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孝)로 지은 정려각(旌閭閣), 그리운 내 어머니가 있던 그 자리
효(孝)로 지은 정려각(旌閭閣), 그리운 내 어머니가 있던 그 자리
  • 안시언 기자
  • 승인 2019.09.04 1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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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 이씨 이윤훈의 사모곡

9월, 폭염을 견딘 가을의 과실들이 풍요롭게 익어간다. 풍성한 과실은 실한 뿌리로부터 비롯된다. 당연한 이치지만 저 잘난 맛에 취해 사는 열매는 뿌리의 소중함을 쉽게 잊고 만다.  이것은 뿌리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효의 귀감, 이윤훈 씨의 이야기다.

홍순이(洪順伊) 여사의 효열부(孝烈婦) 정려각
홍순이(洪順伊) 여사의 효열부(孝烈婦) 정려각

 

팔순에도 잊을 수 없던 어머니의 효행, 정려각과 행적비에 새겨지다

충북 괴산군 감물면 백양리 352번지. 연안 이가(延安 李家) 대제학(大提學)이던 석형(石亨)의 16대, 대호군(大護軍) 효장(孝長)의 14대 손부 홍순이(洪順伊) 여사의 효열부(孝烈婦) 정려각(旌閭閣)이 있는 자리다. 홍 여사는 본관이 남양(南陽)으로 증호조참판(贈戶曹參判) 시연공파(時然公派) 10대 종손(宗孫), 휘 완영(完榮)공과 결혼하여 종부(宗婦)가 됐다. 그 후 시부모와 남편이 동시에 투병 중임에도 이를 지극 정성으로 병간호하는 등 그 덕행이 널리 알려져 충북경행록(忠北景行錄)에 등재, 마침내 성균관(成均館)으로부터 효열부 인증을 받았다. 이에 괴산군(당시 임각수 군수)는 2010년, 군에 정려각을 세워 그 효심을 기리고 현재까지 효의 본보기로 삼고 있다. 이렇게 건립된 효열부 남양홍씨 정려각은 대한민국 1호로 지금까지 기록되고 있다.

정려각 바로 옆에는 문학박사 송백헌(宋百憲 충남대 명예교수) 교수가 감수한 여사의 행적비(行蹟碑)도 함께 세워져 있다. 과거, 나라에서 정려각을 내리는 사례는 있었으나 근래엔 보기 드문 사례임이 틀림없다. 이러한 정려각의 건립되기 까지는 괴산군의 적극적인 행정적 지훤 속에 여사의 외아들 이윤훈(李潤勳 80) 씨의 남다른 노력이 숨어 있다.

“우리 어머니는 지체 높은 남양 홍씨 가문에서 태어나 17세 어린 나이로 시집오셨어요. 성정이 온화하고 구김 없는 분이셨어요. 어머니는 시할머니부터 시동생 셋까지 당신의 몸보다 더 아끼며 모시고 또 보살폈어요. 어른 봉양 가족 부양으로 세월을 다 보내신 분이에요. 그래서 정려각 건립에 힘써 주신 임각수 괴산 군수님과 이효영 학장님께 늘 감사드립니다.”

기억 속 어머니는 경서(經書)에 통달한 분이었다. 새벽녘 천자문(千字文)과 권학문(勸學文)을 조용히 읊던 목소리를 그는 아직도 기억한다. 동네 사랑방엔 어머니가 들려주는 별주부전과 사씨남정기, 구운몽을 듣기 위해 늘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웃어른께는 효를, 부부간에는 사랑을, 친족 간에는 화목을, 이웃 간에는 베풂을 몸소 실천하는 올곧은 삶을 살았다. 이토록 온화했던 성정이니 시어른의 줄초상은 그야말로 이길 수 없는 지독한 비애였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정려각 옆에 자리한 행적비를 있는 그대로 옮겨본다.

“이씨 가문에 출가한 그날부터 위로 시할머니와 시부모님을 홀로 받들고 종손인 남편 완영공(公)을 공경으로 섬겨 이웃의 칭송이 자자했는데, 불행히도 시어머니까지 전염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다. 이에 여사는 천지신명께 밤을 새워 ‘불효녀가 시어머니 병을 대신하기’를 기도하며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지극정성으로 약을 달여 간병하였으나 효험도 없이 운명하셨다. 이에 참기 어려운 슬픔으로 시신을 안고 몸부림을 치면서 통곡하니 눈물과 피가 말라 여러 차례 기절하면서도 어렵게 상례를 마치던 날, 시할머니마저 그 충격으로 식음을 전폐하면서 목숨이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 거듭되는 불행에도 좌절하지 않고 주야로 대소변을 받아내고 쾌유를 비는 등 효성을 다했지만 보람 없이 시어머니가 돌아가신지 90일 만에 시할머니도 운명하시는 비운을 거듭 맞았다. 홀로되신 시아버니 규승 공(公)과, 해소와 천식으로 피골이 상접한 남편 완영 공(公), 어머니를 여윈 철없는 세시동생들을 보살펴야 하는 처지에서 슬퍼할 겨를도 없이 애 끓는 마음은 가슴에 묻고 시아버지께는 지극정성으로 봉양하고 남편에게는 성심으로 간병하며 철없는 시동생들에게는 언 손을 잡아 녹여주는 어머니의 역할을 다하기도 했다.”(중략)

