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진 ‘솟아나는 모양’展

익숙한 풍경에서 편안함이 느껴진다. 매일같이 시야를 스치고 지나가지만 특별할 것도 대단한 것도 없다. 원래 그러했던 듯 당연히 있어온 광경을 구성하고 있는 크고 작은 사물들은 느끼지 못하고 지나쳐온 시간의 틈에서 예측하기 쉬운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고 내일도 그러할 것이다. 작가가 바라본 식물들로 채워진 공간은 단단하게 각지고 반복되는 도시의 여백마다 되풀이된다. 머리카락도 흔들지 못하는 거리의 미약한 바람처럼 시원하지도 않고 따분하지만 두 걸음만 멈추고 고개를 조금 숙여 들여다보면 평범한 흙이 지닌 섬세한 온도와 그 속을 가르며 솟아오른 에너지와 고요하게 치열한 생명력이 있다.

김수진 ‘솟아나는 모양’展 포스터
김수진 ‘솟아나는 모양’展 포스터

정원과 공원을 보며 누군가는 자연을 흉내낸 그저 인공으로 다듬은 도시의 장식물이라 따갑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김수진이 바라본 도심 속의 작은 자연은 생명을 지닌 존재가 마땅히 바라고 매력을 느끼는 평범한 순간이다. 특별한 사건이 없는 일상의 평안처럼 작품역시 무겁지 않게 그려졌다. 대상을 정교하게 재현하기 위해 혼합된 색이 지니는 혼탁함 없이 직관적이고 빠르지만 섬세하게 골라진 높은 채도의 색은 생명을 가득 채운다. 그 안에는 사람의 눈에 들어올 수 있는 힘의 원천인 태양에서 비롯된 빛이 담겨있다.

꽃과 잎사귀로 가득한 작품은 그 중간마다 건조하고 빠르게 휘두른 붓질로 그려진 가지와 그림자가 척추처럼 화면을 지탱하고 있어 힘없이 허물어지지 않고 부드럽지만 탄력적인 균형을 잡고 있다. 적당한 시점에서 마무리된 묘사는 계산적으로 준비되기보다는 생명력이 있는 광경을 바라보는 작가의 천진난만한 눈을 통해 들어온 첫인상처럼 단순한 강렬함이 있다.

때로는 축축한 종이의 표면에 스미고 번진 물기를 머금은 색은 작품에서 보이는 형태적인 특징 외에도 당시의 날씨나 온도와 같은 계절감이 느껴진다. 작품 곳곳에서 익숙한 색 사이로 보이는 의외의 색들과 그 조합을 통해 재료와 도구를 다루고 사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눈과 손이 절대 서투르지 않음을 알 수 있고 숙련된 섬세한 감각이 누적되어 굳어진 대범함을 볼 수 있다.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가는 동시대 도시의 사람들에게 평범하고 쉬운 일은 아무나 누릴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예술은 생각지 못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거나 단순하다고 여겼던 사건에 굴곡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은 거창한 공간에서 마주하는 예상 밖의 평범함은 반가운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는 자연을 담은 김수진의 그림은 여러 단계의 복잡한 생각 없이 눈에 들어와 마음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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