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 결혼 새색시 머리에 '양동이' 재첩국 사이소!
재첩국과 50년 동반 인생살이 잉꼬부부 '주영필&이수정' 대표
2019년 11월 대성동에서 바로 옆 옥계동으로 이전

2020년 6월 2일 24절기중 여덟 번째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생장하여 가득찬다는 小滿(소만) 이때부터 여름 기분이 나기시작하며 식물이 성장한다고 하는 절후이다.'코로나 19 여파'로 인하여 세계는 경제대공황의 위기를 감지하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접을수도 없는 애매모호한 상황이 전개되어 지고있는 실정이다.  고등학생 등교를 기점으로 단계별로 오프라인 수업을 조심스럽게 실시하고 있지만, 계속이어지는 코로나 확진자 발생은 마음과 몸을 움츠리게 하고 있다.

대전 중구 옥계동 45-5번지 재첩국(해장국)전문점 '부산식당' 이수정 대표(042-284-9850)
대전 중구 옥계동 45-5번지 재첩국(해장국)전문점 '부산식당' 이수정 대표(042-284-9850)

강의를 늦게 마치고 집으로 가는중 뒷 정리를 하고 있는 주인장에게 "배가 고픈데 '재첩국'을 먹을 수 있느냐?"고 의중을 물었다, 평소 안면이 있는 관계로 은쾌히 식당에 들어가 늦은 저녁을 해결할수 있었다.

현재 이곳은 옥계동 종점이 있는 자리로 2019년 11월에 이사를 와서 제 2의 전성기를 꿈꾸고 있다. 전에 있던곳(대성동)과는 불과 100여m 떨어진 곳이다.

식사를 하면서 안 주인 이수정 대표와 일문 일답을 했다. 이수정 대표는 경남 합천이 고향이고 15세에 고향을 떠나 부산 사상에 위치한 고무신 제조회사에서 일하며 지인의 소개로 충북 옥천 안내가 고향인  남편 주영필을 20세에 만나 21세에 결혼을 했다고 한다. 恨(한) 많고 배움마져 뒷전으로 밀린 과거1950년 6.25이후의 삶은 하루하루 벌어 먹고 살아야 하는 처절하고 애달픈  시간들이었다. 6.25전후로 인한 가족과의 이별  우방국 미국으로부터 받는 원호 물품에 의존해야 했던 파란만장한 대한민국의 역사와 맥을 같이하며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단어로 점철되었던 어렵고 힘든 시절로 회상된다.

동구 대성동에서 중구 옥계동 45-5번지(구 옥계동 시내버스 종점)부산식당 전경
동구 대성동에서 중구 옥계동 45-5번지(구 옥계동 시내버스 종점)부산식당 전경

 부산에서 단칸방으로 시작한 신혼의 달콤함도 잠시 먹고살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가 있을수 없었다. 신 혼인 새색시 이수정 대표가 선택할수 밖에 없었던 것은 챙피함 보다는 가족을 굶기지 않아야 한다는 어머니정신 그 일념으로 시작한 것이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팔아야하는 채접국 장사였다. 하루 벌어서 입에 풀칠을 해야하는 가족이 있었기에 20대의 꽃다운 새색시는 머리위에 재첩이 있는 항아리가 무거운지도 모르고  ‘재첩국’과의 고단한 因緣(인연)이 시작되었다.

20대 초반의 꽃다운 처녀 새색시는 재첩국이 들어있는 양동이를 머리에 이고  '재첩국 사이소!' '재첩국 사이소'! 를 외쳐야 했다. 하지만 처음 필드에 나간 새색시는 이러한 소리마져 내지 못하고 주눅과 주위시선으로 인해 밖으로 나오는 외침을 못하고 속에서만 '사이소'라는 소리가 겨우 나올뿐 그래서 "하나도 팔지도 못하고 공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도 많았다."고한다.

어느날 예쁜 새색시의 어렵고 딱한 사정을 헤아려준  주변 아주머니의 관심과 동정으로 인해 우얄꼬! 새색시! 하면서 자신의 딸처럼 대해주며 " 재첩국을 함께 팔아주곤 했다."고 회상했다.

