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DOS ‘허무의 페르소나’ 展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목소리가 필요하다. 환경과 타인을 향해 뿜어내는 소리는 소통을 이루어내고 서로가 원하는 바를 빠르게 전달하지만 충돌과 갈등을 동반하기도 한다. 잠시 몸 밖의 무언가에 서렸다 한들 곧 사라지고 의도와 의지에 관계없이 누군가의 들숨이 될 수도 있다. 2020년 7월 8일부터 14일까지 윤지하가 이야기하는 공허와 허무는 세상과 타인이 아닌 자신을 향한 작품전이 열린다.

윤지하 페르소나 전시 작품 모음사진
윤지하 페르소나 전시 작품 모음사진

허무에 대한 생각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게 화면에는 지극히 평범하거나 때로는 극적인 삶이 가지고 있는 세속적인 광경이 그려져 있다. 색의 사용이 최대한 절제된 이미지는 앞서 이야기한 구체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음에도 종이에 스민 먹과 건조하게 묻은 콩테의 텁텁한 효과로 희뿌연 연기처럼 부유하는 듯 보인다. 손을 휘저으면 일그러지고 사라질 듯 옅은 이미지는 알 수 없는 표정의 인물이 지닌 저마다의 대단하거나 사소한 고뇌처럼 고요하다.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무신경하고 누추한 표현으로 미묘하게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지닌 화면 속 광경은 이미 일어나거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수많은 이야기로 가득한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의 눈에 비추어진 세상이기도 하다. 최선을 다해 소극적으로 필요한 정도만 그려진 얼굴에 대한 궁금증은 어쩌면 화면에 보이는 상황이나 인물이 지닌 이야기에 호기심을 갖는 관객의 습관적인 사고이자 타인의 시선을 크게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관계가 지닌 적극성에 길들여진 감상이기도 하다. 얼굴의 정체는 앞서 이야기한 시선으로 인해 나란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지어지는 당사자이자 타인의 표정일 수도 있다.

달빛이 내리는 밤에 춤을 추는 모습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찰이 만들어낸 무거운 분위기를 해소하듯 무대의 장면처럼 드라마틱하게 그려져 있다. 실제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어느 방향에서는 우스꽝스럽게 보이기까지 하는 몇몇 이미지들은 작품들이 전체적으로 지닌 진중한 분위기에 모순을 이끌어내며 공간을 풍부하게 만든다. 타인에 대한 시선에는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담겨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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