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교육 현장의 사람들

푸른학당 오성자 교장 ‘평생교육은 내 인생을 바꾸는 터닝포인트’

(사)광주광역시평생교육사협회(협회장 김동례)는 지역에서 평생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평생교육사들의 목소리를 담아, 평생교육사들의 고용형태를 모색하고, 새로운 평생교육의 전환을 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현재 광주광역시에는 2000여명의 평생교육사가 있고, 공공영역과 민간영역 그리고 교육분야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평생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푸른학당 오성자 교장 모습
푸른학당 오성자 교장 모습

평생교육사는 평생학습을 생활화하고 전략화하는 교육기획자이면서 실천전문가이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성인문해교육분야에 일생을 바쳐 봉사, 사랑을 실천하며 평생교육에 몸담아 온 열정의 아이콘 푸른학당 오성자 교장과 만남을 가졌다.

오교장은 평생교육현장과 함께 살아온 길고 긴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Q1. 푸른학당을 운영하고 계신데 처음 인연을 맺은 계기는.

“고등학교를 졸업후 결혼을 하고, 항상 배움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대학의 낭만을 느끼고 싶어 야학을 찾았다. 그곳에서 자기 이름 밖에 쓸줄 몰랐던 아저씨 한분을 가르치게 되면서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다. 이후 야학운영이 어려워지면서 생각지도 못하게 운영을 맡게 되었다. 1990년 푸른학당 교장이 되었고, 지금까지 30여년간 운영하고 있다. ”

Q2. 푸른학당은 현재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30여년전 자원봉사자들이 모여서 만든곳이 바로 이곳 푸른학당이다. 이후 혼자서 운영을 하게 되면서, 사정이 많이 어려웠다. 어릴 때 엄마에게서 배웠던 재봉틀 기술이 있어서 운영자금을 마련하는데 적지않은 도움이 되었다. 학당 한 켠에 공예방을 내서 양재, 토탈공예, 밸리댄스 강의를 하고 외부강사로도 출강해 운영비를 충당했다. 중간 중간 학당 문을 닫고 싶었지만 고비마다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2008년도 국가보조가 시작되면서 자원봉사자가 사라지기 시작했고, 야학이 하나 둘 세월의 뒤편으로 사라져가는 것을 지켜봤던 산증인이기도 하다.”

Q3. 푸른학당과 함께 하면서 가장 보람되었다고 생각하는 일은.

“1996년 대안학교인 영광 성지고등학교에서 공예선생님을 구해서 처음에는 무료 봉사를 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이후 6년동안 공예특성화 강의를 했고, 영광중, 성지중에도 출강했다. 당시 성지고 다니던 형편이 어려웠던 학생들의 의식주를 해결하며 좌충우돌 부딪혔던 많은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그애들에게 밸리댄스를 가르쳐 대회에서 큰상을 받기도 했다. 지금도 그때 학생들과 함께하며 지도했던 일들이 얼마나 열정적이였는지 바로 엊그제 일처럼 다가온다. 아직도 잊지않고 찾아주는 그때의 제자들이 고마움을 말로 표현할 때 가르치는 보람을 느낀다.”

Q4. 푸른학당을 운영하며 향후 바램이 있으시다면.

“지금 현재 푸른학당은 학력인가기관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국가 문해교육기관에서는 무료로 수업을 받는데 푸른학당은 수강료를 받아야 유지할 수 있다. 강사비는 국가에서 지원을 받지만 학당 운영비는 자비부담이다. 한때는 청소년들이 많아서 야학이 활성화되는 듯했지만 국가보조를 받는 기관들로 학생들이 빠져나가며, 현재는 중년의 어머님, 어버님들이 야학에 나오신다. 한글을 모르는 많은 어머님들과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아이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사명감이 지금도 푸른학당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주고 있다. 나의 반평생을 함께 해온 이곳 푸른학당이 학력인증을 받은 학교가 되어 많은 어머님들에게 희망을 전하며 내가 가진 재능으로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고 싶다.”

