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서, 남, 북, 중앙. 다섯 방위 신장을 상징하는 오방기(五方旗) 깃발이 하나로 돌돌 말려 있다. 오방기를 든 사내는 맞은 편 이에게 다섯 깃대 중 하나를 뽑으라고 권한다. 다섯 개 중 하나를 뽑으려는 순간 오방기를 건넨 이가 먼저 말한다. ‘빨간색이네요.’ 그리고 거짓말처럼 붉은색의 깃발이 딸려 나왔다. 날고 기는 무속인도 저의 답답함을 풀지 못할 때 찾는다는 천자 신경재, 그의 신방(神房)에 숨긴 사연을 들어봤다.

 

Q.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언제 알게 됐나요?

A. 늦게 말을 뗀 내가 처음 했던 말이 ‘옆집 아줌마 곧 돌아가시겠다’ 였어요. 내게만 들리고 보이는 것 때문에 어머니는 5살에 저를 절에 의탁했어요. 너무 울어서 오래 있진 못했답니다. 그 후로도 정착하지 못한 삶이었어요. 학창 시절엔 하도 여러 군데 학교를 다녀서 동창도 참 많아요.(웃음) 지금과 달리 한군데 정착하지 못한 생활이었지만 늘 에너지 넘치고 즐거웠어요. 학교 옥상에 올라가 난간 바깥을 겁도 없이 돌아다녔어요. 5층 옥상인데 한 발 앞이면 지상으로 떨어지는 아슬아슬한 경계였죠. 거기 매달려 있는 게 그게 그렇게 재밌었어요. 간혹 친구에게 뭔가를 하지 말라는 말도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공수(무속인이 죽은 사람의 뜻이라고 하여 전하는 말)였는데 기막히게 잘 맞았어요. 아마도 누군가의 인생에 개입하는 삶이 이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Q. 흔히 말하는 ‘신이 내렸다’는 것도 어릴 때 알았나요?

A.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베풀어야 하는 팔자였어요. 어릴 땐 옷을 벗어서 친구에게 주고 오고 커서는 돈을 벌어도 수중에 두질 못했어요. 저는 60살이 넘어서야 돈이 모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니까 재물에 크게 연연해하지 않아요. 그래서 사람들을 기도로 낫게 하는 일을 했습니다. 경상부터 뇌출혈로 반신불수였던 사람까지 다양한 병증을 치료했어요. 제 검지 안쪽을 확대해 보면 부처님 눈이 손금처럼 박혀 있어요. 부처님 원력이에요. 손이 가는 곳마다 치료되는 것을 나도 느끼고 상대방도 느끼죠. 아픔도 전이돼요. 강도와 환부 위치까지. 그래서 수십 년간 수행과 기도를 쉴 수가 없었어요. 긴 시간 치료를 해왔어요. 치료가 제 사명감 같았거든요. 그러다가 2015년 10월 25일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어요. 환인, 환웅, 단군 세 분이 내려왔어요. 칠성인도 내려왔습니다. 그게 눈으로 보입디다. 그때부터 또 다른 신력이 생겼어요. 기도를 실은 초에 불을 붙이면 정확히 38분 뒤, 심지에 장미꽃이 폈어요. 2년 뒤 벌어질 대한민국의 정치, 사회 사건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졌어요. 제 개인 블로그에 당시 제가 예견한 사건들을 그대로 남겨 놓은 페이지가 있어요.

초 심지, 장미꽃이 개화하다
초 심지, 장미꽃이 개화하다

Q. 용하다는 소문 듣고 온 손님도 처음엔 잘 안 믿죠?

A. 사람이니까요. 우리야 신령님이 노여워하실까 봐 거짓을 말할 수 없지만, 손님은 다르잖아요. 계속 부정을 위한 부정을 해요. 어떤 분은 나이도 속이는데 점사를 보다 보면 띠가 다른 게 보여요. 집어내면 배시시 웃고 넘깁니다. 별별 사례가 다 있죠. 그럴 땐 큰 수 하나로 답을 막아 버려요. 등 뒤에 점의 위치, 문신이 있다면 그 세부 사항을 말씀해 드려요. 본인만 아는 은밀한 부위에 있는 신체적 특징도 X-RAY처럼 보이거든요. 굳이 그렇지 않더라도 누구 때문에 힘든지 보이니까 그런 걸 말해주면 왈칵 눈물을 터트려요. 사방이 막혀서 가슴은 썩어 문드러지고 어디에서 꼬였는지 풀 수도 없어서 막막했다는 거죠. 그 꼬인 부분을 풀어주는 게 제 일이고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것이죠. 그래서 울고 가는 분도 많고 후련하게 다 털고 가시는 분도 많아요.

