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1500년 숨결로 빛은 한산소곡주, 우리 땅 처음 술

백제 1500년 전통이 고스란히 깃든 전통주, 한산소곡주. 국내 전통주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술로 찹쌀과 누룩을 주원료로 들국화, 메주콩, 생강 등을 100일간 숙성해 빚는다. 감미로운 향과 특유의 감칠맛 때문에 한잔 맛보면 일어나지 못하고 다음 잔을 마시게 된다 하여 ‘앉은뱅이 술’이란 별칭으로 불린다. 아무 때나 먹어도 달고 향기로우나 선선한 가을바람이 부는 요즘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술이다.

“한산소곡주는 가양주(家釀酒) 형태로 계승된 술입니다. 제사를 위해 종갓집 며느리에서 며느리로 이어져 왔죠. 그 덕분에 전통 제조법을 그대로 재현해 대중화할 수 있었습니다.”

충남 서천군 한산면 충절로 1118. 일 년 내내 술 익는 향기가 나는 한산소곡주 양조장이 있는 곳이다. 충남 무형문화재 3호인 故 김영신 여사는 며느리 우희열 명인에게 소곡주의 비법을 전수하고 우희열 명인은 다시 아들 나장연(54) 씨에게 전수했다.

“할머니가 술을 빚던 새벽을 아직도 기억해요. 당시 집에서 빚는 술은 밀주(密酒)로 분류되던 시절이었어요. 저도 강제 기상을 할 수밖에 없었죠. 새벽 4시쯤 일어나 술밥을 털었던 기억이 나요.”

할머니의 소곡주 빚는 솜씨는 일품이었다. 어머니 우희열 명인과 아들 나장연 전수자는 그런 할머니의 솜씨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맛 좋은 할머니의 소곡주는 맛보려는 사람들이 많아 늘 부족했다. 그 솜씨를 이어받은 며느리와 손자는 할머니의 소곡주를 보다 많은 이들에게 선보이고 싶었다. 그렇게 12개의 항아리를 묻고 소곡주 양조장을 시작했다.

“1990년에 면허를 얻어 ‘한산소곡주’라는 명칭으로 본격 제조를 시작했죠. 지금은 연간 200㎘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95년까지 충청권 시장에서만 판매하다 다음 해 전국 시판으로 확장했어요. 서천에서만 맛볼 수 있었던 한산소곡주가 지금은 온라인과 전문 매장을 통해 전국에서 맛볼 수 있게 됐습니다. 면세점과 청와대 매점에도 들어가 있어요.”

연간 생산량에서 알 수 있듯 소주와 수입 맥주가 점령한 현 주류 시장에서도 1500년 전통을 담은 술은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향기로운 단맛과 묵직한 알코올 도수는 부드럽고 기분 좋은 취기를 선사한다. 한 잔이 두 잔을 부르고 두 잔이 다음 병을 부르는 한산소곡주. 시원한 탕국이나 심심하게 무친 나물, 두툼하게 부친 전 모두 소곡주와 잘 어울린다. 그래서 명절이면 조상님께 올리고 나눠 마시기 그만이다.

“명절이 다가오면 특히 더 바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연간 소비량은 크게 변동은 없어요. 한산소곡주가 큰 굴곡 없이 사랑 받을수록 연구 개발에 힘써야겠다는 의무감도 함께 들어요. 기억을 더듬어 보면 제가 만든 소곡주는 할머니의 그 맛을 뛰어넘지 못하거든요. 지금 과정도 할머니의 술맛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생각해요.”

시절이 변하면 강산도 변한다. 할머니가 소곡주를 빚던 시절의 품종은 어느덧 수입 개량종으로 바뀐 요즘이다. 물맛은 또 어떠한가. 염분이 없고 미량의 철분을 함유한 서천 지역의 물맛은 소곡주 맛을 좌우하는 중요한 주재료다. 나장연 전수자는 할머니의 소곡주 재현을 위해 까다로운 절차를 거친 지하수만 고집하고 원재료 역시 계약 재배 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와 함께 다양성 추구를 위한 연구실도 완비했다.

한산소곡주 나장연 전수자
한산소곡주 나장연 전수자

“찹쌀 품종이 그때와 다르니 미묘하게 맛이 달라요. 그래도 그 맛은 찾고 싶어요. 전통은 계승 발전하되 시대적 흐름에 맞춘 개선은 필요해요. 그래서 전통을 유지하며 다양한 연구 개발을 하고 있죠. 전통과 과학의 협업이죠.”

어린 시절 몰래 맛봤던 할머니의 술맛은 아직도 입안을 맴돌 듯 남아있다. 긴 겨울밤 술지게미에 설탕을 넣어 끓여 먹던 술지게미의 맛은 또 어찌나 꿀맛이던지. 나장연 전수자에게 한산소곡주는 유년의 추억이자 미래의 목표다. 그에게 한산소곡주의 깊은 의미를 아는 두 아들은 일찌감치 아버지의 뒤를 잇기로 했다. 4대에 걸쳐 소곡주를 빚는 이들, 전통은 진심을 담아 계승되고 있다.

“혼자 술을 빚다가 찹쌀 300가마를 몽땅 버렸던 초창기 시절도 있었어요. 하지만 국내외 각종 대회에서 여러 차례 상을 받으며 다른 술과 경쟁해 이길 땐 ‘역시 소곡주!’하면서 기쁘고 보람도 느껴요. 술 빚기 전 정갈하게 몸과 마음을 다잡던 할머니의 새벽을 잊지 않으며 계속 명맥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우리의 전통주인 한산소곡주 많이 사랑해 주세요.”

깊어가는 가을밤, 향기 좋고 맛도 좋은 한산소곡주와 함께하는 것은 어떨까? 가을밤 운치에 취하고 소곡주에 취하는 기분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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