어머니에서 아들로, 대를 이은 효심

청암(靑岩) 이윤훈
청암(靑岩) 이윤훈

“지금 생각하면 며느리 잘 못 들어와서 줄초상 났다고 얼마나 마음고생 했을까 싶어요. 그 와중에 시동생 셋을 자식처럼 수발해서 키웠어요. 나는 어렸을 때 부모님 속 꽤나 썩인 자식이었답니다. 시골이라 물동이로 물을 긷는 어머니한테 도로 갖다 부으라고 강짜를 부리곤 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웃음) 보다 못한 아버지가 나를 자식 없는 스님한테 줘버려야겠다고 엄포도 놓으셨죠. 다 소용없었어요. 불혹에 얻은 늦둥이를 마냥 귀하게 키워 주셔서 제가 부모님 소중한 걸 모르고 컸어요. 그래서 지금은 어머니 얘기만 나오면 울컥해요.”

연안 이씨 대전종친회장이며 전국대종회 부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는 청암(靑岩) 이윤훈. 뿌리공원 전국문중협의회 사무총장과 부회장까지, 효와 관련된 일이라면 어디든 뛰어가 봉사했던 그가 소회 후에 기어이 눈물을 보였다. 어린아이의 투정이 뭐 그리 대단한 불효일까만 그에겐 풍수지탄(風樹之嘆)으로 두고두고 한이 됐다. 마침내 괴산군으로부터 ‘군비(郡費)로 정려각 건립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너무도 기쁜 나머지 며칠 밤을 지샜다. 어머니가 생전 생활하셨던 바로 그 터에 탄생 110주년을 맞아 2010년 10월 10일에 건립하기까지 많은 곳을 뛰어다녔다. 괴산 군청부터 성균관까지, 대전에서 괴산까지, 목재상에서 석재상까지. 건립의 모든 과정에 그가 참여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이와 함께 이윤훈 회장은 2009년에 발행한 ‘Korean’s Family Lines’(한국인의 뿌리)의 도록(圖錄) 발간에는 사비를 들여 편집인으로 참여, 각 문중의 긍지를 고양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이 같은 행적을 인정받아 국회의장 표창장, 韓國孝行受賞者孝道會中央會 및 成均館 효행상, 대한민국 충효대상, 대전광역시장상을 비롯하여 여러 공사(公私)기관의 표창 및 감사패(感謝牌) 등을 수 없이 받았다. 청소년 장학사업과 효문화 확산을 통하여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온 공로로 ‘한국을 빛낸 사람들 대상(2015)’을 받기도 했다. 지극했던 효심은 모전자전(母傳子傳)으로 대를 잇고 있던 셈이다. 그런 지극한 효심이니 한으로 남은 것이 한둘이 아니다.

“살아만 계신다면 해드리고 싶은 게 어디 한 두 가지겠어요. 그래도 제일 마음에 한으로 남은 게 있어요. 96세에 하늘나라로 가셨죠. 그런데 90세 쯤 부터는 어머니 눈이 점점 나빠져 급기야 손으로 사물을 구별해야 했거든요. 평생 근검절약하며 사신 분이라 병원 가자는 말에도 꿈쩍 않으셨어요. 나이를 먹어서 그렇다며. 어릴 때처럼 고집을 피워서라도 모시고 갈 걸.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돌아보면 불효자가 따로 없습니다.”

한편, 이윤훈 회장은 부인 정도용(鄭都溶) 씨와 가정을 꾸려 슬하에 3남 1녀를 두고 있다. 장남 이규석(李圭石) 박사는 “아버지는 효행의 귀감이 되는 훌륭한 분”이라고 주저 없이 말한다. 또한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으로 시대를 앞서가는 분”이라고 덧붙인다. 실례로 이윤훈 회장은 제례 문화 등을 시대 변화의 흐름에 맞도록 크게 개선했다. 지난 2011년 10월 ‘가족숭모공원’을 조성하여 선대 조상님들의 묘를 한자리에 모셨다. 더 나아가 매년 4대까지 연중 지내오던 제례 의식을 1년에 한식(寒食)과 개천절(開天節) 2번만 지내도록 했다. 이는 제례 문화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일로써 타 문중에도 모범사례로 꼽히고 있다. 가풍으로 면면히 전해져온 충효정신도 계승한다는 취지로 ‘연안이문(延安李門) 효헌장(孝憲章)’을 선포하고 몸소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대를 이은 효행 가문, 문득 가훈(家訓)이 궁금해졌다. ‘계일(戒溢)’. 수백 년간 내려온 연안 이씨 문중의 가훈은 ‘넘침을 경계한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흐르는 물은 먼저 감을 다투지 않는다’는 청암 이윤훈의 좌우명과 만나 더 깊고 넓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어느새 돌아가신 어머니처럼 나이 들어 버린 아들, 그 아들의 아들이 보기엔 곱디곱던 할머니의 심성마저 아버지는 닮아 있었다. 연안 이씨 가문의 대를 잇는 효행은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이기에 더욱더 눈부시게 다가온다. 그래서 이윤훈 회장 일침은 더 아프다.

“어쩌면 당신이 효도할 시간은 생각보다 없습니다.”

문헌 고증 자료 :

충청북도 상륜회장(常倫會長) 기록, 충북경행록(忠北景行錄)

괴산군 향교(鄕校), 성균관장(成均館長) 효열부 인정 및 괴향 문화(槐鄕文化) 제 23집 : 효열부 남양 홍씨 행적고찰 pp. 230-233