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光萬 (호남역사문화연구소 상임대표)

조국사태로 보는 한국의 朋黨政治   -

高光萬 (호남역사문화연구소 상임대표)
高光萬 (호남역사문화연구소 상임대표)

요즘 나라는 온통 조국이다.

검찰개혁을 외치는 개혁세력은 서초동 검찰청 앞에서 촛불이 켜고 또 거기에 맞서 보수세력은 광화문 앞에서 반대시위로 말미암아 이 사태는 한 달 이상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왜 이렇게 한 사람의 장관 임명으로 나라가 시끄럽고 둘로 쪼개지는가?

그 이유는 오로지 정권을 차지하기 위한 보수세력과 개혁세력의 양 진영 간 사활을 건 피 터지는 정권싸움이기 때문이다.

지난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 때도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로 끝났기에 이번 문재인정부에서는 꼭 이루고자 지난 대선 때 대통령후보 공약사항으로 내 걸었던 적폐청산의 당면과제이다. 그런데 내년 국회의원 총선과 맞물려 정권을 다투는 두 진영싸움으로 변질되니 참으로 안타깝다.

이 소모적인 국론분열의 피해는 오롯이 우리 국민들이 당하게 되니 더욱 참담하고 씁쓸함을 느낀다.

政黨이란 정치적인 신념이나 주장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 정권을 잡고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조직한 단체입니다.

조선 초기에 권력을 잡았던 훈구파는 신진 세력인 사림파와 대립했다. 훈구파는 여러 번 사화(사림이 당한 재앙)를 일으키며 사림파들을 몰아내려고 했지만, 조선 중기에는 결국 사림파가 대부분의 관직을 차지하고 권력을 잡았다. 그런데 권력을 잡은 뒤 사림파는 훈구파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나라는 어떻게 이끌 것인지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이때 같은 입장을 취한 사람들끼리 집단을 이루며 붕당이 생겨났다.

붕당은 학문적으로 통하거나 같은 스승 밑에서 학문을 배운 사람들끼리 관계를 형성하는 학맥에 따라서도 갈렸다. 사림의 선비들은 일찍이 지방 곳곳에 서원을 세우고 존경할 만한 학자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함께 공부해 왔다. 그런데 어떤 학자를 모시고 어느 서원에서 공부했는가 하는 것이 붕당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 것이다. 관직은 한정되어 있는데 관리가 되고자 하는 사림들은 많아지면서 붕당 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말 그대로 생각과 뜻이 같은 사람들이 무리지어 자신들의 정치적 의견을 나타내는 정치 형태이다. 붕당정치는 다양한 의견을 낼 수 있고, 서로 견제하면서 정책을 결정한다는 면에서 취지는 긍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붕당의 시작은 1575년(선조8) 심의겸과 김효원의 이조전랑(吏曹銓郞) 추천문제로 대립하면서 시작되었다. 김효원과 뜻을 같이 한 동인(東人)은 신진 관료들이었고, 심의겸과 뜻을 같이 한 서인(西人)은 원로 관리들이었다. 이후 동인은 다시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지고,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갈려 이 분파를 사색(四色)이라고 하여 붕당의 중심으로 꼽았다.

당시 청빈사류로서 젊은 선비들 사이에 평판이 높았던 김효원(金孝元)을 지지하는 일파와 명종(明宗)의 왕후의 아우로서 노장사류(老壯士類)의 인정을 받고 있던 심의겸(沈義謙)을 지지하는 일파 사이에 반목 ·대립이 일어났는데, 그 직접적인 원인은 조정의 요직인 이조전랑의 자리 문제였다.

김효원은 문과에 장원급제를 한 학문이 높은 선비로서 직무에 충실했기 때문에 선비들의 칭찬을 받고 있었는데, 마침 이조전랑 자리에 있던 오건(吳健)이 그 자리를 떠나면서 후임으로 김효원을 추천하였으나 심의겸이 이에 반대하였다. 김효원이 전에 권신(權臣)이며 을사사화(乙巳士禍)를 일으킨 바 있는 윤원형(尹元衡)의 집에 머무른 일이 있었다는 이유로, 그러한 자를 이조전랑과 같은 요직에 임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 김효원은 이조전랑에 임명되었으며, 그가 그 자리를 떠날 때 사람들이 심의겸의 아우 심충겸을 천거했으나 이번에는 김효원이 이를 반대하였다. 당시에는 전임 전랑이 그 후임을 천거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로 되어 있었으므로 김효원의 반대는 심충겸의 이조전랑 취임에 큰 장애가 되었다. 왕실의 외척으로서, 조정의 인사를 처리하는 막중한 이조전랑의 직책을 맡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김효원의 주장이었다.

