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부터 재즈, 비틀스부터 신중현까지

카페 내부엔 재즈가 흐르고 있었다. 1950년쯤 태어났다는 진공관 오디오와 턴테이블, 그리고 벽면을 빼곡히 차지한 무수한 LP판에 넋을 놓을 때 나무 전봇대에 끼운 조명이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는 추억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낯선 경험에 놀라는 이곳, ‘전기줄 위의 참새’ 7080 전문음악실이다.

“21년째 음악을 틀고 있죠. 손님은 거의 단골이라고 봐야죠. 개업 때부터 지금까지 오는 손님도 있고 회식 때 나이 지긋한 부장님 따라왔다가 부모님 모시고 다시 오는 젊은이도 있습니다. 턴테이블이나 LP를 처음 본다는 손님도 많아요. 세월을 그때 실감하죠.”

손님을 떠올리면 신청 음악도 함께 떠오른다. 인사이동 철이 되면 유독 힘들어했던 은행맨이라든가 비가 오는 날 꼭 특정 음악을 신청하던 단골이라든가. 최평근 DJ의 기억 속엔 사람과 음악이 듀엣처럼 공존한다. 음악으로 재생되는 추억처럼, 한동안 뜸했던 손님도 음악과 함께 얼굴이 떠오르는 DJ만의 기억 소환술이다.

“반가운 얼굴도 많지만 소천 비보를 접할 때도 종종 있어요. 아무래도 7080 음악을 즐겼던 사람들은 나이가 지긋했던 손님이 대부분이라 그리움도 감수해야죠. 요즘엔 젊은 친구들이 최신 유행곡 신청을 많이 해요. 덕분에 CD 구매도 많아졌어요. 옛 노래만 고집하지 않아요.”

최평근 DJ의 음악실엔 정확히 집계할 수 없는 레코드와 최신 음악 CD, 그리고 뮤지션의 공연 실황을 담은 DVD가 공존한다. 장르를 불문하고 진공관 오디오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은 장중하고 풍부한 선율이나 대화를 방해하지 않는다. 방음 설비와 음향 시스템 덕분이다.

“환갑이 넘은 진공관입니다. 좋은 오디오는 50년대 말에 다 나왔죠. 장인이 만들어서 그만큼 더 튼튼합니다. 대량 생산한 제품과 비교하면 안 됩니다. 같은 음악을 들어도 아날로그 오디오는 감성이 달라요. 비가 내릴 땐 묵직하게 음악이 가라앉죠. 그럴 때 김현식 노래를 들으면 정말 좋아요.”

 

손님 중엔 디지털 세대답게 보유 음반 수량과 오디오 가격을 묻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럴 땐 희귀 음반이나 한정판을 보여준다. 가령 신중현이 1964년에 발표한 최초 앨범 같은 것 말이다.

“음악에 대한 투자는 지금도 끊임없이 하고 있어요. 정말 희귀 음반을 소장하게 됐을 때, 그리고 그 음악을 함께 들을 때가 가장 좋아요. 그래서 ‘잊고 살았던 그때 그 음악을 여기서 다시 듣는다’는 감상평을 들을 때 보람도 많고 그래요.”

구하기 힘든 희귀 앨범일수록 많은 이들과 들어야 가치가 살아난다는 것이 그의 지론. 그래서 청중과 더 가깝게 마주할 수 있도록 DJ 박스도 철거했다. 디지털의 홍수 속에서도 아날로그 감성의 가치를 잠시 느끼길 바란다는 의미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진심이 이곳을 긴 시간 사랑받는 쉼터로 자리할 수 있게 만들었다. 최평근 DJ는 ‘가을엔 재즈’라며 턴테이블 위에 음반 하나를 다시 올려놓았다. 트럼펫의 전설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의 ‘St. James Infirmary infirmary’가 환갑을 넘은 오디오에서 흘러나온다.

“예전엔 쉬지 않고 달렸던 것 같아요. 이젠 나이 덕분인지 쉬어도 가고 안 쉬어도 가는 것이 세월이란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쉬고 일합니다. 그땐 음악을 잠시 잊고 살다가 다시 여기서 음악을 듣습니다. 전기줄 위에 참새가 여러분의 삶의 쉼표가 되길 바랍니다.”

 

PS. “10월을 여는 음악으로 최평근 DJ가 추천합니다. 박건이 부르는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저작권자 © 한국시민기자협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