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를 아끼고 아낌없는 사랑을 실천한 고등학교 학창시절 박정애 담임선생!!
'스승의 날' 박정애 담임선생과의 소중한 만남과 기억이 있어 행복한 제자
이 시대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천사 같은 우리 담임선생 박정애 교사

      '사랑은 깊어지고 감사하는 마음은 더욱 높아지는 신록의 계절 5월' !  박정애 담임교사 사랑합니다. 筆者는 '충청북도 보은군 회남면 어부동'에서 태어나 순수했던 시골 소녀이다.

筆者는 일을 하면서도 문뜩 문뜩 학창시절 고마운 박정애 교사가 생각난다. 매년 스승의 날이 오면 더욱 마음 깊이 사랑의 실천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 이시대의 진정한 '스승' 박정애 교사가 그리워져 감사 글을 올린다.

좌측 박 정애 교사와 제자 김진각(일공공일 안경 콘텍트 테크노점 대표)
좌측 박 정애 교사와 제자 김진각(일공공일 안경 콘텍트 관평점 대표)

筆者 여고 3학년때 부친은 고혈압으로 갑자기 쓰러져 구급차로 대전 충남대학교 병원 응급실로 이송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이 넘은 일이다. 교사 박정애 담임은 어쩔줄 몰라 쩔쩔매고 있는  필자를 데리고 충남대병원 응급실에 도착하니 '가망이 없으니 편안하게 집으로 가서 臨終(임종)을 보라'고 의사는 말했다.너무도 갑작스런 상황임에도 의사 소견에 따라 충대병원을 나와서 다시  모친(엄마), 필자, 박정애 담임선생 셋이서 응급차에 올랐다. 아버지는 시골집 어부동으로 가는도중  응급차 안에서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볼수 밖에 없었고, 아버지는 그렇게  永眠(영면)하게 되었다.

아직도 부친과 이별하는 순간이 눈 앞에 선하게 다가와 단 한번도 잊은적이 없다. 고 3 담임 박정애 담임선생 덕분에 지금의 필자가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은 늘 마음속에 상존해 있기때문이다. 부친의 갑작스런 '영면'에 집안 사정은 참으로 살아가기가 팍팍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막내 남동생이 중학교 수업료를 내지 못하고 학교에 등교하지 못하고 있을때였다. 필자 또한 학생 신분이기에 어떻게 해볼 상황이 어려워 무척이나 고민하며 힘들어하고 있을 때, 필자를 지켜보고 있었던 박정애 담임선생은  "무슨 고민있냐"고 물어왔다. 필자는 어디에도 이야기를 할수 없었던 어려운 난관에 부딪치고 너무나 답답하여 암담한 심정이 되다보니 속시원하게 들어줄 박정애 담임선생께 작금의 상황을 다 말했다. 속 시원하게 말은 했으나, 담임선생께 챙피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담임선생 얼굴을 쳐다 볼수 없었던 기억이 생생하게 난다.

학창시절 어렵고 힘들 었던 제자를 실천적 사랑으로  감싸준 박정애 교사(우측)지천명의 제자는 항상 마음속엔, "사랑합니다 나의 소중한 박정애 선생님"~
학창시절 어렵고 힘들 었던 제자를 실천적 사랑으로 감싸준 박정애 교사(우측)지천명의 제자는 항상 마음속엔, "사랑합니다 나의 소중한 박정애 선생님"~

그 후 남동생은 수업료를 내진 못했지만 굳굿하게 학교에 등교를 하였고 몇일이 지난후 남동생이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 "누나! '누가 내 수업료를 냈다."'며 엄청 좋아하던 남동생의 환한 얼굴이 생각난다.  그 상황에서는 누가 선뜻 큰돈을 내 줄순 없고 큰아버지께서 우리 집안 형편을 알고 남동생 수업료를 대신 납부해준 것이라고 생각하며 백부(큰아버지)에게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면서 학교 생활에 열심히 최선을 다해 공부를 하였다. 그 결과 그 이듬해  대기업에 취직을 할수 있었다.  그시절에는 첫 월급을 수령하게되면 존경하는 분(부모등)께 선물(속옷)을 사주던 관행이 있었다.

