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를 훼손했는가?

홍콩 시위가 날로 격해지고 있다. "범죄인 인도법안"을 반대하며 시작된 시위를 중국 정부가 강경진압하면서 유혈사태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중국정부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모든 시위 관련자를 폭도로 규정하며 검거하려 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대학가를 중심으로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많은 대학의 게시판에도 홍콩의 시위를 지지하는 대자보가 붙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인 유학생들에 의한 대자보 훼손 사건이 발생했다.

게시물이 모두 뜯겨나간 벽 한 귀퉁이에 '대자보 훼손은 불법'임을 알리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사진/ 양일동)
게시물이 모두 뜯겨나간 벽 한 귀퉁이에 '대자보 훼손은 불법'임을 알리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사진/ 양일동)

전남대학교에서도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 14일, 홍콩 지지 대자보가 훼손되며 다음 날 설치된 '존 레넌 벽(전남대 인문대 쪽문 벽)'에서는 대자보를 뜯어내려는 중국인 유학생들과 이를 말리는 한국 학생들의 대치가 이어졌다. 며칠이 지난 20일 오후, 존 레논 벽에는 '대자보를 훼손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경고문만 붙어있을 뿐 그 어떤 게시물도 찾아볼 수 없었다. '훼손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정치적 의견을 밝혀 달라'는 요구에 누군가가 벽 전체의 게시물을 제거하는 것으로 응수한 것 같아 보였다. 남아있는 대자보의 일부에서 검정 매직으로 글을 지우고 반대의 글을 쓰고 했던 대립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공안이 평화를 파괴하고 있다" 모든 게시물이 뜯겨져 나간 자리에 누군가 작은 메모지 한 장을 붙여놓았다.(사진/ 양일동)
"공안이 평화를 파괴하고 있다" 모든 게시물이 뜯겨져 나간 자리에 누군가 작은 메모지 한 장을 붙여놓았다.(사진/ 양일동)

누군가 붙여놓은 메모지에는 "공안이 평화를 파괴하고 있다"는 말로 시작하는 글이 적혀 있었다. 메모지의 주인공은 "인민의 의지는 자유이며 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는 절대 지지 않는다. 역사는 흐르고 있고 민주주의는 인민에게 돌아왔다"며 홍콩 시위는 반드시 승리할 것임을 확신하며 지지하고 있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표현하는 것은 자유이다. 누구든 저 벽에 자신의 의견을 게시할 수 있다.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사람은 지지하는 게시물을, 반대하는 사람은 반대하는 게시물을 서로를 배려하며 벽의 공간에 채워 가면 된다.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방식이 타인의 표현을 막거나 폭력적인 것이어서는 안 된다. 만약 누군가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의 게시물을 훼손하고 위협한다면 그는 민주주의를 모르는 사람이거나 민주 시민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비릿한 피 냄새를 맡으며 성장한 민주주의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일 것이다.

광주는 그 누구보다 더 민주주의의 성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그러기에 홍콩의 저항을 쉽게 지나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 전남대학교 학생회관 게시판에서 홍콩 관련 게시물은 한 장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후 2시 40분, 식사 시간이 이미 지났지만 인문대 주변 중국인 식당엔 수많은 중국인들이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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