Q. 답답한 무속인이 찾는 곳이라던데 어떤 분이 어떤 사연으로 이곳을 오시나요?

A. 신령 높은 무속인은 다 알아요. 오늘 몇 시쯤에 어떤 사람이 찾아올 지. 성불을 본다고 우리는 말해요. 그럴 땐 징역살이 할 팔자도 피할 공수가 나와요. 천년 사찰에 날 화재를 예견하고 박근혜 탄핵 등을 예견했던 것 때문인지 제자 귀신을 못 풀어 줘서 여길 찾는 분이 계십니다. 말 그대로 백 방을 다녀도 풀지 못하고 살기 위해 왔다고 그러죠. 제자 귀신은 제 제자가 더 잘 봅니다. 아무튼 이놈이 그쪽 제자를 보니까 신령이 똘똘 말려 있더랍니다. 나름 유명한 분의 제자가 이런 상태로 여기까지 왔으니 기가 찰 노릇이죠.

Q. 그럼 소위 ‘진짜’와 ‘가짜’는 어떻게 구별해야 하나요?

A. 아까 보여드렸던 오방기가 구별법 중 하나입니다. 오방기를 뽑고 나서 색으로 점사를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뽑기 전에 그 색을 맞추는 것이 천자의 능력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하늘과 사람을 이어주던 제사장의 역할이 천자인데요. 무속인의 역할이 그것입니다. 천심(天心)의 전달자 역할이죠. 나에게 신명을 보는 것은 일종의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Q.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듣는다는 것, 무섭진 않으신가요?

A. 우리가 느끼는 무서움은 일반인과 조금 다른데요. 알고도 피할 수 없는 것, 그런 것이 무서워요. 성수대교 붕괴 전 정확히 일주일 전에 보였거든요. 보이지만 막을 수 있나, 탄핵과 천년 사찰 화재도 알지만 못 막아요. 대선과 인사이동도 꿈이나 기도를 통해 명징하게 보입니다. 어떤 정치인은 제 블로그를 그대로 ‘복붙’해 가선 정치 판도를 읽는 것처럼 선전하더군요. 그런가 보다 했어요.

Q. 점사 때에도 요란하지 않고 공수 시 전달력이 좋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신명이 실릴 땐 각자 스타일이 있나요?

A. 딱 그렇게 들리니까요. ‘내 너에게 항아리에 리본을 달아주면 되겠느냐’ 이런 식이죠. 공수를 넣을 때 실제로 또렷한 음성이 들리고 저는 전달할 뿐입니다. 저는 신을 모시는 사람들이 본인을 위해 기도하고 수행하기 원합니다. 누구나 신은 있고 이것을 이용하는 것은 안 될 말이죠. 말로 떠들고 요란한 퍼포먼스에 집중하는 것 좀 그만두길 바랍니다.

Q. 끝으로, 귀신 무섭지 않으신가요?

A. 그런 귀신들이 있어요. 갑자기 죽거나 혹은 죽은 뒤 길을 못 찾는 귀신들. 본인 죽음을 인식 못 하는 귀신을 많이 봤어요. 그런 귀신들은 나를 보면 숨곤 하는데 (웃음) 자기만 숨으면 내가 안 보이는 줄 알아요. 그 중엔 보따리를 끌어안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인의 모습도 있고 개화 시기 유행하는 옷차림을 한 귀신도 있어요. 우리랑 똑같은 모습이에요. 원귀가 아닌 이상 흉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많이 끄는 기운은 인기(人氣)죠. 우린 다른 기운이 많은 겁니다. 신기(神氣). 인기 많다고 무서워하는 사람 없듯 신이 많이 보인다고 무서워할 무속인은 없죠. 무엇보다 귀신보단 사람이 더 무서운 법이죠.

천자 신경재를 찾는 이들은 성별과 종교, 나이대도 다 다르다. 그러나 모두 사는 것이 막막하고 길이 보이지 않는 이들이란 공통점이 있다. 잡귀가 있으면 수호신이 있듯, 사방이 막힌 곳에도 길은 있는 법이다. 그리고 오늘도 천자 신경재는 막힌 곳을 뚫기 위해 신방의 문턱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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