드디어   첫 월급을 수령하고 나서 제일 먼저  엄마를 생각했지만, 엄마는 이해 해줄것 같았고, 항상 물심양면으로 필자를 살갑게 도와준 박정애 담임을 먼저 찾게 되었다. 제자와 담임에 불과했던 필자를 위해 헌신적으로 뒷바라지 해주던 박정애 담임선생을 먼저 찾아 감사의 인사를 한후  내일은 큰 아버지께서 어려운 환경에 처 해 있을때 동생 수업료를 납부해준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전하려고 찾아 뵌다고 말하니 그때서야 박정애 담임선생은 필자의 손을 꼭 잡았다. " 힘든 모습을 보셨는지 그럼  다음에 인사드리면 안되겠니 하시는 박정애 담임선생" ~ 그 때 남동생의 수업료를 어렵게 내준 사람은  '큰 아버지가 아닌 박정애 담임교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박정애 담임교사의 손을 잡고 눈물샘이 터져   펑펑 울었던 기억이 아직까지도 마음속 깊이 자리잡고 있다. 담임선생께서도 마음을 같이하며 아무런 말없이 안아주던 포근한 그 상황이 아직도 가슴에 아름다운 추억처럼 다가온다. 직장에 합격했을때도 담담하게 "열심히 잘 할거야 '진각'이는.." 내색 한번 하지 않았던 고귀한 담임선생의 마음을 이제서야 알게되니 너무도 죄스러웠다.  제 동생 수업료 뿐만 아니라 자취하는 필자에게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천사 박정애 담임교사!! 였다. 훌륭한 나의 소중한 담임선생 박정애 교사!!

필자(김진각 대표)가 운영하는 일공공일 안경 테크노점(042-936-1077)
필자(김진각 대표)가 운영하는 일공공일 안경 관평점(042-936-1077)

필자는 박정애 담임교사 덕분에 행복한 학창시절을 보낼수 있었다. 결혼후에도 부군(남편)과 부부싸움을 하고 홧김에 집을 나오면 막상 갈때가 없고 친구 한테는 왠지 감추고 싶어 박정애 담임선생께 달려가게 된다. 그러면 언제나 환한 미소로 반겨주고 토닥토닥 다독여 주는 그런 박정애 담임 교사!

부친의 영면으로 갑자기 어려워진 환경에 힘들어 하던 필자에게 장 시간동안 필자에게 말없는 사랑을 실천해주고 필자에게 희망의 등불이 되어준 나의 귀중한 박정애 담임교사!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언제나 환하게 웃을수 있고,누군가 어려울 때 작지만 마음을 나눌수 있는 배려를 배우고 실천할수 있도록 사랑과 관심 희망과 배려를 심어준 존경의 아이콘 박정애 담임교사의 덕분이었다.

1년후면 정든 교정을 떠나 자연인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때도 어렸던 학창시절 소녀는 이제 50을 넘은 중년이 되었다. 하지만 오랜 기간동안 불러 주고 싶은 노래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필자가 조용히 존경하고 사랑하는 박정애 교사에게 아래의 노래 '스승의 은혜' 노래를 바친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 수록 높아만 지네

참되 거라 바르 거라 가르쳐 주신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

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필자(김진각대표)가 운영하는 일공공일 안경 콘텍트 테크노점 내부전경
필자(김진각대표)가 운영하는 일공공일 안경 콘텍트 관평점 내부전경

지금의 이 자리가 있기까지 가르침과 사랑을 주신 박정애 담임교사 참 귀한 내 삶의 스승 존경하고 사랑한다. 그런데도 필자는 그 고마운 교사들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의 마음 다 전하지 못하며 살고있다는 생각에 죄스럽고 머리가 숙연해진다.

“저의 삶에 있어서  박정애 담임교사를 만난것은 정말로 하늘이 준 소중한 인연이며 필자의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꼭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었는데 지천명이 넘어서 이런 기회를 얻게 되어서 기쁘고 감사하며 나의 담임선생 '박정애 교사 사랑합니다.' 언제나 지금처럼 건강하길 소망하며 아쉬운 글을 정리한다. 내일은 더 환하게 밝게 빛날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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