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이별, 설렘이 공존하는 기차역. 이제 KTX 운행으로 예전만큼 기차 여행에 대한 로망은 옅어졌지만 그래도 기차처럼 좋은 재충전도 별로 없다. 그리고 영시 오십 분 목포행 완행열차가 사라졌지만 대전역만큼 특유의 블루스가 떠오르는 역사(驛舍)도 많지 않다. 그 아련한 블루스 이면 속에서 안전한 대전역을 위해 발로 뛰는 현장 속의 사람, 김봉회 역장을 만나봤다.

김봉회 역장을 만났던 9월 셋째 주는 일 년 중 가장 바빴다는 추석 연휴가 끝난 다음 주였다. 올 추석은 태풍이 지난 후여서 여느 해보다 쉴 틈 없는 긴장감이 고조된 연휴였다. 직원들의 휴식 권유에도 현장의 역장은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차례 후 서둘러 대전역으로 복귀한 김봉회 역장은 “현장에 있어야 맘이 편하다”며 애써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을 눌러본다.

“1982년 입사 후 기차와 떨어졌던 시간이 없었던 것 같아요. 어느 지역으로 발령 받든 그 역사가 내 직장이자 내 집으로 생각 됐거든요. 그러니 손님맞이에 불편함 없이 리모델링하고 보다 많은 손님을 끌기 위해 관광 상품 등을 기획하는 일이 신났어요. 그래서 제가 지나온 영동역, 천안역, 천안아산역, 그리고 대전역은 제 일터이자 저의 역사(歷史)라는 생각이 들어요.”

작년 7월 대전역장으로 부임한 김봉회 역장은 관리역장만 8번 역임했다. 영동과 천안역장을 지내며 지역 특산물을 열차와 연계해 관광 상품으로 개발, 외부 관광객 유치에 큰 성과를 냈다. 포도를 테마로 영동역을 재창출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한편 천안의 특산물인 호두과자 축제를 코레일 최초 역 주관으로 천안역 서부광장에서 3년 연속 성황리에 치루기도 했다. 특히 철도의 생명인 안전부분을 획기적으로 개선, 2016년 관리역군 평가 하위권이었던 천안아산역을 2017년 최상위권으로 도약하는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다. 고객의 편의와 안전, 그리고 역의 발전을 위한 그의 열정으로 지자체의 협력을 이끌어내어 이룬 결과였다.

대전역도 역사 이미지 개선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2017년 증축역사 ‘맞이방’을 준공, 이전보다 약 2.5배가 넓어졌으나 여전히 고객편의시설엔 미흡한 부분이 많았다. 서쪽맞이방 매장 재배치 및 여행센터를 확장이전하고 수유실을 매표창구 옆으로 옮겨 고객동선을 최적화하여 역 맞이방을 쾌적하고 밝은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더욱 편리하고 밝아진 대전역이 대전을 찾는 손님을 반겼다.

“하지만 대전을 재미없는 도시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죠. 저는 홍보와 지자체의 지원이 이뤄지면 이러한 인식을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전 고유의 여행콘텐츠가 될 인프라가 아주 많기 때문이죠. 계족산 황톳길, 장태산 메타세쿼이아 숲, 대청호 오백리 길 등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름다운 관광지를 여행상품으로 개발해 전국에 널리 알릴 수단으로 열차는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김봉회 역장은 철도와 접목한 새로운 여행 콘텐츠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특히 대전 방문의 해를 맞아 ‘春夏秋冬 대전에서 놀자’라는 테마로 사계절 내내 대전을 즐길 수 있는 대전역만의 특화 상품을 기획·운영 중이다. 이를 위해 지난 8월 코레일 전국 마케팅 담당자 및 협력여행사 관계자를 초청해 대전시 팸투어를 운영해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대전시 팸투어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기획이었어요. 현재 대전에서 즐길 수 있는 토토즐페스티벌과 사이언스페스티벌, 효문화뿌리축제 등과 관광지를 연계한 철도여행상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하면 대전 관광 활성화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전 인바운드 상품 출시에도 큰 활력소가 될 것이라 예상하고요.”

김봉회 역장은 대전역에서 관광지까지 연결이 해결된다면 대전은 더 이상 ‘노잼 도시’라는 오명을 털어버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기 위해선 적극적인 지자체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자체의 지원도 필요하고) 저희도 노력 중입니다. 인근의 교통 혼잡을 해소하기 위해 대전역 인근 일대를 정비 중입니다. 대전역을 이용해 역전시장, 중앙시장, 은행동 등의 원도심 이동을 유기적으로 하기 위해 복잡한 역 인근을 정비 중입니다. 올 3월에 시작한 택시 진입로 공사가 마무리 되면 교통 혼잡을 해소해 역세권 개발에도 일조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른 출근과 잊고 일하는 퇴근을 뺀다면, 김봉회 역장의 추진력은 목표를 향해 막힘없이 질주하는 KTX를 닮았다. 청춘을 다 보내며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지나온 시간은 후회보다 보람이 많다고 활짝 웃는다.

“정시에 출발한 열차를 놓치고 ‘왜 정시에 출발해 놓치게 만드냐’며 항의하는 고객부터 열차시간이 촉박했는데 직원의 도움으로 열차를 탔다는 승객까지, 그야말로 천태만상을 목격하는 곳이 기차역입니다. 얼마 전엔 출발신호가 표출된 열차 밑으로 뛰어든 고객을 무사히 구출한 일도 있었고요. 긴장 속에서도 웃을 일은 많아요.”

수많은 이들의 여행을 책임지는 역장이나 정작 본인은 해외여행 한 번 못 가봤다며 가족에게 미안함을 내비친다. 업무에 지나치게 몰두하다 2008년 스트레스성 망막 염증 발발로 한쪽 안구를 적출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지금도 이른 출근과 늦은 퇴근은 기차 운행 시간만큼 흐트러짐이 없다.

 

눈에 띄게 노숙자가 줄고 편리함과 쾌적함은 배가 된 눈부신 대전역. 그 이면에는 김봉회 역장과 발로 뛰는 철도 직원들의 노력이 숨어 있다. 대전을 방문하는 모든 손님에게 다시 찾고 싶은 대전을 보여주고 싶다는 김봉회 역장. 시속 300㎞로 달리는 KTX처럼 열정을 탑재하고 오늘도 그의 하루는 그렇게 시작한다.

저작권자 © 한국시민기자협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