔던 사업들에 대한 복기와 정리를 하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그 테이블에서 경험했던 소중한 것들을 다시 확인하고, 그때 못다한 것들, 오늘 지속해야 할 것들을 파악해서 동력을 부여해야 한다. 공방거리의 예술인들이 얼나마 애타게 그 자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를 확인해 보시라.
두 번째는 지역의 예술인들은 조직속에 계신분과 소속되지 않은 분들로 존재한다. 이분들이 헌데 섞이지 않는다면 따로라도 테이블을 만들어야 한다. 이분들에게도 그간 자부심 넘쳤던 일들과 아쉬운 일들, 하고 싶은 일들을 다 경청하고 차분히 할 일들을 찾아내야 한다.
세 번째는 이주 주민분들을 만나는 일에 서둘러야한다. 담양이 좋아서 오신 분들, 창작을 위해서 오신 분들, 만사가 귀찮아서 오신 분들 등등 다양한 분들이지만 선산 지키는 소나무 못지 않게 이분들이 앞으로 선산 지키실 분이라는 것을 명쾌하게 인식해고 환대의 분위기와 하실 일들을 찾아 드려야 한다.

‘해불양수’ 라고 했다. 바다가 물을 받아 들이면서 맑은 물만 골라서 받지 않는다. 모든 물을 다 담아서 대양을 이루며 더 맑고 빛나는 바다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문화도시 담양의 정신은 대쪽 같은 선비정신도 있지만 영산강의 본류대 처럼 모든 지천의 물을 받아들이며 큰 강을 이룬다는 점, 그간 챙기지 못하고 못 뵈었던 분들, 소원했던 분들을 다시 만나고 시작하는 것, 10월까지는 행정이고, 문화재단이고, 지역의 리더들이 해 주셔야 할 과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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