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초기 창건
대한불교 조계종 제 6교구 본사인 마곡사 말사
1739년(영조 15)에 세운 중건비

  筆者는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 작봉산에 위치한 쌍계사를 다녀왔다. 논산은 ‘논과 산이 많아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논산과 인접한 양촌을 찾게 되면 평화로운 논산 평야가 조화롭게 이어지는 고즈넉한 경치를 보게 된다. 논산평야의 넓은 들을 달리던 백제의 계백장군 논산 ‘황산벌’에서 전쟁에 敗(패)하면서 백제는 수 백년의 '부귀영화'를 뒤로 한 채, 역사속 한 장을 마감하게 되었다. 이곳이 바로 그 계백장군의 고함소리와 비명소리가 널리 퍼져있던 역사의 현장이었지만 昨今(작금)은 신록의 계절 5월속에 진한 녹색의 향연이 펼쳐지고 고즈넉한 숨소리가 바람결속에 뭍여진다. 온통 푸른 풍경은 그날의 함성소리가 고요하게 느껴질 정도로 평온과 고요가 논산평야의 대지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숨죽이고 있다.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 작봉산에 위치한 쌍계사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 작봉산에 위치한 쌍계사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 작봉산'에 위치한 '쌍계사'는 지리의 ‘쌍계사’와 동일한 사찰명이라서 “쌍계사”하면 먼저 떠오르는 곳이 지리산 쌍계사 사찰이 떠오른다. 하지만 논산에 위치한 쌍계사는 저수지의 풍경과 주변의 아름다운 꽃들과 어울러져 있는 산세, 그리고 역사와 깊이를 느낄수 있게 하는 고풍스러운 대웅전의 모습과, 넓은 쌍계사 마당의 푸르름이 더해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그림으로 다가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쌍계사로 들어갈수 있는 초입의 도로 옆에는 청송 주산지를 닮은 저수지가 있다.
쌍계사로 들어갈수 있는 초입의 도로 옆에는 청송 주산지를 닮은 저수지가 있다.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하여 발걸음이 뜸한 시기인지라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아 쌍계사는 더 조용하다. 쌍계사 초입에는 넓은 주차장이 있어 주차를 할수 있는 공간도 있고, 쌍계사 바로 앞에도 거동이 불편한 佛者(불자)들과 觀光客(관광객)을 위한 주차 공간이 있다. 대형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약 5분 정도걸으면 작봉산의 산세를 구경하며 걸을 수 있어 마음이 상쾌해진다. 쌍계사 앞에는 농업용 저수지가 있는데, 커다란 물고기들이 파닥거리며 사찰을 찾는 筆者를 반긴다. 경북 청송의 이름난 저수지 “주산지”와 흡사한 느낌을 받는다. 농번기가 시작되기 전이라서 저수지에 물이 봄 햇살에, 저수지 주변에 있던 나무들이 그림자가 물속에 비춰지고 있어 또 다른 느낌을 받게된다. 저수지 주변에는 경치 좋은 작봉산의 비경과 소나무들이 물에 비추어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신록의 계절 5월이다. 주변 풀들도 초록 빛으로 물들어 마음을 편하게 하며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잔잔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 나무들이 흔들리고, 망초대가 주변을 파랗게 물들이고 저수지의 물결이 파도를 치듯 파문이 일면 자연이 주는 생동감과 위대함이 느껴진다. 마치 바람이 놀러 오니, 나무가 춤을 추고 저수지가 파문을 일으키며 반기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누각을 통해서 대웅전으로 들어갈수 있는 문 엄숙하고 숙연해지는 느낌이다
누각을 통해서 대웅전으로 들어갈수 있는 문 엄숙하고 숙연해지는 느낌이다

이 길을 걸어 오르면 오래된 부도의 군락들이 옛 스님들의 흔적과 긴 세월의 시간 동안 쌍계사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사찰 앞에 이르면 “쌍계사” 현판이 걸린 봉황루가 막아 선다. 그 옆으로는 큰 돌을 다듬어 축조를 쌓은 돌담이 있는데, 이 모습에서는 당당함과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그 아래 축조누각 진입을 통하여 쌍계사 경내에 진입하면, 오래되고 큰 규모의 '대웅전'이 눈에 들어온다. 여느 사찰과는 다르게 그 넓은 공간에는 탑이 없고, 흙먼지 이는 땅이 아닌 푸른 빛이 도는 사찰 마당이 넓게 펼쳐져 있다. 푸른 빛이 주는 깨끗함에 매료되어 고색창연한 쌍계사의 모습, 그리고 그 뒤로 펼쳐진 작봉산의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많은 불자들이 잠시 앉아 시름을 달랬을 '흔들의자'에서 경치를 구경하다가 대웅전으로 향했다.

논산 쌍계사의 유래가 적혀있는 '비문'
논산 쌍계사의 유래가 적혀있는 '비문'

대웅전은 보물 408호로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영조 14년(1738년)에 다시 축조 했다고 전해진다. 어른 두명이 팔을 벌려야 닿을 것 같은 큰 크기의 나무들이 기둥을 받치고 있으며, 세월의 풍파를 견디어 선명하게 드러난 나무 결이 쌍계사가 오랜 사찰임을 암시해준다. 대웅전 내에 ‘삼세불’이 자리하고 있다. 이 불상 내에서 발원문이 발견되었다고, 선조 38년(1605년)에 조성한 기록이 남아 있다고 전해진다. 이 삼세불은 보물 185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소조'로 지어진 것이고 정 중앙 석가모니불과 좌측에 아미타불, 오른쪽에 약사 여래불상이 자리잡고 있다.

사찰내의 전경이 펼쳐보이고 뒤로는 작봉산이 온화하게 쌍계사를 감싸고 있다.
사찰내의 전경이 펼쳐보이고 뒤로는 작봉산이 온화하게 쌍계사를 감싸고 있다.

불자들의 정성으로 구축된 관음불은 쌍계사 작봉산을 배경으로 있으며, 사찰의 전경이 한눈에 훅~들어 온다.

사람의 往來(왕래)가 드문 사찰에 삼라만상 자연의 위대함과 풍채가 드러난다. "일제때에는 많은 중생들로 인하여 십리까지 쌀 뜸물이 흘러갔다"는 말이 전해져 오고있다. 하지만 옛 명성을 뒤로하고 고요함으로 자연의 고고함을 품고 안은채로 역사의 초연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는 옛 명성 논산 쌍계사는 불자들의 심미적인 내면의 성찰을 요구하며 오는 불자들로 하여금 숙연한 삶의 철학을 법문으로 대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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