이 두 차례의 논쟁으로 김효원과 심의겸 두 집안의 반목과 불화는 격화되었고, 사류 사이에 분당운동이 일어나 일파는 김효원을 지지하고 다른 일파는 심의겸을 지지하게 되었다. 이때 김효원의 집이 서울의 동쪽인 낙산 밑의 건천동(乾川洞)에 있었기 때문에 그를 지지하는 일파를 동인이라 하였고, 심의겸의 집은 서울의 서쪽인 정동(貞洞)에 있었기 때문에 그를 지지하는 파를 서인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때 사림의 동서분당은 후에 사색당쟁(四色黨爭)으로 발전해 국정을 혼란하게 하여 국력을 크게 소모시켰다.

동인은 이황의 사상을 따랐고, 서인은 이이를 지지했다. 동인은 이후에 다시 북인과 남인으로 나뉘어졌고,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졌다. 광해군 때는 북인이 정권을 잡았으나, 인조반정 후에는 서인들이 정권을 장악했고 여기에 남인들이 도전했다. 이후 몇 차례 바뀌긴 했으나 기본적으로는 서인이, 그중에서도 강경파인 노론이 주도권을 가졌다. 붕당은 관직의 높고 낮음이나 속해 있는 관청과는 상관이 없고, 주로 정치적인 입장이나 학맥에 따라 갈렸다.

붕당 정치는 특정 붕당이 권력을 독차지하기 위해 다른 붕당의 사람들을 모조리 제거하는 양상으로 전개되기도 했다. 조선의 몇몇 임금들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편을 갈라 다투는 붕당 정치를 이용하기도 했다. 조선의 제19대 임금인 숙종은 붕당을 번갈아가며 몰아내는 ‘환국 정치’를 펼쳤는데, 이로 인해 붕당 간의 경쟁이 더욱 심해졌다. 영조와 정조 때는 이런 폐단을 없애기 위해 붕당에 관계없이 두루두루 인재를 등용하는 탕평책을 펴기도 했지만, 붕당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우리 조선의 역사를 보니 1498년 무오사화, 1504년 갑자사화, 1519년 기묘사화, 1545년 을사사화, 1547년 정미사화 등 5번의 사화를 겪었고 1521년 신사무옥, 1549년 기유옥사, 1589년 기축옥사, 1613년 계축옥사, 1722년 신임옥사, 1755년 을해옥사 등 6번의 옥사를 겪었으며 1680년 경신환국, 1689년 기사환국, 1694년 갑술환국, 1721년 신축환국, 1725년 을사환국, 1727년 정미환국 등 6번의 환국을 겪으면서 수많은 인재들이 목숨을 잃고 서로 죽이고 죽는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하였던 것이다.

일제는 조선의 이러한 당쟁의 폐단이 있을 때 우리를 침략하였고 우리나라를 식민 지배하면서 붕당을 조선의 특징이자 망국의 원인으로 꼽았다 한다. 나라의 이익보다 자기 붕당의 이익을 우선하고 단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1945년 해방 직후 이승만대통령의 자유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자연적으로 야당인 민주당은 신익희, 조병옥 선생을 중심으로 세력을 결집하게 되었다. 그 후 자유당은 박정희대통령의 공화당, 전두환의 민정당, 노태우의 민자당, 김영삼의 신한국당, 이명박의 한나라당, 박근혜의 새누리당이 지금의 자유한국당으로 이어져 어찌 보면 지역적으로 흡사 조선의 동인세력으로 볼 수도 있겠다. 또한 민주당은 윤보선대통령의 민주당에서 신민당, 민주한국당, 통일민주당, 평화민주당, 민주당, 김대중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노무현의 열린우리당, 민주당,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의 더불어민주당으로 서인세력으로 볼 수도 있겠다.

위기 뒤에 찬스이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했다.

외양간이 허술해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아까운 소를 잃었으면 즉시 반면교사로 삼고 법과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본다.

이번 기회에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좌파 우파를 떠나 검찰개혁의 핵심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와 검.경수사권 조정법이 하루속히 국회에서 통과되어 몇백년 전부터 한반도를 호시탐탐노리는 일본을 위시하여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무시 받지 않고 세계11위의 경제대국에 걸맞는 대접을 받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는데 그 기대를 우리 스스로의 자긍심으로 만들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그것이 바로 이순신장군의 호국충절의 정신이고

그것이 바로 김구선생의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 또한 그것이 안중근의사의 자주독립이라 본다.

♠ 고 광 만 ♠

■ 호남역사문화연구소 상임대표

■ 호남역사초빙강사

■ 광주평생교육강사

■ 광주서구마을학강사

■ 문화예술기획자

■ 광주서구문화원이사

■ 학교.관공서초빙강사

■ 저서: 광주 도로명과 역사인물 (역사는 말한다. 1) 출판준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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