부산식당 '재첩'
부산식당 '재첩'

재첩국 20년의 인연을 마치는 듯 하며 제2의 살림살이 거처로  선택한 곳은 남편 고향 인근  대전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또 다시 먹고 살아가야하는 문제 해결을 위해  부족한 돈으로 시작한곳이 산내  대성동 쪽  ‘부산식당’이라는 간판을 걸고 ‘재첩국’ 장사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남편은 회사생활하면 머리가 아파 도저히 직장생활을 할수 없는 징크스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의 손길을 받아 같이 요식업을 할수 밖에 없었고,입소문이 나 날이 갈수록 맛집으로 자리를 잡을수 있었다. 다른 식당과의 차별을 꾀하고자 선택한것은  계절에 맞게 각종 나물과 버섯을 남편이 채취해 오면 손맛이 좋다는  이수정 대표가 정갈하게 맛을 내 손님상에 올라가고 다 먹은후 '정말 맛있게 먹었다.'는 소리를 듣다 보니 더 오는 손님들에게 잘할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정성을 다하면서 대성동의 '부산식당' '재첩국'새색시는 아주머니가 되어 비교적 만족한 생활을 하며  대성동의 '재첩국 전문' '맛집'으로 30년을 이어오게 된다.

하지만 역사는 변하듯 그린벨트였던 그곳도 아파트 단지를 신축하려고 부지를 정리하는 바람에 어쩔수 없이 정든곳과의 이별을 기약하며 알아보던중 이곳 옥계동 45-5번지 옥계동 종점 있던 곳을 선택하여 2019년 11월 이전을 하였다.

현재 6개월 정도 영업을 하고 있다. 대도로 변 약간 안쪽에 있지만 ‘재첩국전문점’이라는 포지셔잉 과 함게  ‘단골’들이 있어서 꾸준하게 유지하고 있다고한다.하자만 과거와는 엄연히 여건이 다르기에 하루하루 주어진 상황에서 천직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주영필 남편의 갑작스런 뇌졸중으로 인하여 건강했던 그시절을 회상하는 5년전의 슬픔도 어느정도 아물어 가고있고,"강인한 정신력을 소유한 주영필 남편의 의지로 혼자서 거동할정도로 호전된것만 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한다.

현재 슬하에 1남 1녀가 있다.  아들은 장성하여 벌써 50살이고 딸은 40세 10년 터울이지만 오누이간의 정이 좋다고 한다. 둘째인 딸 또한 결혼하였지만, 늘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각별하기에 식당에 나와 엄마를 도우면 살고 있는데 딸이 돕는것이 아니라 내가 도움을 받고 있어 마음이 든든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늦은 시간 식당을 나서며 이수정 대표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혹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 있냐"는 질문에 “남편이 5년째 뇌졸중으로 인해 건강이 좋지 않기에 식당을 찾아주는 손님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사람들이  아프지말고 건강하길 바란다.” 고 아주 넓고 깊이와 의미를 더한 말을 해주었다. 우리들 살아가는 인생사가 뭔들 쉽겠냐마는 그래도 건강이 최고라는 것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여보게 ! 저승 갈때 무얼 가지고 가나!" 라는 작자미상의 어구가 생각났다.깍아 만든 부처의 조각상에 빌고 빌지 말고 속세에서 구원 받는 '베풂'을 실천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50년 전통의 재첩국 전문가 이수정 대표는 아직까지 양질의 먹거리를 장인정신에 비유하며 "꼭 정해진 날자에 재첩을 삶는다"고 한다. 주인장의 정성과 사랑이 가득한 음식이기에 맛집으로서 손색이 없다. 어딘들 주인장 입장에서는 맛집이라고 얘기 하겠지만 주관적인 판단이 아닌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고객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판단이 내려지기 때문이다.

 삶의 깊이와 굴곡진 역사가 말해준 삶의 언저리에서  사랑으로전달되고 마음으로 먹는 해장국 음식이기에 세월의 깊이와 가치는 차이가 분명이 있다. 가난과 삶이 있고,고난속에서도 굳굳하게 삶을 이끌어온 주영필 남편과 이수정 대표가 가꾸고 그려온 '이삭'이 잘 발화되어 만인의 건강한 밥상에 안착해온 깊이가 빛나고 있다.  주말이나 평일을 이용해 아가페적인 사랑을 실천해준 부모의 손을 꼭 잡고 "부산식당" '재첩국의 명인' 이수정 대표의 집을 찾아 아름다운 인연과 Storytelling을 만들어 포지셔닝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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