Q5. 평생교육사로서 끊임없는 도전을 하고 계시는데 어떤것들이 있는지.

“야학의 문을 두드리면서 시작된 내 인생은 쉴새없이 이어진 평생교육 그 자체였다. 2001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농학과에 진학했고, 농학과 댄스스포츠 동아리를 창단, 초대 회장에 취임했다. 방송대 졸업은 2010년도에 했다. 계속적인 배움에 대한 열정은 노인건강체조, 레크레이션1급, 지점토, 홈패션, 종이접기, 동판공예, 벨리댄스, 댄스스포츠, 라인댄스, 줌바댄스, 등 다방면에서 계속적으로 자기계발을 하고 있다. 4년전에는 척추 골수암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암선고를 받았고 그 와중에 아들을 결혼시키고, 온힘을 다해 석사학위까지 받았다. 졸업식장에서 석사학위를 받을때는 온세상을 다가진 것 같았다. 지금은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 최근에 한 도전은 광주에서 처음 열린 ‘2019 미즈열정페스티발’에 참가를 했다. 60이 넘어 내 인생의 마지막 도전이라 생각했다.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가 자신의 위치에서 최고의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 9명이 무대에 올랐다. 순위를 결정짓는 것 보다는 모두의 인생에 박수를 보내는게 좋았을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인생은 누군가에 의해서 순위를 결정짓는 것이 아니였다는 큰 사실을 깨닫게 계기가 되었다.”

Q6. 지역평생교육에서 평생교육사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평생교육사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 역량이 아직은 많이 부족한 것 같다. 평생교육사가 되기 위해 실습을 160시간을 하게 되는데, 실습현장에서 실질적으로 현장에 투입되어 바로 기획을 할 수 있는 역량이 되기란 쉽지 않은게 현실이다. 우리도 학생을 받아 실습지도를 해보지만 실질적으로 운영 프로그램을 짜는데 많이들 어려워한다. 그런 점들을 지역협회에서 평생교육사들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무장시켜 나가야 한다. 그리고 협회에서 일자리도 창출을 해서 내 보낼수 있어야 많은 평생교육사들이 찾아온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리를 잡고 있는 평생교육사들이 자기들의 역량을 조금씩 나누어 같이 동반성장하는 그림을 그려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Q7. 끝으로 ‘평생교육’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름의 정의를 내려주신다면.

“평생교육은 그동안 살아왔던 삶들을 바꾸어 줄 수 있는 터닝포인트를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된다. 평생교육이라 함은 우리가 죽을때까지 배우고 나를 발전시켜나가는 것이다. 평생교육사들이 프로그램을 잘 기획해서 그 프로그램으로 교육받은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오던 삶에서 자신의 인생이 달라져가는 모습을 여러번 본적이 있다. 자신과 딱 맞는 프로그램을 만났을 때 그동안 몰랐던 부분에 눈을 뜨면서 사람들이 인생의 전환기를 맞을수가 있다. 평생교육은 그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바꿀수 있는 무서운 힘을 갖고 있다. 교육은 내 인생을 바꾸는 터닝포인트이다.”

오성자 교장과의 인터뷰는 저녁식사 자리까지 이어졌다.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 배움의 문을 두드렸을 때, 오교장은 그들과 희노애락을 같이하며 푸른학당을 지켜왔다. 30여년 동안 문닫을 위기를 넘기며 역경을 이겨낸 힘은 다름아닌 그녀의 부단한 노력과 열정 그리고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을 기꺼이 사회에 봉헌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한편, 푸른학당 오성자 교장은 현재 광주광역시평생교육사협회 부회장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각종 행사에 벨리댄스를 직접 지도해 공연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야학에 발을 들여놓으며 시작된 그녀의 평생교육 스토리는 지금도 진행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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